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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40만원 없어 병원못가는 미국인…다이먼 "美, 둘로 쪼개졌다"

김인오 기자
입력 : 
2019-03-19 17:56:24
수정 : 
2019-03-20 06: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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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심화되는 미국

불평등 나타내는 지니계수
0.48 넘어 위험수준 육박
미국인 10명중 4명은
시간당 임금 15달러 미만

"정책으론 불평등 못없애
기업이 양극화해소 나서야"
사진설명
"미국이 둘로 쪼개졌다." 미국계 최대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사진)가 미국 내 '심각한 양극화'를 염려하는 발언을 내놔 주목된다. 그는 18일(현지시간) 뉴욕 본사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3억5000만달러(약 3957억원) 규모 고용 촉진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작심한 듯 미국 경제 양극화 현실을 꼬집었다.

다이먼 CEO는 "지금은 미국이 둘로 쪼개진 상태"라면서 "기업이 잘된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뒤처져 있는 것도 모르는 귀머거리 CEO이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CNN과 인터뷰하면서 그는 "잘 운영되는 기업이 있는 지역을 보면 사람들이 대부분 잘살고 있지만 그 뒤에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곧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라는 비판이다. 미국 경제 문제는 인종주의 같은 차별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인 '반(反)빈곤'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다이먼 CEO 생각이다.

그는 "미국인 중 40%가 시간당 15달러(미국 연방 평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15%는 최저임금을 번다. 매년 7만명이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죽는다"면서 "미국인 40%는 병원비와 자동차 수리비같이 기본 삶에 필요한 400달러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당신이 미국 어느 마을에 가서 살든지, 당신이 백인이든 히스패닉(라틴계)이든 혹은 흑인이든지 간에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미국 연구기관 유나이티드웨이가 2018년 발표한 '미국인의 40%가 기본생활비에 허덕인다'는 보고서는 실업률이 사상 최저를 향하고 증시 수익률은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2016년께 소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국인 중 40%가 임대료, 교통비, 아동 보육비나 휴대폰비 같은 기본 소비를 하는 데만도 휘청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3470만가구가 절대 빈곤은 아니지만 이런 빈곤에 시달리면서 잊힌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조사 결과다. 특히 기본 생활 빈곤가구 비중은 캘리포니아·하와이·뉴멕시코(49%)가 가장 높다.

미국 인구조사국과 노동통계국 최근 데이터를 보면 월스트리트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미국 지니계수는 꾸준히 늘어 0.5를 향해가고 있다. 2017년 지니계수는 0.482다. 지니계수는 대표적인 분배지표로 0~1 사이 값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통상 지니계수가 0.5를 넘으면 폭동 등 극단적인 사회 갈등에 이를 만큼 불평등이 '매우 높은 상태'라고 본다. 5분위 배율 역시 같은 기간 오름세를 보이며 2017년 16.61를 기록했다.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16.61배를 번다는 의미다.

사회에 양극화 균열이 심해질 때는 '패자 부활 기회'도 중요하다. 다이먼 CEO는 "(복역이나 벌금형 등) 죄에 대해 대가를 치렀다면 제2의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는데 현재 미국에서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금융 서비스 규제는 역사상 매우 엄격하다"면서 "다들 가족이 있고 자녀가 있는데 대출도 못 받고 집도 없이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JP모건은 이런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맞춤형 노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이먼 CEO는 일자리를 늘리기만 해서 나라 경제 상태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많은 미국 어린이가 원하는 직업이 있어도 정작 그 일자리를 갖기 위해 필요한 교육은 못 받고 있다"면서 "내 말은 그냥 일자리가 아니라 '진짜 일자리'를 생각하고 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집권 이후 일자리가 늘고 실업이 줄었다고 성과를 자랑하지만 다수 시민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돈을 주는 직장에서 근근이 일하면서 제대로 된 생활비도 벌지 못한 채 싸구려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돼 죽어가는 현실은 인간적일 수 없다는 얘기다.

다이먼 CEO는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JP모건은 2005년 모집 부문별로 대졸 학력란을 지우기 시작했고, 2018년 기준으로 미국 내 JP모건이 모집하는 일자리 75%에서 대졸 학력란을 지웠다"고 말했다.

비록 자신이 터프츠대(경제학 전공)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지만 그는 "하버드나 프린스턴 같은 명문 대학을 돕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이먼 CEO는 "지나고 보니까 대학 학위가 별로 가치가 없었다는 것을 종종 깨닫곤 한다"면서 "지역 대학이나 직업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소득층을 지원해 양극화를 해소하는 노력은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박애주의' 취지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다이먼 CEO는 미국 사회 양극화를 헤쳐나가는 것은 정부가 아닌 기업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돈을 풀어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는 "워싱턴에 돈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우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서 "기업이 뛰어들어야 한다. 기업이 양극화 해소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는 프로그램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역설했다.

JP모건은 이날 앞으로 5년 동안 총 3억5000만달러 규모 일자리 만들기 프로그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우선 2억달러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일자리 수요가 많은 디지털·기술 분야 직업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1억2500만달러는 교육·고용 협력을 위해 쓴다. 나머지 2500만달러는 저소득층에 특화한 일자리 시장 분석 작업에 들인다는 계획이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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