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증인’ 정우성-“시나리오 읽고 치유 받은 느낌 들었다”

박찬은 기자
입력 : 
2019-03-27 16:54:23

글자크기 설정

살인 용의자의 변호사와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반항아 ‘완득’과 오지랖 선생 ‘동주’의 특별한 멘토링을 다룬 ‘완득이’, 세상을 떠난 소녀가 숨겨놓은 비밀을 찾아 다문화 가정, 학교 폭력 등 관계의 상처를 담아낸 ‘우아한 거짓말’ 등에서 늘 온기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이한 감독. 그가 “마치 땅 위에 붙어있는 듯 연기해냈다”고 밝힌 변호사 순호 역의 정우성은 간담회에서 “내 자신이 치유 받은 느낌”이라고 밝혔다.

사진설명
시나리오 선택 이유는? 전작들은 숨을 꽉 참고 긴장하며 달려왔던 것 같은데 ‘증인’은 시나리오를 덮자마자 뭔가 숨이 트이며 바로 촬영하고 싶어졌다. 지난 몇 년간 강한 영화들, 캐릭터들을 하다 보니까 지우와 순호가 나누는 감정, 아버지와 나누는 그 감정들이 굉장히 따뜻했고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치유 받은 느낌이었다. ‘이 따뜻함이 요즘 우리에게 다 필요한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도 좀 여유를 가지고 치유 받으며 쉬고 싶었다. 순호는 ‘더 킹’의 차세대 검사장 후보 ‘한강식’, ‘강철비’의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 등 지금까지 맡은 역과는 다른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매력적인 캐릭터이면서도 부담이었을 것 같은데. 순호는 민변 쪽에서 파이터로 이름을 날리다가 개인적인 삶의 부분에서 조금 타협을 하기 시작한다. 그때 지우라는 아이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삶의 본질, 가치와 같은 것들을 되돌아보면서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찾는, 그러면서 성장한다. 그전 캐릭터들은 굉장히 어떤 사건에 치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애썼는데, 여기에서는 지우가 순호에게 주는 따뜻한 파장을 따라가면 됐다. 그 감정이 물론 쉽지만은 않았지만 뭔가 다른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사진설명
순호는 선택의 갈등 속에서 힘들어하면서도 계속 좋은 인물로 남는다. 절제하는 연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 가운데 가장 절제를 안 하고 감정 표현을 한 캐릭터다. 지금까지는 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만들어진 리액션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우 앞에서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그냥 나왔다. 순호가 만나는 지우,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 그런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 그 안에서 순호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 그런 것들이 내게 그런 감정을 선물해준 것 같다. CF 촬영 후 김향기 씨를 17년 만에 만났다. 소감은 어땠나? 호흡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신기했다. 하지만 29개월의 아기를 기억한다기보다는 ‘우아한 거짓말’ 등 다른 작품에서의 연기를 이미 본 상태였다. ‘김향기’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양순호’를 연기하는 데 영감을 줬다. 너무나도 잘 준비된, 큰 영감을 준 파트너였다. 아주 큰 동료를 마주한 듯 뿌듯하고 든든하다. 소통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17년 전부터 알던 사이라(웃음). 법정 신에서 편집 없이 긴 대사를 여러 번 촬영하느라 산소 호흡기가 준비됐다고 들었는데. 워낙 디테일한 감정들이 계속해서 오가고, 캐릭터도 많다 보니 컷을 나눠 가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길게 여러 번 촬영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법정 세트가 천장까지 막힌 데다, 조명 기기의 열기, 많은 스태프의 수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져서 멍해졌다. 그래서 ‘산소 캔 좀 준비해주면 정신이 맑아질 것 같다’고 하니까 계속해서 공급해 줬다. 덕분에 촬영을 잘 끝냈다.
사진설명
법조문이 많은 대사가 감정 연기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나? 법정 신이 있지만 법정 드라마는 아니다. 전문적인 법률적 해석보다는 증인과 변호사와의 대화 속에서 잘못된 소통 방식을 찾아가는 신이 많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법률 용어가 쓰일 수 밖엔 없지만 감정을 따라가며 대사를 읊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김향기는 ‘지우’ 그 자체였다”고 말했는데 어떤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가? 지우는 우는 표정, 몸의 움직임, 손끝 이런 것들이 굉장히 아주 작은 움직임인데도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캐릭터다. 향기가 아마 그런 디테일 하나하나를 계속해서 자기 몸에 담고 있지 않았다면, 카메라 앞에서 서로 연기를 할 때 ‘어, 이 친구가 아직은 지우가 안 됐구나, 지우로 가고 있구나’ 라고 바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늘 언제나 향기는 현장에 딱 나타나서 연기를 시작할 때면 그냥 온전히 ‘지우’를 보여줬다. 어떤 의심도 할 필요가 없었다.
사진설명
김향기 씨가 좋은 교감의 상대 배우였다고 말했는데, 혹시 생각나는 신이 있는지? ‘향기는 어떻게 연기할까?’, ‘향기는 어떻게 준비했어요?’ 같은 사전 정보를 찾지 않고 ‘현장에 가서 그냥 봐야지’ 마음 먹었다. 그런데 정말로 낯선 ‘향기’가 있는 거다. 그냥 ‘지우’였다. 지우가 뜬금없이 던지는 질문들이 굉장히 날카롭고 무거웠다. 중반부에 지우가 순호에게 툭툭 질문을 던진다.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그런데 향기가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지우가 양순호에게 질문을 하는 것처럼 그냥 마음에 와서 꽂혔다. 영화를 보면 ‘아저씨는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정우성 배우는 영화 밖에서도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데,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지금 세대들, 앞으로의 세상을 책임져야 할 다음 세대들이 어른들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질문을 했을 때 ‘우리는 정당한가’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질문이 무겁고 크게 와 닿았던 것 같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무비락, ㈜도서관옆스튜디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2호 (19.04.02)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