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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에 대한 전문가 의견-혼인율 높이려면 결혼 때 임대주택 줘야 佛 유치원 99% 공립 벤치마킹해볼 만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9.03.15 09:19:48
한국 경제가 한창 성장하던 1960~ 1970년대 매년 태어난 아기는 약 90만명대였다. 1980년대 연평균 출생아는 대략 60만~70만명. 지금은 30만명대가 위협받는다.

90만명씩 태어나던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60만명이 90만명을 부양하는 구조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30만명이 60만명을 부양하는 시기가 오면 모두가 난감해진다. 2명이 3명 부담하는 것과 1명이 2명 부담하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다. 저출산은 인구구조 변화뿐 아니라 세대 간 극심한 갈등까지 야기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다.



▶혼인율 감소하니 출산율도 뚝

▷혼인율 높일 수 있는 대책 강구

2016년 이후 국내 혼인 건수는 처음으로 30만건이 무너졌다. 2009년 31만건으로 저점을 찍고 2011년 한때 32만9000건까지 올랐지만 2012년부터 매년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약 25만7700건으로 2017년과 비교해 약 6700건 감소했다. 기본적으로 혼인 자체가 줄다 보니 아기 숫자도 점점 줄고 있다.

실제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한국의 출산 장려 정책은 실패했는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유배우자 합계출산율(기혼 여성 출산율)은 2016년 기준 2.23명으로 높다. ‘기혼 여성’의 출산은 평균 출산율이 낮아지는 현재 모습과 큰 연관관계가 없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의 ‘1인 가구 현황과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45세 이상 비혼 가구는 44만6000가구(2015년 기준)에 달한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0배 정도 늘어났다.

결국 혼인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출산율을 올릴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혼인을 권장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혼인을 꺼리는 표면적인 이유 두 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교육과 주거다. 교육은 아기를 낳은 이후 발생하는 문제라면 주거는 혼인 전부터 결혼을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다.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혼인율을 높일 수 있다. 김명희 삼육대 스마트교양대 부학장은 “혼인을 하는 가구에 ‘장기 임대주택’ 등을 지원하거나 모든 아파트 청약 대상을 혼인 가구로 한정하는 등 극단적 정책이 필요하다”며 “출산 장려금 같은 일시적 지원책보다 가정을 꾸리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책을 내놔야 혼인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육환경 개선 위해

▷초등학교마다 탁아소 설치

지난 10년간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정부는 ‘보육환경 문제’로 봤다. 여기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다수가 보육환경이 나아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다. 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이 산다. 하지만 여기에 경쟁이 워낙 심하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결국 심리적, 구조적 밀도를 낮추는 일이 중요하다”며 세종시를 예로 들었다.

세종시 출산율은 1.67명으로 서울시(0.84명)의 2배다.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다. 물론 세종시는 공무원 중심 사회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도 출산율이 높은 이유일 터. 하지만 공무원이 많고 규모가 더 작은 과천시 출산율(0.85명)이 세종시 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무원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전문가들은 “세종시는 기본적으로 인구밀도 등 전반적인 밀도가 낮고 보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보니 출산율이 오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세종시 사례를 잘 분석하고 제대로 연구해 벤치마킹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보육환경 개선을 위한 획기적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점점 텅 비어가는 초등학교 시설 구조를 대폭 조정해 모든 초등학교에 탁아소나 유치원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한 전문가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프랑스 사례는 저출산 해법을 논할 때 늘 좋은 자료가 된다. 프랑스 유치원은 99%가 공립이다. 나머지 1%는 개인이 아닌 가톨릭교회가 운영한다. 프랑스에서 쓰는 정식 명칭은 ‘엄마학교’. 프랑스 엄마학교는 만 3살부터 6살 사이 유아 중 입학을 희망하는 모든 아이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1.88명. 한국의 2배다.

조영태 교수는 “맞벌이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100%에 가깝게 보육환경을 갖춰놓지 않는 한, 출산율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며 “지금까지 대책과 전혀 다른 보육 대책이 나와야 출산율 하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인 인식 전환 중요

▷혼외 자식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

“지금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전 세대와 모든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1990년대생이 결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출산율 0.98명이 아니라 0.5명을 위협받게 될지도 모른다.” 김명희 부학장의 경고다.

이른바 ‘출산 파업’ 중인 청년 세대의 요구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대체로 일관된 방향성이 있다. 아이를 낳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거와 보육 문제 해결에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명희 부학장은 “일본도 30년 전 저출산에 본격적으로 대응을 시작해 처음에는 보육의 양적 확대에 초점을 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고용과 보건, 교육 등 포괄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합계출산율을 한때 1.8명(현재 1.4명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모든 정책이 총망라돼 사회가 완전 바뀌어야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란 얘기다.

최근에는 동거에 보다 관대해지고 혼외 자식에 대한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에 프랑스 출산율이 오른 것은 훌륭한 보육정책 덕분이기도 하지만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자녀를 낳는 사람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혼외출산은 물론 동거에 대해서도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남녀가 결혼해야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출산율을 올리려는 노력과 동시에 변화하는 인구 상황에 맞춰 사회 다른 부분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두섭 한양대 특임교수는 “저출산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정책적 고려와 제도적 정비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며 “저출산, 인구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를 상쇄하는 이민정책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두섭 한양대 특임교수(전 아시아인구학회장)

인구정책 총괄할 컨트롤타워 필요

Q. 출산율이 급격하게 낮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A 경기 침체와 노동시장 불안정으로 젊은 층이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거나 기피한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의 급격한 변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대두, 양성평등 관념 확산도 급격한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다. 특히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젊은 층 출산율이 대폭 감소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출생아 수 감소는 가임여성인구가 줄어드는 것에도 영향을 줬다.

Q. 정부가 150조원가량을 쏟아부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였을까.

A 대부분 출산 장려 정책은 자녀를 출산한 부부에게 보조금을 주거나 육아를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 교육비와 경쟁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출산 억제로 대응해온 젊은 부부들이 이런 지원책으로 자녀를 더 낳을 가능성은 낮다. 그동안 정책은 효율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주요 대상 집단을 선정하는 ‘선택과 집중’에 실패했다. 인구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학계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정책 효과에 대한 평가 작업도 매우 미흡했다.

정부 조직의 제도적 문제점도 지적할 수 있다. 현재 대통령 산하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지만 실제로 출산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보직 순환으로 인해 인구정책 담당자들이 해당 직책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 전문성이 축적되기가 어렵다. 보건복지부 단독으로는 교육, 주거, 복지, 경제 등 인구정책 관련 정부 조직들을 총괄해 아우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형태의 정부 조직에서는 제대로 된 인구정책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있다.

Q.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을까.

A 영유아 복지정책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경기회복과 교육제도의 개선, 일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 등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는 한 광범위하게 정착된 저출산 문화를 바꾸기는 어렵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 태도를 변화시키려면 정부 조직과 체제를 강화하고 격상할 필요가 있다. 인구정책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강력한 힘을 실어주고, 그 조직은 이해집단 압력이나 선거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단기적 처방책과 함께 장기적인 출산 친화 환경 조성에 매진해야 한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9호 (2019.03.13~2019.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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