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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메카 샌프란시스코 현지 르포] (2) 샌프란시스코에 부는 IT-BT 융합 바람| 빅데이터·머신러닝·AI·클라우드…이곳은 이미 5차 산업혁명 격전지

  • 류지민 기자
  • 입력 : 2019.03.18 17:40:09
  • 최종수정 : 2019.03.27 10:47:50
자율주행차, 비행택시, 블록체인 등 신기술이 쏟아지는 실리콘밸리에서 최근 혁신 열기가 가장 뜨거운 분야는 놀랍게도 바이오다. 전통적인 제약사들이 차지하고 있던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앞자리를 IT 기업이 하나둘 차지하기 시작했다. 빅데이터, 머신러닝, 클라우드 기술은 더 이상 바이오와 함께 언급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세계 최대의 IT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와 바이오 클러스터를 품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바이오테크 기업들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실리콘밸리의 따끈따끈한 최신 IT 기술이 그대로 바이오 클러스터로 날아가 적용된다.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서 IT와의 융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소다. 노바티스, 존슨앤드존슨(J&J), 바이엘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앞다퉈 이노베이션센터를 두고 바이오 스타트업에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것도 ‘IBT(IT+BT)’ 융합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IT를 등에 업은 바이오는 5차 산업혁명의 중심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분야로 꼽힌다.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은 IT, 의료, 에너지, 제조, 농업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인류의 삶에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혁신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만약 5차 산업혁명이 도래한다면, 샌프란시스코는 그 시발점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일 터다.

네오펙트의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뇌졸중 환자를 위한 재활기기다. 환자의 상태에 최적화된 훈련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과 훈련 기록을 데이터화해 제공하는 기능으로 미국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네오펙트의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뇌졸중 환자를 위한 재활기기다. 환자의 상태에 최적화된 훈련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과 훈련 기록을 데이터화해 제공하는 기능으로 미국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디지털 헬스케어 각광

▷네오펙트·어웨어…“우린 데이터 기업”

“저희는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라기보다는 데이터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승훈 네오펙트 미국법인장)

IT와 바이오의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나타나는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데이터 또는 소프트웨어 회사로 규정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뇌졸중 환자 재활훈련을 위한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개발한 네오펙트가 대표적이다. 뇌졸중 환자는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사용해 손·손가락·손목·아래팔 재활훈련을 할 수 있으며, 본인의 재활 경과를 웹 플랫폼을 통해 치료사에게 원격으로 전송해 담당 의사로부터 적절한 피드백을 받는다.

의료인이 아닌 공학도가 개발한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가 미국 시장에서 환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데이터 기록과 기능을 최소화한 단순함 덕분이다. 재활훈련 과정에서 대부분의 환자는 자신의 상태가 호전되는 정도를 파악할 수 없어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네오펙트의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게임이라는 요소를 적용해 재활훈련에 대한 흥미를 높였고, 매 훈련 기록을 데이터화해 수치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동기 부여를 했다.

김승훈 법인장은 “의료기기 개발 과정에 치료 프로그램과 연동할 게임 기획자와 데이터 전문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협업한다.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의 상태에 최적화된 훈련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가장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공기질 측정기를 개발한 ‘어웨어(Awair)’ 역시 데이터 전문회사를 표방한다. 어웨어는 공기 중 습도, 온도,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유기화합물 등을 측정해주는 기계다. 공기청정 기능이 없다 보니 처음 어웨어를 접한 사람은 ‘단순히 측정만 하는 것이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웨어의 진가는 따로 있다.

어웨어로 측정한 공기 정보는 곧바로 어웨어와 연동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어웨어 본사 서버로 전송된다. 공기 상태는 각 항목별 점수로 환산돼 보다 쉽게 현재 상황 확인이 가능하다. 어웨어 본사에서는 이렇게 수집·분석한 공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실내 환경 개선 솔루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실내 곰팡이 생성 조건을 분석하고 이후 곰팡이가 퍼지는 시점을 예측해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식이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알레르기나 피부 트러블, 숙면 정보를 입력하면 이에 따른 맞춤형 정보도 받아볼 수 있다.

어웨어 한 대당 하루에 수집하는 실내 환경 데이터는 약 4만5000개. 이렇게 전 세계 2500여개 도시에서 날아오는 데이터가 어마어마하다. 개인 건강정보와 결합하면 이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로날드 로(Ronald Ro) 어웨어 대표는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스마트홈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데이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단순 실내 환경 개선뿐 아니라 개인의 건강관리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스마트폰이나 사물인터넷 등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건강을 점검, 관리하고 질병을 예측하는 디지털 헬스케어는 최근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핫한 분야 중 하나다.

▶인공지능·머신러닝 새로운 기회

▷신약 개발 시간·비용 대폭 단축

이처럼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은 생명공학기술을 기반으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등을 결합한 질병 치료와 건강관리 제품·서비스로 영역을 빠르게 확장 중이다. 바이오·헬스케어 데이터 규모는 2013년 153엑사바이트(10억기가바이트)에서 2020년 2314엑사바이트로 15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신약 개발에 있어 임상시험 진행 여건이 악화되는 것도 데이터 분석의 몸값을 높이는 요인이다. 1990년대 평균 4.6년이었던 임상 기간은 2000년대 7.1년으로 1.5배 이상 길어졌다. 특히 최근에는 동물실험 금지 트렌드와 함께 임상시험 참가자 모집도 점차 어려워지는 추세다. 이에 데이터 활용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 미국 누메디(NuMedii)는 임상시험 진행 없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간질 치료제가 염증성 질환에도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빅데이터 기술에 힘입어 단돈 5만달러로 임상 2상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것이다.

민세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빅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관점의 통합 분석이 가능하고 진단에서 치료제 개발,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도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통상 12~14년 동안 1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대폭 단축시킨다. 신약 개발에 따른 화학물질은 가능한 모든 세포 유형, 유전적 돌연변이, 특정 질병에 대한 조건 등의 조합으로 테스트가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을 머신러닝을 통한 학습을 통해 단축할 수 있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특정 화학물질이 인간에 미치는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다.

진단 영역에도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활용된다. 질병 진단은 환자 피부의 변화에서 하루에 소비한 당 수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를 검토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지금까지 의학은 개별 증상에 기반한 진단에 머물러 있었다. 예를 들면 열과 코막힘이 있다면, 독감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이다. 하지만 암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병의 경우 증상으로 진단하면 너무 늦다. 여기에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하면 질병 진단의 정확도를 높여 최대 90%까지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글의 바이오 자회사 베릴리는 머신러닝을 통한 새로운 진단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베릴리 관계자는 “빅데이터 분석, 머신러닝 기법을 통해 각종 질병의 패턴을 인식하고 분석하면 치료 방법과 적합한 치료약을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인공지능을 통해 초기 약물 후보군 발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고 임상시험의 독성이나 부작용을 미리 예상해 리스크를 낮추는 연구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공기질 측정기 ‘어웨어’는 수집·분석한 공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실내 환경 개선 솔루션을 제공한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관리 영역까지 확장을 꾀하고 있다.

실시간 공기질 측정기 ‘어웨어’는 수집·분석한 공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실내 환경 개선 솔루션을 제공한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관리 영역까지 확장을 꾀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 IT 융합 잰걸음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의 활용

IT 기업과 바이오테크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글로벌 빅파마도 IBT 융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클러스터에는 머크, 암젠, 노바티스, 존슨앤드존슨, 바이엘, BMS 등 글로벌 빅파마의 R&D센터와 이노베이션센터가 줄줄이 입주해 있다.

그동안 신약 개발에 무게중심을 뒀던 빅파마 R&D센터에서는 IT 기술 도입과 디지털 혁신에 점차 힘을 쏟는 분위기다. 암젠(Amgen)은 최근 자사의 클라우드 인프라 대부분을 아마존웹서비스(AWS)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AWS를 기반으로 한 머신러닝 기술 도입과 함께 임상 데이터 분석과 약물 제조 프로세스에서 향상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노바티스와 J&J의 이노베이션센터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바이오 스타트업이 관련 분야 전문가, 창업투자회사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로부터 기술력, 사업 추진 계획을 평가받아 입주하면 노바티스, 존슨앤드존슨은 각종 지원과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약 개발에 주로 활용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을 바이오테크 기업과의 협업에도 활용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제이랩스 관계자는 “이노베이션센터의 1차 목표는 스타트업 지원이지만 그 과정에서 제약사 역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최신 IT 기술을 접할 기회를 얻는다. IT와 바이오의 융합이 대세로 자리 잡은 만큼 앞으로 이와 같은 빅파마가 주도하는 협업 시스템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 토르스텐 랄(Thorsten Rall) 노바티스 디지털전략 총괄부서장

‘하나의 노바티스’ 데이터 전략…시민 과학자 육성

노바티스는 샌프란시스코 바이오 클러스터에 디지털 이노베이션 연구실인 바이오미(Biome)센터를 운영 중이다. 바이오미센터는 샌프란시스코 바이오테크 생태계와 노바티스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큰 목적은 신속하고 과감한 디지털 혁신. 노바티스는 바이오미센터를 통해 경쟁력 있는 바이오테크 스타트업과의 접점을 마련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교류한다.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노바티스가 보유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한편, 법률적·제도적 지원을 포함한 멘토링 서비스도 제공한다. 토르스텐 랄(Thorsten Rall) 노바티스 디지털전략 총괄부서장에게 IBT 시대의 대응 전략을 물었다.

Q. 최근 IT 업체들의 바이오 분야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응 전략은.

A IT 기업의 진출을 환영한다. 바이오테크 기업과의 파트너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파트너십은 노바티스가 보유한 임상 데이터(200만명의 환자가 1년간 임상시험에 참여할 때 확보할 수 있는 규모)와 헬스케어 분야에서의 경험을 최첨단 기술과 융합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IT와 바이오가 융합돼야만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R&D 투자 원칙이나 방향은.

A 노바티스가 매년 R&D에 투자하는 금액은 약 90억달러에 달한다. 최근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디지털 혁신 분야다. 노바티스에는 약 250여명의 데이터 과학자를 비롯해 1500여명의 디지털 전문가가 있다. 이들을 활용해 직원과 환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롭고 혁신적인 플랫폼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총 500여건의 임상연구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전사적 차원에서 자원을 재분배해 노바티스 최고경영위원회가 정한 12가지 우선순위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Q. 노바티스의 데이터 활용 전략은.

A 노바티스는 ‘하나의 노바티스(One Novartis)’ 데이터 전략을 추진 중이다. 다양한 출처의 데이터를 하나의 데이터 클라우드에 모아 연결하는 것이다. 아울러 대규모의 데이터 플랫폼을 개발해 머신러닝, UX 디자인 등 선진 기술에 대한 경험과 통찰력을 상호 공유하고 시민 데이터 과학자(고도화된 전문 분석 기술 없이도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사람)를 전사적으로 육성할 수 있도록 전 사업 분야에 걸친 데이터 과학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0호 (2019.03.20~2019.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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