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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메카 샌프란시스코 현지 르포] (3) 바이오 메카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제2제넨텍 꿈꾸며…인재 5만명 ‘비지땀’

  • 류지민 기자
  • 입력 : 2019.03.18 17:06:17
  • 최종수정 : 2019.03.27 10:48:13
미국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을 빠져나와 101번 고속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10여분 남짓 달리면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도착한다. 입구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탄생지(Birth Place of Biotechnology)’라고 쓰인 파란 입간판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DNA 이중 나선 구조를 형상화한 간판의 모습은 이곳이 세계 바이오 산업의 중심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든다.

202만㎡ 규모(축구장 283개)의 샌프란시스코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연매출 20조원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바이오 기업 제넨텍을 비롯해 암젠, 서모피셔사이언티픽 등 200여개가 넘는 바이오 기업과 R&D센터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바이오 전문인력만 5만여명, 연간 바이오벤처로 투자된 금액은 2조원이 넘는다.

1976년 제넨텍의 창시자인 로버트 스완슨 박사와 허버트 보이어 박사가 사우스 캘리포니아 인근 구릉지에 컨테이너 박스로 연구소를 만든 뒤 50여년 만에 이곳은 전 세계 바이오테크의 메카로 완벽히 탈바꿈했다.

사우스 샌프란시스코는 조선소 용접이나 물품 하역 등 단순 노무직 중심의 공업 지역에서 어떻게 세계 바이오 산업의 성지가 됐을까.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제2의 제넨텍’을 꿈꾸는 바이오 기업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제2의 제넨텍’을 꿈꾸는 바이오 기업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넨텍 성공 신화가 클러스터 토대

▷혁신적 연구자와 안목 있는 투자자 만남

샌프란시스코 바이오 클러스터는 제넨텍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세계 최초의 유방암 치료용 바이오 신약 허셉틴을 비롯해 리툭산·아바스틴 등 매년 수조원씩 팔리는 블록버스터 신약이 제넨텍에서 쏟아져 나왔다. 제넨텍의 성공 신화를 목격한 바이오 기업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바이오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이른바 ‘제넨텍 효과’다.

제넨텍은 혁신적인 연구자와 안목 있는 투자자가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벤처투자자의 원조 격인 로버트 스완슨이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 분교(UCSF)에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연구하던 허버트 보이어 교수와 자주 만나 맥주를 마시다 의기투합해 제넨텍을 창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제넨텍 본사에는 맥주를 마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을 찾아볼 수 있다. 똑똑한 돈과 혁신 기술의 시너지를 기억하자는 취지다.

제넨텍 관계자는 “창업 당시 벤처 정신을 잊지 않고 40년 넘게 원칙을 지켜온 것이 성공 비결”이라며 “정부의 지원, 저명한 학회와의 뛰어난 접근성, 현지의 우수한 인력 등 샌프란시스코 바이오 클러스터의 환경이 더해져 제넨텍의 경쟁력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충북 오송 등지에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해 바이오 산업을 육성 중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일각에서는 한국형 바이오 클러스터 육성을 위해서는 제넨텍 같은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일랜드와 싱가포르는 바이오 산업 기반이 없었던 상황에서 글로벌 바이오 기업 유치를 통해 산업을 성장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탄탄한 정부 지원과 투자 환경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

이미 세계 최고의 바이오 클러스터지만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시는 우수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매년 수천억원을 투자해 교통, 정수시설 등 인프라 개선에 힘을 쏟는 한편 수시로 해외 바이오 관계자들을 초청해 바이오 클러스터 입주를 독려한다. 휴일에도 시장이나 관계자가 직접 행사장에 나와 투자설명회를 진행하는 것은 이곳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시는 입주를 원하는 기업에 맞춤 지원을 위해 바이오 클러스터 면적을 계속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지금도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곳곳에서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호텔과 카페테리아, 편의시설과 연구동 등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뛰어난 입지와 연구 인프라가 뒷받침되면 우수한 인재는 자연스럽게 모인다는 것을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통해 경험한 결과다.

바이오 산업에 최적화된 투자 환경도 매력적이다. 바이오 클러스터에 위치한 20여개 벤처캐피털의 투자금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바이오 분야로 유입된다. 정부의 적극적인 바이오 육성 정책 덕분이다.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정부 관계자는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은 우수한 인력 확보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지난 40년간의 경험으로 바이오 기업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 등 맞춤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스타트업-VC’ 생태계 구축

▷풍부한 임상 환경과 글로벌 기업 지원

‘제2의 제넨텍’이 탄생할 수 있는 바이오 생태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사우스 샌프란시스코가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연구기관)-스타트업-벤처캐피털’로 구성된 바이오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UC버클리, UC샌프란시스코, 스탠퍼드 등 인근 명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생명공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진다. 연구실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대학병원의 풍부한 임상 환경을 통해 구체화되고, 구글 등 대기업이나 벤처캐피털과 만나 곧바로 사업화로 이어진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될성부른 떡잎을 먼저 발견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노바티스의 바이오미(Biome), 존슨앤드존슨(J&J)의 제이랩스(JLabs) 등은 바이오 스타트업의 이노베이션센터이자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제이랩스에는 100여개가 넘는 바이오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실험실부터 회의실, 휴게실 등 자유롭게 연구하고 실험하며 아이디어를 키우기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스타트업이 구입하기 어려운 비싼 장비들은 GE가 무상으로 지원한다.

제임스 비올라(James Viola) 존슨앤드존슨 이노베이션마케팅 매니저는 “제이랩스에 입주한다고 해서 J&J가 지분이나 기술에 대한 우선권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제이랩스에서 싹을 틔운 스타트업들이 언젠가 상품화에 성공한다면 존슨앤드존슨과의 좋은 관계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 박효민 진에딧(GenEdit) CTO

“깐깐한 검증 요구하지만 사업성 있다면 OK”

진에딧(GenEdit)은 이근우 CEO와 박효민 CTO가 버클리대 생명공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창업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 바이오벤처다. 미국 네이처 등에 연구 결과가 수차례 게재되는 등 학계와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창업 3년 만에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학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진에딧은 샌프란시스코 바이오밸리의 성공 방정식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Q. 에딧은 유전자가위 기술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A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는 타깃 유전자만을 정밀하게 조준해서 편집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다. 진에딧은 유전자가위를 어떻게 약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했다. 독자적인 체내 전달 플랫폼을 통해 유전자 치료제를 몸안에서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유전자가위가 유전자 치료제로서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Q. 창업 3년 만에 펀딩에 성공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A 실리콘밸리 최고의 투자회사인 세코야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세코야가 최근 바이오 분야에 눈을 돌리면서 처음으로 투자한 바이오테크 기업이라는 점이 더욱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유전자가위를 직접 주입하는 치료제로 임상에 들어간 사례는 없었다. 현재 동물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임상이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어 2~3년 안에 인체 임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자체 개발한 전달기술을 기반으로 체내 크리스퍼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다면 다양한 유전질환으로 적용이 가능해진다.

Q. 빠르게 성과를 낸 비결은.

A 학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창업 초기 자금 여력이 없던 상황에서 대학 측이 연구실과 실험에 필요한 장비들을 제공해줘 큰 어려움 없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연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바이오 생태계를 적극 활용해 비교적 빠르게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벤처캐피털들은 깐깐한 검증을 요구하지만 일단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투자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바이오테크 기업에 많은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다.

[샌프란시스코 =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0호 (2019.03.20~2019.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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