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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NOW] 유명 CEO 몰락에 日거버넌스 논란 증폭-데상트·오츠카 ‘불통경영’에 실적·평판 악화

  • 정욱 기자
  • 입력 : 2019.03.25 11:21:22
이시모토 마사토시, 오츠카 구미코, 마에자와 유사쿠. 각각 일본의 데상트, 오츠카가구, 조조타운의 사장이다. 그간 일본에서 ‘잘나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스타덤에 올라 있던 최고경영자(CEO)들. 창업자나 오너 집안 일원인 데다 나름 사업에 대한 주관도 뚜렷한 인물들이지만 주변 의견을 너무 안 듣는 통에 최근 시선이 싸늘해졌다. 일본 사회에서는 개성 강한 이들 CEO의 무소불위 권력이 브랜드 이미지를 추락시키거나 주주가 이탈하는 등 기업가치를 깎아내린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데상트는 한국에서 롱패딩으로 유명한 스포츠웨어 브랜드다. 일본 기업이지만 전체 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데 여기에는 위기 속 회사를 살려보겠다며 한국 사업을 키운 이시모토 사장의 공이 컸다. 대주주 이토추상사는 한국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위험하지 않느냐고 말렸지만 한국 사업에 애착이 컸던 이시모토 사장은 듣지 않았다. 데상트는 1998년 당시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하던 아디다스와 라이선스 계약이 끝나면서 휘청거렸던 적이 있다. 이런 악몽 때문에 이토추 측은 포트폴리오 분산을 요구했지만 이시모토 사장이 반발하면서 둘 사이 오랜 협력관계는 가뭄철 논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시모토 사장은 지난해부터 다른 회사들을 끌어들여 이토추를 밀어내려 했다. 이에 이토추는 지난 2월 적대적 공개매수(TOB)를 선언하고 나섰다. 시가의 50%로 프리미엄을 얹은 이토추 베팅은 성공했고 데상트 내 이토추 지분이 기존 30.5%에서 40% 이상으로 늘었다. 이토추의 불신 때문에라도 이시모토 사장이 조만간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속속 나오고 있다.

▶조조타운 ‘본업 집중’ 선언에 주가 급등

오츠카가구는 CEO가 사업 방향을 잘못 잡았는데 이를 통제할 브레이크가 없어 몰락 위기에 처한 경우다.

오츠카가구는 1969년 오츠카 가쓰히사 전 회장이 회원제로 창업한 고급 가구 브랜드로 거품경제 시절 빠르게 성장했다. 일본 경제 추락과 함께 사업이 정체기에 접어든 2009년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창업주의 딸인 오츠카 구미코 사장이다. 일반 고객에게도 브랜드를 개방하고 투명경영과 주주우선정책 등을 대거 도입했다.

딸의 경영 방침을 인정할 수 없었던 부친은 2014년 이사회를 소집해 구미코 사장을 해임했다. 창업주가 복귀하고 실적이 더 나빠지자 이사회는 2015년 초 구미코 사장을 복귀시켰다. 지지부진한 지분 싸움 끝에 딸이 승리했다. 다만 이후로도 회사 실적은 날로 나빠졌고 이제 지원 없이는 생존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구미코 사장은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며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업계 시각은 회의적이다.

스타트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마에자와 유사쿠 조조타운 사장은 한때 일본 젊은이들의 우상과도 같았다. 지난해 엘론 머스크 사장이 이끄는 스페이스X 달 여행 프로젝트의 첫 고객으로 등장하면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얻었다. 낙서 화가로 유명한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125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고 비싼 차량 구매, 아이돌과의 자유분방한 교제로 화제를 불러왔다.

그런 마에자와 사장이 2월 7일 돌연 ‘본업에 전념하겠다’며 소셜미디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하룻밤 사이 조조타운 주가가 20% 이상 뛰었다. 일본 언론에서는 “그동안의 시장 불안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물론 마에자와 사장이 ‘본업에 집중’한다고 최근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조타운은 일본 최대 패션 온라인 쇼핑몰이지만 최근 패션업체들이 하나둘 조조타운과 거래를 끊는 상황이다. 여기에 그간 ‘너무 튀는’ CEO의 행동 때문에 소비자 거부감도 높아진 상태다.

이런 사례가 알려지자 최근 일본 사회에서는 기업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와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국이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특히나 대주주 중심의 경영이 많은 한국에서는 최근 세대 교체와 함께 리스크가 더 커지고 있지만 관련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위기 전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1호 (2019.03.27~2019.04.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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