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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훈 사장 맞는 현대상선 앞날은…컨테이너 해운 경험 없어 난제 헤쳐갈지 의문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9.03.18 07:15:01
유창근 사장이 물러나고 현대상선 신임 대표로 배재훈 전 판토스 대표(작은 사진)가 내정되면서 해운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유창근 사장이 물러나고 현대상선 신임 대표로 배재훈 전 판토스 대표(작은 사진)가 내정되면서 해운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린 현대상선의 유창근 사장이 갑작스레 퇴임하고 신임 CEO로 배재훈 전 판토스 대표가 내정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15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내기는 했지만 한창 턴어라운드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유 사장이 퇴임하는 것은 대주주 KDB산업은행 압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때문이다.

유 사장은 현대종합상사, 현대건설을 거쳐 1986년 현대상선에 입사해 30여년간 몸담은 해운업계 베테랑이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현대상선 자회사 해영선박 대표이사를 지냈고 2012년 현대상선 사장을 맡았다. 2년간 현대상선을 이끌어오다 2014~2016년 인천항만공사 사장으로 잠시 물러났다. 그러다 2016년 현대상선으로 복귀해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오면서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유 사장은 지난해 말 ‘비전 선포식’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금 조달,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통해 2020년 2분기부터 글로벌 선사를 제치고 나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2022년까지 ‘1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분)급 선사’로 발돋움해 연 100억달러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까지 내놨다.

▶새로운 해운동맹 등 과제 산적

당초 유 사장 임기 만료는 2021년 3월. 그럼에도 임기를 2년이나 남기고 사의를 표명해 배경을 두고 말이 많았다. 유창근 사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지난 2년 반 동안 현대상선 재건을 위한 기초를 닦은 것으로 판단한다. 2020년 이후 현대상선의 새로운 도약은 새로운 CEO 지휘 아래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산업은행의 직간접적인 압박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 지분 13.1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유 사장 용퇴설은 지난해 말부터 제기됐다.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대해 ‘위기의식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자주 표출해온 것이 영향을 미쳤다. 급기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말 “현대상선에는 모럴해저드가 만연해 있다. 안일한 임직원은 즉시 퇴출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직원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유창근 사장 책임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이뿐 아니다. 채권단은 지난해 말 현대상선 경영실사보고서를 공개하고 “정부 지원이 없으면 당장 내년부터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다”며 현대상선 경영진을 압박했다.

물론 현대상선이 최악의 성적표를 내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매출이 5조2221억원으로 전년 대비 3.9% 늘었지만 영업적자만 5765억원을 기록했다. 분기별로 보면 지난해 4분기까지 15분기 연속 적자인 데다 2017년 영업손실(4068억원)보다 더 심각하다.

그동안 채권단은 현대상선에 수조원을 지원해왔다. 2017년 2월 한진해운 파산 이후 유일한 국적 선사 현대상선에 2조원가량을 투입한 데다 지난해 말에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사채(CB)를 떠안고 1조원을 추가 수혈했다. 채권단이 현대상선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대 5조원을 추가 조달해야 한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상선 실적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참다못한 채권단이 내부 분위기를 다잡으려 유 사장 교체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해운업계에는 채권단이 유 사장에게만 책임을 전가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현대상선 실적이 악화된 것은 글로벌 해운 업황이 침체된 데다 정부가 해운업 구조조정을 실기한 영향도 크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실적만 놓고 보면 유 사장 책임론이 나올 법하지만 임기 동안 거둔 성과도 적지 않다.

일례로 유 사장은 외국 회사에 넘어갔던 부산신항 4부두 운영권을 올 초 되찾았다. 이로써 2만3000TEU 초대형 컨테이너를 기항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데다 하역료율을 낮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사장 재임 중 물동량을 300만TEU에서 450만TEU로 50% 이상 늘렸고 글로벌 시장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점도 성과로 평가받는다. 현대상선은 2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을 비롯해 총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스크러버(황산화물 저감장치) 장착형으로 발주했다. 이 덕분에 2020년부터 시행되는 국제해사기구의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현대상선 내부에서는 아무리 해운 업황이 악화돼도 2020년에는 흑자전환이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유 사장이 사퇴하고 신임 CEO로 배재훈 전 대표가 내정되면서 얼마나 제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산업은행은 최근 “현대상선 경영진추천위원회가 배재훈 전 대표를 최종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오는 3월 27일 정기주주총회에 신임 대표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배 내정자는 1953년생으로 배명고와 고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해 LG반도체 미주지역 법인장, LG전자 MC해외마케팅 담당 부사장, 판토스 대표를 역임했다. 산은 측은 “배 내정자는 대형 물류회사 CEO를 6년간 성공적으로 역임한 물류 전문가로서 영업 협상력, 글로벌 경영 역량, 조직관리 능력 등을 겸비했다. 특히 현대상선 고객인 화주의 시각으로 현대상선 현안에 새롭게 접근함으로써 경영 혁신, 영업력 강화를 이끌어 조속한 경영 정상화에 큰 역할을 할 적임자”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배 전 대표가 컨테이너 해운업 경험이 없는 만큼 해운업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현대상선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알짜 사업이었던 벌크전용선, LNG선 사업을 다 팔고 컨테이너선 사업만 남은 상황이라 당장 흑자 반전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해운업 경험이 없어 그나마 순조롭게 진행해온 물동량 회복 등 턴어라운드 과정이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해운업계 관계자 얘기다.

현대상선 차기 CEO로 내정된 배재훈 전 대표는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겁다. 당장 실적 회복이 급선무다.

글로벌 물동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컨테이너선 공급이 넘쳐나 현대상선은 공급과잉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상선 전체 매출 중 컨테이너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0%에 달한다. 선박에 주로 쓰이는 벙커C유 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현대상선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싱가포르 기준 벙커C유 가격은 2017년 4월 t당 306달러에서 지난해 11월 472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나마 매 분기 적자폭이 줄어드는 것은 고무적이다. 지난해 4분기 현대상선 영업적자는 835억원으로 2016년 4분기(-1861억원), 2017년 4분기(-1180억원)보다 감소했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관세 부과 전 각국 수출 물량이 증가하며 컨테이너선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 주력인 미주 노선 물동량 확대가 호재로 작용했다. 오형석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해운업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 만큼 해운 업황 개선, 선대 확장 효과로 현대상선 수익성 회복이 가능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뿐인가. 불황에 시달려온 글로벌 해운사들이 합종연횡에 나서면서 현대상선을 비롯한 중위권 선사부터 고사될 우려가 크다. 중국 해운업체 코스코는 홍콩 OOCL을 인수해 덴마크 머스크라인, 스위스 MSC에 이어 세계 3대 선사로 올라섰다. 머스크라인도 2017년 말 독일 해운사 함부르크수드를 품에 안아 2위 MSC와의 선복량 격차를 벌렸다. 글로벌 상위 7대 선사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75%에 이를 정도다.

해운사 합종연횡은 현대상선 등 중위권 선사를 고사시키기 위한 목적도 크다. 해운업은 선복량, 즉 적재량이 많을수록 운송 비용이 절약된다. 초대형 선박을 늘리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현대상선 선복량은 41만TEU로 세계 1위 머스크라인(401만TEU)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현대상선은 세계 1, 2위 선사 머스크라인, MSC가 소속된 ‘2M’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었지만 내년 3월 협력관계가 끝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2M과 협력관계가 끝나고 경쟁력 있는 조건으로 새 동맹을 맺지 못한다면 현대상선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우려가 크다”고 귀띔했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9호 (2019.03.13~2019.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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