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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시대를 사는 법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9.03.15 09:20:53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한현규·김미숙 씨(가명)는 아이를 단 한 명도 낳을 생각이 없다. 둘 다 서울 소재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인 데다 지방 출신이라 육아를 도와줄 부모님도 가까이에 없기 때문이다. 한 씨는 “집 근처 어린이집은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고 혹시나 자리가 나더라도 야근이 많아 등하원 스케줄을 챙기기 어렵다. 부모님께 맡기지 않고는 도저히 아이 1명조차 키울 수 없고 교육비도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아이 1명당 1억원씩 지원해주면 몰라도 육아로 인한 고통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대한민국이 저출산 쇼크에 빠졌다. 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부부 한 쌍이 아이를 채 한 명도 낳지 않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역전해 머지않아 인구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군병력 부족, 국민연금 재정 고갈 등 후폭풍이 커질 전망이다. 기업도 저출산 시대에 대비한 마케팅 전략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묘안은 없는 것일까.



OECD 유일 ‘1명 미만 출산국’ 전락

정부 150조원 퍼붓고도 출산율 쇼크


0.98명.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다. 그동안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명 벽이 보란듯이 깨졌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일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를 말한다.

우리나라 출산율 하락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심각하다. 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국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국을 통틀어 한국이 유일하다. 전 세계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엔인구기금이 발간한 ‘2017년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98개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대만 출산율이 2010년 0.9명으로 떨어진 적이 있지만 다시 1명 이상으로 올라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8명에 그친 데다 출생아 수도 32만7000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머지않아 출생아 수가 30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대로라면 ‘인구감소 시대’가 앞당겨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출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인구 자연증가 규모는 2만8000명에 그쳤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4분기에는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1500명 더 많아 분기 기준 최초로 인구가 감소했다. 이 때문에 인구감소 시점이 당초 통계청 예상 시점인 2028년보다 훨씬 앞당겨질 전망이다.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어지는 ‘데드크로스’가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진은 수도권의 한 산부인과 모습.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진은 수도권의 한 산부인과 모습.

▶사망자>출생아, 인구감소 시대 눈앞

생산가능인구 줄어 국가 존립 위협

출산율이 급락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임여성이 감소한 데다 출산 연령 상향, 혼인 감소가 주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결혼 자체를 안 하는 게 문제다. 20대 후반(25~29세) 연령층의 1000명당 혼인율(2018년 기준)은 남성 31.5건, 여성 57.1건으로 2017년보다 각각 2건, 3.5건 감소했다. 20대 후반 여성 혼인율이 60건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다 보니 출산연령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평균 출산 연령은 32.8세로 전년보다 0.2세 높아졌다. 만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중은 31.8%로 전년보다 2.4%포인트 커졌다. 연령대별 출산율을 봐도 20대 후반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41명으로 30대 후반(35~39세, 46.1명)보다 한참 적었다. 최악의 취업난에다 주거, 양육비 부담까지 커지면서 결혼, 출산을 미뤄 노산 비중이 늘어난 셈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인구 자체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줬다. 주 출산 연령인 30~34세 여성 인구는 지난해 기준 15만6000명으로 2017년(16만9000명) 대비 5% 감소했다. 통계청은 이들이 태어난 1984~1990년 정부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정책을 펼쳐 출생아가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저출산, 인구감소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사회 전반에도 적잖은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고령화까지 겹쳐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저성장, 저소비, 저고용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노인 인구는 늘고 젊은 층 인구는 감소해 군병력 부족, 국민연금 재정 고갈 후폭풍까지 커질 수 있다. 인구절벽 현상으로 생산, 소비가 줄어드는 등 경제활력이 떨어져 국가 존립마저 위협받는다. 출생아 수 감소로 주요 대학마다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재정난을 맞을 우려도 크다.

정부도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그동안 온갖 대책을 내놨다. 2006년부터 저출산 예산으로 쏟아부은 돈만 150조원에 달한다. 출생아 한 명당 투입된 저출산 예산도 2006년 465만원에서 지난해 6669만원으로 14배 넘게 뛰었다.

문재인정부 역시 저출산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가 2017년과 지난해 저출산 대책 명목으로 쓴 돈은 60조원에 달한다. 아동수당을 신설하고 신혼부부 주택 건설, 육아휴직 지원 등 온갖 대책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오히려 떨어지면서 ‘차라리 갖가지 지원금을 한꺼번에 현금으로 줘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정부 출산 정책이 사실상 실패한 만큼 외국의 저출산 정책을 눈여겨볼 만하다. 남성 육아 참여를 늘리고 여성 육아 부담을 줄여준 점이 눈길을 끈다. 스웨덴은 12세 이하 자녀가 아프면 연간 60일 한도로 총 120일 간병휴가를 지원한다. 한 가정에 480일간 육아휴직을 주는데 남성만 쓸 수 있는 기간을 90일로 못 박았다. 남성이 못 쓰면 여성도 쓰지 못하도록 해 남성 육아휴직 참여율을 끌어올렸다.

독일은 아이를 낳는 가정에 파격적인 지원 혜택을 준다. 출산 직후부터 만 18세가 될 때까지 둘째 아이부터 매달 194유로(약 24만원)가량을 지원한다. 무려 20년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는 구조다. 프랑스는 여성이 출산 후 1년간 휴가를 다녀와도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해준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유럽국가 사례를 참고해 일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거나 경력 단절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박수호·강승태·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9호 (2019.03.13~2019.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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