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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alk] ‘우상’이 될 만한 한석규의 연기철학 | 가림막 없는 ‘좋은 재료’ 배우가 될게요

  • 한현정 기자
  • 입력 : 2019.03.25 11:42:21
CGV아트하우스 제공

CGV아트하우스 제공

데뷔 30년 차 배우 한석규(55)는 자신을 ‘재료’라고 표현했다. 나아가 꿈은 ‘나날이 더 좋아지는 재료’가 되는 것이라고. 단 하나의 가림막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좋은 배우’의 경지란다.

장편 데뷔작인 ‘한공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수진 감독이 신작 ‘우상’으로 한석규와 만났다.

한석규는 “시나리오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근래 보기 드문 날카로움과 집요함이 인상적이었다”며 “마치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한숨이 나오더라. 이 한숨을 표현하고 싶어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저도 연기를 한 지 꽤 됐죠? ‘우상’이 영화로는 아마 24번째 작품 정도 됐을 거예요.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려고, 조금은 다른 것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해왔지만 쉽지만은 않았어요. 이번에는 단지 캐릭터의 변화보다는 진폭이 좀 넓은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구명회가 딱 그런 인물이었죠.”

영화는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도의원(한석규 분)과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좇는 아버지(설경구 분),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천우희 분), 세 사람이 맹목적으로 좇는 ‘우상’으로 인해 벌어진 참혹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극 중 ‘우상’을 좇는 동시에 만인의 ‘우상’이 되고자 하는 도의원 구명회를 연기한 한석규는 “작품의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부끄러운 결정을 내릴 때 오는 본능적인 신호를 반복적으로 무시해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된, 육체와 정신이 우상에 잠식당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이 왜 이렇게 시나리오를 썼을지 생각해봤어요. ‘엔딩신은 어떻게 그려지고, 사건은 어떻게 전개될까. 관객도 내가 받은 인상대로 똑같이 느낄까’ 너무나 궁금했죠.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대한민국 이면의 비뚤어진 군상이 제 뒤통수를 내리쳤어요.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을 보기만 하지,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는 않잖아요? 구명회를 따라가다 보면 (감독이 꼬집는) 메시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연기는 결국 감독의 메시지에 대한 어떤 ‘리액션’에 관한 일이다.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곧 연기고 인생”이라며 “한때는 그냥 ‘한다’는 행위에 정신이 팔려 내 연기 순서만 기다린 적이 있다. 지금은 감독을 비롯해 다른 이가 하는 연기를 보고, 듣고, 반응한다.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구명회 역시 어떤 사건이 터지면 반응해요. 다 바보 같은 반응이고 선택이죠. 그런데 구명회가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우상’의 주제에 다다르게 돼요. 솔직해져야 할 순간에 솔직해지지 못하고 멈추지도 못하죠. 과장된 일 같지만 사실은 현실에서 차고 넘치는 일이에요. 정말 대단한 감독 아닙니까?”

그는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면 지금은 ‘무언가 내가 느끼고 싶어서’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오랜 경력에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이, 고민이, 욕심이 뜨거운 그였다.

“온갖 경험을 다 해보고 그것을 통해 축적된 나의 모든 것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제가 하고 싶은 연기 같아요. 그렇게 달려오다 보니 어떨 때는 아주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기고요. 그렇게 초심(예술적 체험을 느끼는 것)을 잃지 않은 채로,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좋은 재료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좇는 ‘우상’일지도 모르겠어요(웃음).”

[한현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kiki202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1호 (2019.03.27~2019.04.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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