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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메카 샌프란시스코 현지 르포] (1) 생명공학의 발상지 ‘샌프란시스코’를 가다 | 생명연장·암 정복·수술로봇·DNA 지도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 구글이 만든다

  • 류지민 기자
  • 입력 : 2019.03.18 17:45:08
  • 최종수정 : 2019.03.27 10:48:36
진시황의 만리장성, 파라오의 피라미드 등 세계 곳곳에는 영생을 향한 인간의 열망이 녹아 있는 유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천 년이 흘렀지만 생명 연장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먼 훗날 현재를 돌아본다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테오 카운티(San Mateo County)에 있는 작은 도시, 사우스 샌프란시스코(South San Francisco)가 어쩌면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류의 문명으로 기록돼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공학의 발상지’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구글의 바이오 자회사 베릴리(Verily)가 스탠퍼드 의대와 함께 건강한 사람 1만명의 신체 정보를 추적 검사하는 ‘베이스라인 스터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구글의 생명공학 연구팀은 5년간 참가자의 혈압·피검사, 유전자 분석, 소변검사, 엑스레이, CT 촬영, 바이털 사인 등 모든 데이터를 추적·수집한다. 주요 목적은 건강한 신체의 조건과 유전자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생리학, 생화학, 광학, 이미징, 분자생물학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찾기 위해 매달리고 있다.

구글과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인 샌지브 갬비어 스탠퍼드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영화 관람’에 비유한다. 갬비어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삶을 2시간짜리 한 편의 영화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신체검사는 영화 상영 중간에 들어가 몇 초 정도를 보는 것과 같다. 자주 들어가본다 해도 전체 스토리와 메시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 줄거리가 복잡하거나 반전이 있다면 더욱 알기 어렵다. 반면 베이스라인 스터디 프로젝트는 2시간짜리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고 문제가 되는 메시지(질병)를 찾아내 이를 치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글의 관심사는 질병을 미리 예측하는 ‘예방의학’에 그치지 않는다. 구글의 바이오 자회사 칼리코(Calico)는 인간 수명을 500세까지 연장시키는 장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칼리코는 ‘캘리포니아 생명 기업(California Life Company)’의 약자로 노화의 근본 원인을 알아내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것이 목표다. 이미 보유한 100만명 이상의 유전자 데이터와 700만개 이상의 가계도를 바탕으로 유전자 패턴을 분석해 연구에 활용한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구글 본사로부터 약 50㎞ 떨어진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베릴리와 칼리코를 비롯해 구글이 투자한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구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생명 연장, 질병 퇴치 등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다. 구글이 바이오에 빠진 이유는 뭘까. 샌프란시스코를 직접 찾아 그 배경과 현황을 들여다봤다.

▶바이오·헬스케어 투자 늘리는 구글

▷생활 수준 향상·고령화로 폭발적인 성장

수명이 다할 때까지 20~30대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진통제 없이도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질병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있다면?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만한 이 질문들은 최근 구글의 가장 큰 관심사다. 구글의 신사업 투자를 담당하는 구글벤처스는 이 답을 찾기 위해 2014년 이후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알파벳(구글 지주회사)이 보유하고 있는 헬스케어 관련 특허만 200여건에 달하며, 베릴리나 칼리코 등 바이오 자회사를 통한 직접 개발 외에도 글로벌 빅파마와 손잡고 바이오·헬스케어 신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영준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은 “구글은 바이오 분야 선두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전방위로 다양한 유형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구글벤처스의 바이오·헬스케어 투자 비중도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유망하다고 알려진 바이오테크 기업 대부분은 구글의 투자 물망에 한 번씩은 올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 IT 기업인 구글이 바이오와 헬스케어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구글 비밀연구소 ‘X’의 모 가댓(Mo Gawdat) 신사업개발 총괄책임자(Chief Business Officer)는 이에 대해 “인간은 애초부터 행복하게 살도록 설계돼 있다”는 말로 답한다. 즉, 사람들은 더 오래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망을 갖고 있고, 구글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론 구글이 단순히 공익적 차원에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2017년 기준 미국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3조5000억달러(약 3961조원)로, 미국인 1인당 1만739달러(약 1207만원)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뿐 아니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고령화로 더 나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핵심 요소가 보건의료와 생명공학 중심에서 ‘데이터 분석과 예측’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구글이 힘을 쏟는 요인이다. 최근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은 빅데이터 활용을 계기로 전혀 다른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릴리의 베이스라인 스터디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 1만명의 생활을 스마트워치와 센서로 일일이 추적해 모은 데이터가 확보됐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구글벤처스의 투자 전략을 들여다보면 구글이 바이오·헬스케어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구글벤처스가 투자한 바이오 스타트업은 대부분 유전자 분석, 빅데이터, AI 알고리즘 기반 치료제 등 구글의 IT 기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들이다. 구글벤처스의 제너럴파트너(GP)인 크리슈나 예시완트(Krishna Yeshwant)는 “구글벤처스는 헬스케어와 데이터가 만나는 지점에 특히 관심이 많다. 바이오와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기술과 제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은 바이오 자회사 베릴리(Verily)와 칼리코(Calico), 구글벤처스 등을 중심으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구글은 바이오 자회사 베릴리(Verily)와 칼리코(Calico), 구글벤처스 등을 중심으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빅데이터·머신러닝 기반 연구 성과

▷진단 정확성 향상·비용 절감 효과

구글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서 인간은 더 이상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

전 세계 사망자 수의 30%를 차지하는 사망 원인 1위 질병, 심혈관질환이 대표적이다. 베릴리의 연구소에서는 혈액검사 없이 안구검사만으로 심혈관질환 가능성을 예측하는 방법을 발견해 상용화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환자의 눈을 스캔해 안구 뒤편 사진을 얻은 뒤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심혈관질환과 관련된 요소들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분석하면 환자가 심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 베릴리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 수준에서 5년 내 심장질환 발병 가능성을 70%의 정확도로 예측이 가능하다. 베릴리는 30만여명의 안구 스캔 데이터를 바탕으로 망막 분석 모델을 만들었는데,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알고리즘 정확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릴리 펭(Lily Peng) 구글 리서치의학영상팀 프로덕트매니저는 “망막 등으로 구성된 안저(eyeground)는 몸의 전반적인 건강을 반영하는 혈관이 가득 차 있어 이를 통해 심혈관질환 여부를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채혈 없이 손쉽고 빠르게 심혈관계 질환 발생 징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면서도 정확도가 기존 혈액검사 방식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암은 어떨까. 머지않아 피 한 방울로 암진단이 가능한 시대가 올지 모른다. 베릴리가 투자한 프리놈(Freenome)은 혈액의 DNA를 추출해 암 전조 현상을 잡아내는 ‘액체생검(liquid biopsy)’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베릴리 사옥 내에 있는 프리놈 임상실험실에서는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혈액 속 DNA 조각으로부터 암세포가 방출하는 생물학적 신호를 추출해내는 연구가 한창이다. 최근 각광받는 액체생검 기술은 고가의 검사 비용이 상용화 걸림돌로 여겨지는데, 프리놈은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수술로봇의 출현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구글이 존슨앤드존슨(J&J)과 공동 설립한 합작회사 버브서지컬(Verb Surgical)은 소형 스마트 수술로봇 개발을 진행 중이다. 실리콘밸리 구글캠퍼스 내에 위치한 버브서지컬에는 구글 본사에서 파견된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들이 다수 일하고 있다. 머신러닝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플랫폼을 만들어 숙련된 의사가 하는 수술 기법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던 기존 수술로봇과 달리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 스스로 수술 부위를 판단하고 집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마치 알파고가 스스로 바둑 원리를 깨우쳐가며 세계 최고의 바둑 고수가 된 것과 유사한 원리다. 수술로봇의 진화가 계속되면 언젠가는 외과의사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버브서지컬은 지난 2017년 이미 디지털 수술 시연을 성공했고, 그동안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2020년 본격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각 분야 선두 기업과 파트너십 추진

▷구글벤처스 투자 유치는 돈 이상의 의미

아마존, 애플, MS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잇따라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구글의 행보가 유독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자체 헬스케어 서비스 플랫폼 개발에 초점을 맞춘 아마존이나 애플과 달리 구글은 ‘협력’을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의 모토로 삼았기 때문이다. 구글은 다양한 분야의 선두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공동 연구를 하는 한편 베릴리, 칼리코, 딥마인드(DeepMind), 네스트(Nest) 등을 통해 각기 다른 유형의 바이오·헬스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 지 10년 남짓이지만 구글이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할 정도다. 베릴리만 하더라도 현재 20여개가 넘는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구글벤처스의 파급력은 더욱 막강하다. 실리콘밸리에서 바이오 스타트업이 구글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것은 단순히 자금 여유가 생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구글이 보유한 데이터 처리 노하우와 머신러닝 기술, 클라우드 플랫폼 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놈은 구글 투자를 계기로 베릴리 사옥 내에 임상실험실을 갖추게 되면서 기술 개발에 가속도가 붙었다. 300㎡ 규모 실험실에 빼곡히 들어찬 머신러닝 장비와 DNA 분석기는 모두 구글 지원하에 마련된 것. 게놈 플랫폼 연구를 하는 디엔에이넥서스(DNAnexus) 역시 구글 투자가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디엔에이넥서스는 인간의 게놈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각종 생체 정보를 뽑아내는데 그 과정에 구글의 게놈 변이 분석 딥러닝 기술인 딥배리언트를 활용했다.

판판(Fan Fan) 디엔에이넥서스 부사장은 “구글의 클라우드 시스템과 딥러닝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데이터 처리 속도가 대폭 빨라졌다. 구글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 하나의 인증으로 작용해 다른 바이오·헬스케어 기업과의 협업 기회가 늘어난 것도 긍정적인 효과”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 가브리엘 오트(Gabriel Otte) 프리놈 CEO

구글 인프라 활용…시너지 효과 ‘쏠쏠’

프리놈(Freenome)은 혈액 속 미량의 암세포 DNA 조각으로 암을 진단하는 액체생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바이오테크 기업이다.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구글의 투자와 함께 베릴리 내에 입주하는 기회를 얻었다. 가브리엘 오트 CEO를 만나 구글 투자의 배경과 효과에 대해 물었다.

Q. 프리놈의 주력 분야는 무엇인가.

A 액체생검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프리놈은 초기 암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미국 시장을 놓고 봤을 때 이미 암에 걸린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100만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초기 암 진단은 9000만명이 잠재 후보군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초기 암진단 시장 규모를 500억달러로 추정한다. 현재 개발 상황은 실제 암에 걸린 사람의 경우 85% 정확도로 초기 진단이 가능한 수준이다. 2~3년 안에 상용화하는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Q. 왜 구글이 프리놈에 투자했다고 생각하나.

A 구글은 과거 EHR(Electronic Health Records·전자건강기록) 시장에 진출하려다 포기한 전력이 있다. EHR은 기존 종이차트에 기록했던 인적사항, 병력, 건강 상태 등 환자의 모든 정보를 전산화해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수많은 의료 규제를 뚫으며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반면 프리놈은 풍부한 환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데다 임상 관련 FDA 승인 절차도 진행 중인 상태다. 구글에 없는 경쟁력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 구글이 투자를 결정한 주요인이라고 본다.

Q. 구글과의 시너지 효과는.

A 인간의 유전자 데이터는 1명당 50기가바이트가 넘는 대용량에 이미지 데이터가 많아 분석에 엄청난 인프라가 필요하다. 프리놈은 베릴리 사옥에 입주한 것이 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구글 투자를 계기로 스타트업 수준에서는 마련할 수 없는 각종 장비들을 구글로부터 제공받으면서 이론적으로만 구상했던 실험의 진행이 가능해졌다. DNA 분석에 구글의 다양한 AI 기술이 적용되고 데이터 처리에 구글 클라우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0호 (2019.03.20~2019.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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