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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와 BT 결합한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 | 신약물질 발굴·조기 진단에 AI 기술 접목 글로벌 데이터 활용, 임상 성공 확률 ‘쑥쑥’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19.03.18 16:55:27
국내 바이오 기업 활약이 두드러진다. 바이오 스타트업이 IT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가운데 중대형 제약사는 잇따라 기술수출 낭보를 전하며 K바이오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유한양행 연구소.

국내 바이오 기업 활약이 두드러진다. 바이오 스타트업이 IT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가운데 중대형 제약사는 잇따라 기술수출 낭보를 전하며 K바이오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유한양행 연구소.

바이오마커 기반 항암제 개발사 웰마커바이오의 진동훈 대표는 최근 우크라이나로 달려갔다. 바이오 스타트업 메카로 불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중앙아시아로 향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코카서스는 물론 크림 타타르,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인종이 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소련 시절 높은 과학기술을 자랑했던 지역으로 데이터 분석에 강하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신약 개발 임상시험 최적의 장소였던 셈이다.

웰마커바이오는 우크라이나 정부 후원을 받아 비닛샤국립의대·포딜야암센터와 신약 개발 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비닛샤국립의대는 24개 지역 산하 의료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포딜야암센터는 우크라이나 신규 암환자 15만명의 10%를 치료하는, 가장 규모가 큰 국립 의료기관이다. 우크라이나의 풍부한 의료 네트워크와 환자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진동훈 대표는 “임상 전 단계에서 항암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기회를 얻었고 글로벌 임상시험 전진기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며 “향후 데이터 기술과 접목시켜 임상 역량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뚜렷한 산업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국내 바이오 기업 활약이 두드러진다. 스타트업은 BT(바이오기술)와 IT(정보통신기술)를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 해외로 발을 넓히고 있다.

엔솔바이오사이언스는 IT와 BT를 결합한 대표 기업이다. 김해진 엔솔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컴퓨터공학과 바이오를 전공하고 20년간 ETF(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1년 BT와 IT, BT와 한의학 등 융합 지식을 토대로 바이오벤처에 뛰어들었다. 비즈니스 모델은 실험 없이 바이오 빅데이터로 특정 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것. 이른바 바이오 빅데이터 신약 발굴 플랫폼 기술이다.

과정은 지식 베이스 구축 → 후보물질 탐색 조건 확립 → 후보물질 탐색 등 3단계로 진행된다. 후보물질 탐색을 위해 문헌과 논문을 조사하고 분석한다. 또 임상 전문의 등을 통해 전문지식을 수집하고 지식 베이스를 구축한다. 이후 질병 발병 기전 가설과 치료 방향을 세우고 타깃, 약효, 독성, 제형 등 후보물질 탐색 조건을 확립한다.

바이오 빅데이터가 마련되면 신약 후보물질 탐색에 들어간다. 발굴된 물질은 작용 기전을 규명하며 가설을 입증한다. 또한 후보물질 부작용과 독성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엔솔바이오사이언스 측 설명이다.

김해진 대표는 “플랫폼 기술로 임상에서 실패할 물질을 배제해 반복 실험과 시행착오가 없다”며 “지속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업그레이드하고 머신러닝 기술 수준을 높여 신약 개발 비용과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엔솔바이오는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브니엘2000, 골관절염 치료제 엔게디1000을 개발해 사업화에 들어갔다. 브니엘2000은 임상 2상 신청 중이고 엔게디1000은 임상 1상 승인이 난 상태다. 유방암, 알츠하이머 치매, 제1형 당뇨병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엔솔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기술력을 인정받아 코넥스 시장에 진입했다.

엑소좀 치료제 개발기업 엠디뮨도 IT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엠디뮨의 차세대 항암제는 암세포를 인식하는 면역세포로부터 신호전달물질(엑소좀)을 분리한 뒤 이를 항암제와 병용 투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일반 항암제를 표적항암제처럼 사용할 수 있다. 정상세포를 죽이지 않고 암세포만 직접 공격하게 유도한다는 뜻이다.

배신규 엠디뮨 대표는 “엑소좀 흐름을 스캔하면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데 이때 IT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며 “진단과 치료를 겸한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 Therapy+diagnosis의 합성어)’ 영역에서 IT가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엠디뮨은 엑소좀 기술력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연구개발(R&D) 자금과 해외 마케팅을 지원받는다.

에이씨티 자회사 진소트는 일본 후지쯔와 업무협약을 맺고 인공지능(AI)을 접목시켜 조기 암진단 관리에 나선다. 진소트는 조기에 암을 발견할 수 있는 진단키트를 연구개발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유전체 분석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른바 ‘바이오인포메틱스(bioinformatics)’다. 진소트는 환자에게 유전자, 단백질, 화합물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한편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 정보를 후지쯔에 제공하기로 했다.

2001년 설립된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도 바이오인포메틱스 기업으로 꼽힌다. 김철우 대표는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으로 교수 시절 전공인 병리학 분야 연구로 ‘스마트 암검사’를 개발했다. 이 회사의 ‘i-FINDER 스마트 암검사’는 혈액 다중표지자 검사로 단백체학과 생물정보학을 결합했다. 폐·간·위·대장·전립선·유방·췌장·난소암 8가지 암과 8대 만성질환에 대한 위험도 분석이 가능하다.

▶제약사, 수입도매상 멍에 벗고 다각화

적극적인 R&D 투자로 기술수출 낭보

바이오 스타트업이 IT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가운데 중대형 제약사는 잇따라 기술수출 낭보를 전하며 K바이오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대 바이오 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를 앞둔 지난 1월 5일, 유한양행은 미국 다국적 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와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후보물질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금액으로 따지면 9000억원에 달한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7월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후보물질인 ‘YH14618’을 스파인바이오파마로 2400억원에 기술수출했다. 11월에는 얀센에 비(非)소세포폐암 치료제 후보물질 ‘레이저티닙’ 기술을 1조4000억원에 이전했다. 지난해 두 치료제가 다른 바이오벤처와 협업해 이룬 성과라면 이번 간질환 치료제는 유한양행이 독자 개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유한양행은 계약금으로 1500만달러를 챙겼다. 아울러 개발 성과에 따른 마일스톤 기술료 7억7000만달러와 함께 향후 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를 받게 된다.

유한양행은 2014년 국내 제약사 중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당시 전체 매출에서 수입 의약품 판매가 차지한 비중이 70%였다. 다른 제약사도 상황은 비슷했다. 4년 뒤인 2018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국내 제약사가 5개로 늘었다. 이 중 한미약품은 매출 93.3%를 자체 개발 제품에서 거뒀다. 1조원을 눈앞에 둔 셀트리온도 독자 개발한 바이오시밀러(복제 바이오의약품)가 주요 매출원이다. ‘수입약 도매상’에 불과했던 국내 제약사들이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중국 바이오 제약사인 ‘3S바이오’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것 역시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오리지널약인 아바스틴의 바이오시밀러 ‘SB8(성분명 베바시주맙)’ 등 일부 파이프라인 판권을 3S바이오에 위임하게 됐다. 아바스틴은 대장암, 폐암 등 치료에 쓰이는 글로벌 의약품. 양 사는 SB8 외에 다른 신약물질에 대해서도 중국 내 임상과 판매허가, 상업화에 대해 협업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판권 위임에 대한 선수금과 로열티 등을 3S바이오에서 지급받는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중국 임상, 인허가, 상업화 등에서 역량을 보유한 3S바이오와의 협업을 통해 중국 바이오의약품 시장에 진입해 사업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기술수출뿐 아니라 국산 의약품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낸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국산 의약품은 4개였다. 올해는 최대 8개가 허가를 받을 듯 보인다. 대웅제약은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가 FDA 허가를 받아 미국 출시를 앞뒀다. 셀트리온은 ‘허쥬마’와 ‘트룩시마’ 판매가 미국에서 본격화된다.

실제 국내 바이오의약품 수출은 최근 10년간(2007~2017년) 6배 넘게 늘어나며 전자나 자동차 등 기존 산업을 압도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6년 수출액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5년간 연평균 30%에 달하는 수출 증가율을 감안하면 지난해 수출액은 1조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화학 합성약 위주의 제약사 수출까지 더하면 전체 의약품 수출 규모는 4조원이 넘는다.

바이오의약품 수출이 증가하는 것은 전 세계 의약품 시장 중심축이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 쪽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제약산업 분석업체 이밸류에이트파머에 따르면 2016년 2020억달러였던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9% 성장해 2022년 326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0호 (2019.03.20~2019.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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