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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송파 松坡-역사를 땅 밑에 품은 곳

입력 : 
2019-03-27 14: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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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쪽, 송파라는 지명은 고려 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우리의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함께 품고 있다. 고대 한반도에 거주했던 선사인들은 한강변에 터를 잡았고 이후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이 지역을 수도로 해 21대 개로왕까지, 약 490여 년간 백제는 물론 삼국 시대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주인공으로 서울에서도 가장 핫한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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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동쪽 방향으로 고개만 들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건물이 있다. 바로 롯데월드타워다. 2017년 개장한 이 건물은 지상 123층, 높이 555m로 한반도에서 제일 높고 세계에서도 다섯 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물론 그 전에는 삼성동 무역회관이나 잠실 롯데월드가 강동 쪽으로 제일 높은 위치를 차지했지만 이 건물들은 롯데월드타워에 비하면 ‘난쟁이’다. 롯데월드타워는 그야말로 조선 시대 서울 동남쪽의 피난처이자 방어 진지였던 남한산성과 그 눈높이가 같다. 이 롯데월드타워의 본거지가 바로 송파다. 행정 단위 구로 설명하면 서쪽으로는 잠실운동장, 동쪽으로는 몽촌토성과 천호대교 인근, 남쪽으로는 거여와 마천동까지가 ‘송파구’다. 하지만 송파의 원형은 바로 롯데월드 옆 석촌호수다. 석촌호수는 지금 그 지역민의 휴식 공간이자 롯데월드 테마파크의 한 부분이지만 1920년까지도 한강과 맞닿은 나루터였다. 그 당시, 자연 생성된 제방에는 푸른 소나무가 무성해 이 지역을 ‘소나무 제방’ 즉 ‘송파’라고 불렀다고 한다.

송파는 나루였다. 뚝섬나루에서 송파에 닿았고 여기서 남한산성 등으로 연결되는 운하와 육운의 거점이었다. 팔도의 임금님 진상품부터 숯, 쌀, 도기, 우시장 등 각종 물품이 송파에 닿았고 이는 경강상인들을 통해 서울로 흘러 들어갔다. 송파는 조선 시대 전국 1000여 개의 시장 중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드는 큰 규모로 성장했다. 여기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객주만 270여 명이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지역이 모조리 수몰되고 사람들은 지금의 가락동 쪽으로 모두 이주했다. 그런데 이주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을 여전히 ‘송파’라고 불렀다. 이후 송파는 시장의 명맥만 유지했지만 천호동이 새로운 상권으로 부상하고 마장동이 우시장의 대표가 되면서 송파는 쇠락했다. 송파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960, 1970년대 도시 확장이다. 서울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한강 지류천이 곳곳에 흐르는 송파는 개발 난코스였다. 이 지류를 흙, 바위, 심지어 쓰레기를 부어서 막으면서 잠실 일대에 흐르던 한강 지류는 토지로 개발되었다. 이후 잠실운동장이 들어서고 1989년 호텔롯데, 1995년 롯데월드가 문을 열면서 송파는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 석촌호수 일대는 핫플레이스의 증거인 ‘~길’이 붙는 지역이 되었다. 말자면 ‘송리단길’ 같은.

지금 송파는 여전히 마천루가 올라가고 넓어지고 있지만 이 지역의 가치는 땅 밑에 있다. 선사 시대부터 고조선, 백제와 삼국 시대, 그리고 오늘까지 지표면 아래의 그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우리는 지극히 일부만 알고 있다. 해서 더 이상 파지 않고 후대에 남겨 두는 것도 오늘을 사는 지혜이자 의무일 것이다.

[글 장진혁 사진 아트만텍스트씽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2호 (19.04.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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