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는 나루였다. 뚝섬나루에서 송파에 닿았고 여기서 남한산성 등으로 연결되는 운하와 육운의 거점이었다. 팔도의 임금님 진상품부터 숯, 쌀, 도기, 우시장 등 각종 물품이 송파에 닿았고 이는 경강상인들을 통해 서울로 흘러 들어갔다. 송파는 조선 시대 전국 1000여 개의 시장 중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드는 큰 규모로 성장했다. 여기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객주만 270여 명이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지역이 모조리 수몰되고 사람들은 지금의 가락동 쪽으로 모두 이주했다. 그런데 이주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을 여전히 ‘송파’라고 불렀다. 이후 송파는 시장의 명맥만 유지했지만 천호동이 새로운 상권으로 부상하고 마장동이 우시장의 대표가 되면서 송파는 쇠락했다. 송파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960, 1970년대 도시 확장이다. 서울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한강 지류천이 곳곳에 흐르는 송파는 개발 난코스였다. 이 지류를 흙, 바위, 심지어 쓰레기를 부어서 막으면서 잠실 일대에 흐르던 한강 지류는 토지로 개발되었다. 이후 잠실운동장이 들어서고 1989년 호텔롯데, 1995년 롯데월드가 문을 열면서 송파는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 석촌호수 일대는 핫플레이스의 증거인 ‘~길’이 붙는 지역이 되었다. 말자면 ‘송리단길’ 같은.
지금 송파는 여전히 마천루가 올라가고 넓어지고 있지만 이 지역의 가치는 땅 밑에 있다. 선사 시대부터 고조선, 백제와 삼국 시대, 그리고 오늘까지 지표면 아래의 그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우리는 지극히 일부만 알고 있다. 해서 더 이상 파지 않고 후대에 남겨 두는 것도 오늘을 사는 지혜이자 의무일 것이다.
[글 장진혁 사진 아트만텍스트씽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2호 (19.04.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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