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불친절한 영화 <우상>, 그 속에서도 제몫하는 배우 천우희

홍진수 기자
영화 <우상>의 한 장면. 련화는 “칼로 긁은 상처는 치료가 되지마는, 입은 아이대오”라고 말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우상>의 한 장면. 련화는 “칼로 긁은 상처는 치료가 되지마는, 입은 아이대오”라고 말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전도유망한 정치인의 아들이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죽게 만든다. 차기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스타’ 도의원 구명회(한석규)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 사고를 축소·은폐한다. 피해자의 아버지 유중식(설경구)은 아들이 죽은 진짜 이유를 알아내려 애쓴다. 사건을 목격한 피해자의 아내 최련화(천우희)는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진다. 명회와 중식은 동시에 최련화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우상>의 줄거리다. 외형은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지만 관객은 영화의 흐름을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각각의 사건들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등장인물들이 선택을 할 때마다 관객은 고개를 갸웃한다. 감독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공백을 은유와 상징으로 메운다. 관객이 알아서 판단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영화다.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하기에 집중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불친절하다는 평가 또한 피할 수 없다.

배우 천우희는 “현장에서는 캐릭터를 연기해도, 개인 천우희로 돌아가면 감상에 빠지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우상>을 촬영하면서는 이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CCV아트하우스 제공

배우 천우희는 “현장에서는 캐릭터를 연기해도, 개인 천우희로 돌아가면 감상에 빠지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우상>을 촬영하면서는 이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CCV아트하우스 제공

<우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는 천우희다. 한석규와 설경구가 극초반의 분위기를 둘간의 대결구도로 만들어 놓은 뒤에야 등장하지만 아주 손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나이와 연기경력 모두 자신보다 20년 이상 많은 두 배우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영화 안에서 맡은 배역 역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천우희는 전작인 <한공주>나 <곡성>처럼 이번에도 연기로 관객을 괴롭힌다. 영화를 찍으면서 얼마나 고생했을 지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지난 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는 “원래 내 연기를 보고 울거나 그러지는 않는데 <우상>은 너무 슬펐다”며 “7개월간 련화를 헤아리려고 하면서 제 안에 있는 열등의식이나 분노와도 화학반응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현장에서는 캐릭터를 연기해도, 개인 천우희로 돌아가면 감상에 빠지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이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우상>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우상>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처음부터 련화라는 인물에 빠져들기는 쉽지 않았다. 극중에서 련화의 과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대사 몇마디로 추정하는 것이 전부였다. 극중 련화의 ‘이부자매’인 수련은 련화가 ‘소새끼같은 가축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고 중식에게 전한다. 여기에 련화가 직접 “칼로 긁은 상처는 치료가 되지마는, 입은 아이대오”라는 말을 하는 것 정도로 인물의 성격을 만들어내야 했다.

천우희는 “(이수진) 감독님은 직접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배우에게 맡기는 편”이라며 “감독님의 설정과 맞아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나름대로 설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련화가) 그런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거짓된 말들에 시달리고, 하대와 무시를 당했을까 생각했다”며 “피해의식들이 많아서 뭐든지 말보다는 행동부터 하는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우상>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우상>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이수진 감독은 천우희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영화 <한공주>(2013)의 감독이기도 하다. 일을 할 때는 워낙 집요해서 같이 작업을 했던 배우나 스태프들은 혀를 내두르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다. 그러나 천우희는 <우상>의 시나리오를 받고 망설임 없이 다시 선택했다. 천우희는 “처음 겪어본 분들은 많이 당황스러웠겠지만, 저는 이미 경험해봐서 괜찮았다”며 “(감독이)밀어붙일 수록, 저도 ‘하는데까지 해보자’하며 나가는 성격이라 저랑은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천우희는 극중 장면 때문에 눈썹을 밀게되자 이수진 감독에게 ‘동참’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우희는 “감독님이 ‘특수분장도 싫고, CG도 싫다. 미는거 어때’ 하시길래 ‘현장에서 나 혼자 눈썹 밀고 웅크리고 있으면 좀 그러니까 감독님이 밀면 저도 밀게요’라고 툭 던졌는데 진짜 미셨다”며 “한동안 눈썹없는 둘이 현장을 돌아 다녔다. 진심으로 너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갖고 작업을 시작했지만 천우희는 <우상> 촬영을 진행하면서 큰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천우희는 “항상 최선을 다하긴 하지만, 매번 성장할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받아들였다”며 “선배들(한석규, 설경구)을 보면서 저렇게 오랫동안 좋은 연기를 하는 것,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우상>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우상>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언론 시사회 직후부터 나온 ‘영화가 어렵고, 불친절하다’는 반응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천우희는 “젊은 사람들은 어떤 뉘앙스나 느낌만으로도 따라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어렵다고 먼저 생각하면 거부감이 들기 쉬운데, 있는 그대로 보다 보면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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