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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메카 샌프란시스코 현지 르포 | ‘플랫폼 제왕’ 구글, 바이오로 승부 코리아 ‘IBT(IT+BT)’ 혁신 전략만이 살길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19.03.18 17:45:15
전 세계 최대 바이오 행사로 꼽히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1년여 전인 2018년 행사의 최대 주인공은 바이오 기업이 아닌 아마존이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글로벌 초대형 금융사인 JP모건체이스, 워런 버핏이 이끄는 투자 기업 버크셔해서웨이와 함께 헬스케어 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증가일로인 의료 비용을 줄이고 의료 서비스질을 향상시키겠다는 게 공식적인 비전이었다.

아마존 등장은 제약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콘퍼런스 당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이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등 대형 제약기업 임원 25명과 함께 비공식 저녁식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아마존에 관한 우려 섞인 질문이 쏟아졌다는 후문이다. 아마존이 헬스케어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제약기업과 주요 약국 체인·의약품 유통업체 주가가 요동쳤다.



글로벌 IT 공룡, 제약·헬스서 금맥 찾기

제약업계는 아마존의 행보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면서도 IT 기업의 바이오 산업 진입을 거스를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IT는 빅데이터 분석과 원격 네트워크가 필요한 바이오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평가받아왔기 때문이다. 방대한 유통망과 데이터를 보유한 아마존이 먹거리 넘쳐나는 성장 산업 바이오에 진출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생명을 다루는 바이오 산업의 밝은 미래는 미국 헬스케어 시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3조5000억달러(약 3961조원)에 달한다. 미국인 1인당 1만739달러(약 1207만원)를 소비한다. 미국 단일 시장만으로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약 528조원)의 7배를 웃돈다.

이미 거대한 시장이지만 IT와 접목된 헬스케어는 이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글로벌 IT 공룡이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바이오 산업에 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아마존은 지난해 6월 온라인 제약 스타트업 필팩(PillPack)을 인수했다. 필팩은 미국 50개 주 유통면허를 보유한 온라인약국(Mail-Order Pharmacy)으로 매일 약을 복용하는 환자를 위한 처방약 가정배달에 강하다. 필팩 인수로 환자에게 처방약을 발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아마존 AI(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는 향후 ‘가상의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존은 이미 알렉사가 감기와 기침을 판별하는 기능에 대해 특허를 냈다. ‘오프라인’ 의사는 알렉사를 통해 증상을 파악하고 간단한 테스트 도구를 집으로 배송한다. ‘가상의사’ 알렉사는 테스트 결과에 따른 처방전을 디지털로 발송하는 모델이다.

구글은 아마존보다 바이오 진출 속도가 더 빠르다. 구글의 투자 자회사 구글벤처스가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분야가 바이오·헬스케어다. 2014년 기준 전체 투자액 20억달러 중 36%인 7억2000만달러를 쏟아부어 모바일(27%)을 압도했다. 구글은 생명공학 자회사 베릴리(Verily)를 통해 현재 17개 이상 헬스케어 연구 사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구글의 핵심 연구사업은 제2형 당뇨병 환자용 연속혈당측정기, 의료용 스마트렌즈, 생체전자 의약품, 류머티즘 관절염, 염증성 장질환, 루푸스 환자 샘플 분석 등 다양하다. 이미 헬스케어 관련 특허를 200건 가까이 확보했다. 인공지능에서 성과를 낸 구글은 ‘생명 연장’을 다음 과제로 삼고 연구 중이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우버도 발을 디뎠다. 애플은 ‘애플워치’가 무기다. 2014년부터 디지털 헬스 플랫폼을 고도화해온 애플은 스마트워치 최초로 심전도 측정센서를 장착한 애플워치4 시리즈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단순 심박 수 체크 기능을 뛰어넘어 심전도 측정으로 심장질환 상태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전문 의료기기 승인을 받았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올해 초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인류에 가장 크게 공헌할 분야는 건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헬스케어 분야에 특허 73건을 확보했고 우버는 병원에서 환자나 방문객들이 차량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인 ‘우버 헬스’를 내놨다.

데이터가 풍부한 중국 IT 업체도 움직인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약사가 원격으로 문진하고 의약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3억명의 진료 기록과 10만건 이상의 수술 데이터를 확보한 텐센트는 지난해 ‘다바이(大白)’라는 AI 의사를 선보여 모바일 채팅 방식의 문진 서비스를 실험 중이다. 바이두는 스마트워치를 활용한 ‘두라이프(Du-life)’라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IT 강국 대한민국은 BT에서도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낼 잠재력이 크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스타트업캠퍼스 등이 공동 발표한 ‘스타트업코리아! 디지털 헬스케어’ 보고서도 참고할 만하다. 해외 투자 상위 스타트업의 국내 진출을 막는 주요 규제로 ▲원격의료 금지(44%) ▲DTC 검사항목 제한(24%) ▲진료 데이터 활용 규제(7%) 등이 꼽혔다.

[특별취재팀 = 명순영·류지민 기자 / 사진 : 류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0호 (2019.03.20~2019.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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