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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aru in ‘러브 레터 Love letter’ 하얀 눈, 반짝이는 운하 그리고 ‘러브 레터’

입력 : 
2019-03-13 18: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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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시. 오타루란 ‘모래가 많은 바닷가’를 뜻하는 아이누인들의 ‘오타루나이’에서 따온 말이다. 19세기 말부터 삿포로의 외항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이 도시는 특히 일본의 메이지 시대 때 건설되고 건축되기 시작한 건물과 도로, 운하 등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도시는 전체가 작은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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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의 ‘러브 레터’

삶과 죽음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을 배운다

폭설은커녕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고 미세 먼지와 함께 겨울이 지나간다. 겨울이면 꼭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와이 지 감독의 ‘러브 레터’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11월20일 개봉했고 이후 2013년, 2016년, 2017년에 다시 개봉하면서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오겡키데스카’라는 유행어를 남긴 영화는 첫사랑의 아련한 감성, 죽음과 삶 그리고 이별,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등을 서정적인 감성으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개봉한 일본 영화 중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140만 명이라는 최고의 흥행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감성 터지는 이야기와 함께 레메디오스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A Winter Story’, ‘Forgive Me’, ‘Small Happiness’ 등의 OST는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 영화는 첫사랑의 풋풋하고 아련한 감성을 다루고 있지만 절제미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영상과 정교한 이야기 구조로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인공 히로코와 여자 이츠키가 우연히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히로코는 자신의 연인인 남자 이츠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2년 만에 남자 이츠키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여자 이츠키는 또한 자신이 남자 이츠키의 첫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영원한 숙제를 안고 있다. 히로코는 남자 이츠키의 죽음을 떨쳐 내지 못하고, 여자 이츠키 또한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동명이인 중학교 동창 남자 이츠키의 죽음을 통해 성숙해진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또 하나의 단상은 ‘겨울’이다. ‘러브 레터’에서 필수적인 시공간, 특히 계절의 배경은 ‘겨울’ 외에 대안이 없을 정도다. 파릇한 봄, 녹음이 우거진 여름, 외로움이 피어오르는 가을도 나름 정취가 있지만 하얀 눈이 뒤덮인 겨울은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다.

영화의 배경지 오타루는 그런 의미에서 적격이다. 일본을 이루는 4개의 섬 중에서 최북단에 자리한 홋카이도 대표 도시 삿포로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오타루는 항구다. 삿포로의 발전을 위한 외항으로 시작한 오타루는 그 시작부터 삿포로의 ‘종속 도시’ 성격이 강했지만 이 영화 개봉 이후 홋카이도를 찾는 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독립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홋카이도의 3대 야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오타루 운하, 하얀 눈의 평원, 오르골 박물관 등 오타루는 볼 것이, 느낄 것이 많은 도시가 되었다.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러브 레터’ 촬영지였다는 것만으로도 꼭 들러야 할 ‘필수 코스’가 되었다.

오타루는 19세기 말부터 도시로서의 기능을 갖추기 시작했다. 1872년 부두를 만들어 일종의 홋카이도 상륙의 교두보가 되었다. 이후 1880년 삿포로와 철도가 개통되면서 급격하게 그 세를 불렸다. 당시는 일본의 메이지 시대. 그때 건설되고 건축되기 시작한 건물과 도로, 운하 등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도시 전체가 작은 박물관인 셈이다. 특히 오타루 운하 주변에서 펼쳐지는 ‘오타루 운하 캔들 축제’는 약 15만개의 촛불로 운하 양옆을 장식하고 운하에 500여 개의 다양한 촛불이 흘러가면 그 풍광은 황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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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같은 남과 여

얼굴이 똑같은 두 명의 여인

하얀 설원,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누워 있다. 그녀는 억지로 숨을 참고 있다. 잠시 후, 히로코는 ‘휴’ 하고 숨을 내쉬고 일어난다. 그리고 누구의 자국도 없는 하얀 눈밭을 걸어간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공원묘지. 묘비에는 ‘후지이 이츠키(카이와바라 타카시)’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후지이 이츠키는 히로코의 연인이었다. 이츠키는 등산을 갔다가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오늘이 후지이 이츠키의 2주년 추도식이다. 히로코는 아직도 마음에서 그를 떠나 보내질 못한다. 추도식이 끝난 후 히로코는 이츠키의 어머니와 집으로 와 차를 마신다. 한 사람은 자식을 떠나 보낸 어머니, 또 한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을 천국으로 보냈다. 서로가 애잔하다. 히로코는 이츠키의 중학교 앨범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츠키가 중학교 시절을 보낸 홋카이도 오타루 시의 주소를 발견한다. ‘오타루 시 제니바코 2-24번지.’ 어머니는 “지금은 집이 없어지고 그곳에 길이 생겼어”라고 말한다. 히로코는 이 주소를 적는다. 그리고 과거 이츠키가 살던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후지이 이츠키 앞’, 천국으로 편지를 붙인 것이다.

오타루 시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 그녀는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우편배달부가 “편지요!”라고 외치자 이츠키는 마스크를 쓴 채 나간다. 우편배달부가 다가오자 이츠키는 손짓을 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한다. 행여나 감기가 옮을까 염려한 것이다. 그녀는 편지를 뜯어 본다. 보낸 사람은 ‘와타나베 히로코’. 모르는 이름이다. ‘후지이 이츠키 님, 오겡키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잘 지내세요? 전 잘 지내요.)’ 후지이 이츠키는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후지이 이츠키는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이츠키가 기침이라도 하면 노심초사다. 이츠키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감기가 악화되어 폐렴이 걸려 그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츠키는 마스크를 쓴 채 히로코에게 답장을 보낸다.

히로코는 선배 아키바(토요카와 에츠시)를 찾아간다. 그녀는 활짝 웃는다. 아키바는 히로코의 연인인 이츠키와도 잘 아는 사이. 지금, 아키바는 히로코를 사랑한다. 히로코 역시 아키바의 감정을 잘 알고 있지만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한다. 아키바는 히로코가 하루빨리 이츠키를 잊기를 바란다. ‘히로코는 언제까지 죽은 이츠키에게 매달려 있을까.’ 그는 걱정이다. 히로코가 아키바와 대각선 자리에 앉는다. 아키바가 말한다.

“너는 항상 거기에 앉는구나. 이츠키와 우리 셋이 처음 만났을 때도 너는 거기 앉았지.”

히로코는 웃으며 아키바에게 편지를 내보인다. “이것 봐요. 답장이 왔어요. 후지이 이츠키에게서.”

아키바는 장난 편지라고 말한다. 히로코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히로코는 이츠키가 하늘에서 보낸 편지라고 믿고 싶다. 아키바는 히로코에게 말한다. “오타루에 가 보자. 가서 후지이 이츠키가 누구인지 만나 보자.”

히로코와 아키바는 오타루 시에 왔다. 편지의 주소지를 찾는다. 역시, 집은 없고 국도가 놓여 있다. ‘그렇지, 이미 죽은 이츠키가 있을 리가 없지’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편지가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다. 그러다 우연히 ‘후지이 이츠키’라는 문패를 발견한다. 히로코와 아키바는 ‘아, 동명이인이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집 앞에서 후지이 이츠키를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던 히로코는 주저앉아 편지를 쓴다. ‘약간의 오해가 있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와서 궁금해서 찾아왔어요’라 쓰고 우편함에 넣는다. 돌아서 가는 길, 저쪽에서 병원에서 퇴원하던 후지이 이츠키가 온다. 택시를 탄 히로코와 걸어오는 이츠키는 스쳐 지나간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얼굴은 쌍둥이처럼 똑같다. 히로코와 이츠키는 마주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지만 말을 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은 각자 쓴 편지를 우편함에 넣는다. 그리고 비밀이 풀린 것이다. 어떻게 히로코가 천국에 있는 이츠키에게 보낸 편지를 이츠키가 보고 답장을 했는지를. 편지에는 ‘중학교 때 같은 반에 나와 이름이 같은, 즉 후지이 이츠키라는 남자아이가 있었어요’라고 쓰여 있다. 아키바와 돌아온 히로코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평소 무뚝뚝하고 내성적이었던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자신에게 “한눈에 반했어요. 나랑 사귀어요”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중학교 때 여자 후지이 이츠키와 얼굴이 똑같아서’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사랑도 흔들린다. 히로코는 죽은 후지이 이츠키의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리고 말한다. “닮아서라면 용서할 수 없어요. 그게 날 선택한 이유라면 전 뭐가 되는 거죠?”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순간, 이츠키의 어머니도 슬피 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린다. 히로코는 여자 이츠키에게 편지를 쓴다. “제가 모르는 그의 세계가 더 많겠죠. 당신의 추억을 나눠 주세요.” 여자 이츠키는 히로코의 편지를 보고, 그리고 병원에서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중학교 때를 생각해 낸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10년 전의 기억들. 후지이 이츠키는 그 기억을 히로코에게 편지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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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첫사랑과의 재회

그것은 도서 카드 뒷면

중학교, 새로 배정된 반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후지이 이츠키?” 두 명이 동시에 대답한다. 모두 두 사람을 쳐다본다. “어, 같은 이름인데 한 명은 여자고, 또 한 명은 남자네.” 친구들은 그때부터 두 사람을 놀린다. 서로 좋아한다고 키득거리고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두 사람은 도서부에 뽑힌다. 도서실.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서 책을 들고 있는 남자 이츠키. 그 모습을 슬쩍 쳐다보는 여자 이츠키. 남자 이츠키는 묘한 버릇이 있다. 아무도 빌려보지 않는 책을 골라 도서 카드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그렇게 몇십 권의 도서 카드 첫 번째 칸에는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이름이 써 있다.

여자 이츠키는 채점된 영어 시험지를 받았다. 점수는 27점. 이츠키는 그것이 남자 이츠키 것이라는 것을 안다. 시험지가 바뀐 것이다. 그녀는 자전거 집합대에서 남자 이츠키를 기다린다. 어둠이 내린다. 기다리는 여자 이츠키. 늦은 밤, 저쪽에서 남자 이츠키가 온다. 이츠키는 “너하고 시험지가 바뀌었어”라고 말한다. 남자 이츠키는 말없이 시험지를 받아 든다. 어둠이 짙게 깔렸다. 시험지가 보이지 않는다. 남자 이츠키는 여자 이츠키에게 자전거 페달을 손으로 돌려서 전등을 밝히라고 한다. 여자 이츠키는 팔이 아프도록 자전거 페달을 돌린다. 여자 이츠키의 친구가 남자 이츠키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고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 한다. 여자 이츠키는 말한다. “여자 친구 있어?” 말없이 쳐다보던 남자 이츠키는 한참 후 “없어”라고 말한다. 여자 이츠키는 살짝 미소를 보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 말을 하지 않을 뿐, 눈은 사랑을 말한다. 이렇게 이츠키는 남자 이츠키의 기억을 히로코에게 전달한다. 히로코는 여자 이츠키에게 “죄송하지만 그가 달렸던 운동장을 보고 싶어요”라고 부탁한다. 학교를 찾은 여자 이츠키. 그녀는 선생님을 만나 도서실을 찾는다. 선생님이 이츠키를 소개한다. “여기는 선배, 후지이 이츠키 씨입니다.” 도서부 학생들이 모두 놀랍다는 표정이다. 후배들의 반응이 궁금한 이츠키. 학생들은 말한다. “도서부에서는 도서 카드에서 ‘후지이 이츠키’를 찾는 것이 마치 게임처럼 되었어요. 이렇게 만나서 너무 놀라워요.” 여자 이츠키는 손을 저으며 ‘나와 이름이 같은 남자 동창생이 거의 장난으로 남긴 것’이라고 말한다. 운동장으로 나온 여자 이츠키는 선생님에게 “선생님도 남자 이츠키를 아시지요?”라고 묻는다. 선생님은 “그럼 잘 알지. 불행하게도 2년 전에 산에서 조난 당해서 죽었잖아”라고 말한다. 충격을 받은 여자 이츠키. 그 순간, 10년 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히로코가 왜 후지이 이츠키에게 편지를 썼는지 알게 된다.

감기가 심해진 여자 이츠키. 40도 넘는 고열에 시달리다 쓰러진다.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급하게 병원으로 이츠키를 데려가려 하지만 폭설에 구급차는 1시간 뒤에나 도착한단다. 손녀를 업고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할아버지. 어머니는 이를 말린다.

“똑같은 실수를 왜 하려고 해요. 아이 아빠도 그래서 죽었어요. 기다리면 되는데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죽은 거예요.”

“그때, 병원까지 몇 분 걸린 줄 아니. 40분이 안 걸렸어. 이츠키는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

“40분 안에 도착할 수 없어요. 어떻게 이 눈길을 걸어서 그 시간에 갈 수 있어요?”

“걷지 않을 거야. 뛰어갈 거야.”

할아버지는 이츠키를 업고 눈길을 뛴다. 간신히 병원에 도착한 이츠키는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 이 일을 계기로 집안을 감돌던 암울한 기운은 가시고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에게 응어리진 마음을 푼다.

새 학기가 되었지만 여자 이츠이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 장례식이다. 갑자기 남자 이츠키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불쑥 한 권의 책을 내민다. “사정이 생겨서 책을 반납하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 책을 대신 반납해 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남자 이츠키는 슬쩍 집 안을 쳐다보다 여자 이츠키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다. 어색한 표정의 이츠키. 그를 쳐다보며 여자 이츠키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웃는다. 학교에 간 여자 이츠키는 남자 이츠키가 전학을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책을 대신 반납해 달라고 했네’라고 생각하지만 아쉽고 화가 난다. 아이들이 장난 삼아 이츠키의 빈 책상 위에 올려놓은 꽃병을 여자 이츠키는 들어서 깨 버린다. 여자 이츠키는 그때를 생각한다. ‘그 아이는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골라서 자신의 이름을 도서 카드에 올렸어. 특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 한 명도 읽지 않았을 거야. 아이들이 많이 보는 책의 도서 카드는 빈 칸이 없으면 새 카드로 교체하는데…. 아마도 그 책은 10년 전 도서 카드 그대로일 거야.’

히로코는 선배 아키바와 산을 찾는다. 이 산이 바로 후지이 이츠키가 묻힌 산이다. 아키바는 히로코에게 말한다. “이제 후지이 이츠키와 이별해. 보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 산에서 그와 이별하라고.” 히로코는 눈을 감는다. 잠시 후 히로코는 걷는다.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이츠키의 죽음은 그녀의 마음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히로코는 이제는 이츠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이츠키를 천국으로 데려간 산을. 그리고 소리친다.

“오겡키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

몇 번이고 외친다. 이제는 후지이 이츠키의 죽음을 정면에서 바라본 진짜 이별식이다. “잘 지내셨나요? 나는 잘 지내요. 나만 이렇게 잘 지내서 미안해요. 그래도 앞으로 잘 살아갈게요.” 히로코는 여자 이츠키에게 편지를 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도서 카드에 쓴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은 당신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내가 받았던 편지를 돌려보낼게요. 고마워요.”

시간은 흐른다. 이츠키에게 도서부 후배들이 찾아온다. 후배들은 “아주 멋진 것을 발견했어요. 이건 선배님에게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책을 건넨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여자 이츠키는 책의 도서 카드를 꺼낸다. 도서 카드 맨 위 칸에 역시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만 쓰여 있다. 후배들을 바라보는 이츠키. 후배들은 일제히 “뒷장을 보세요”라고 말한다. 도서 카드를 뒤집어 보는 이츠키. 순간 이츠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거기에는 소녀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한눈에도 남자 이츠키가 자신, 즉 여자 이츠키를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간, 이츠키는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쏟아진다. ‘그래, 남자 이츠키는 나를 좋아했구나. 그도 나하고 똑같이 나를 사랑했구나. 그것이 첫사랑이었구나. 10년 동안 아무도 도서 카드에 이름을 쓸 수 없었던 이 책처럼 남자 이츠키는 자신의 사랑을 남겨 두고 싶어 했구나. 그날 도서부 창가에 햇살이 쏟아지던 날, 너는 거기 서서 나를 그리고 있었구나. 그때는 첫사랑인지도 몰랐는데…. 그 감정이 10년이 지나서 이렇게 나에게 전해지네. 후지이 이츠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여자 이츠키는 조용히 말한다. “히로코 씨,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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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텐구 산의 스키장(위피키디아), 오타루 역 앞의 풍경(위키피디아©Hiroyuki S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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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의 오르골당 (위키피디아©Dkfuaah), 오타루(©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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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의 오타루 항구 모습(위키피디아), 텐구 산에서 내려다본 오타루 시 전경(위키피디아)
▶일본 문화 개방의 최대 수혜자

‘러브 레터’와 이와이 지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는 두 개다. 첫 번째는 일본의 문화 개방이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문화 개방 조치가 없었다면 ‘러브 레터’는 한참 후에나 극장에서 만났을 것이다. 일본 식민 지배에 대한 거부감 또 일본 문화의 무분별한 수입을 염려해 한국은 해방 이후 일본 문화에 대한 문을 열지 않았다. 물론 일본의 문화, 즉 영화, 음악, 만화, 잡지, 책, 방송 등을 우리가 접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일본 문화 개방 전 방송국의 봄가을 프로그램 개편 시기가 다가오면 부산의 호텔들에는 PD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부산에서는 일본 방송 수신이 가능해 일본 방송을 보면서 이른바 ‘베끼기 기획’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상파 방송국은 오래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상영했다. 지명, 이름 등을 재편집해 어린이 시청 시간은 온통 일본 애니메이션뿐이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젊은 세대들이 주로 찾았던 종로, 강남, 신촌, 홍대 등지에서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는 물론이고 X-재팬의 노래들이 흘러나왔고, 명동 중국 대사관 앞에서는 ‘논노’로 대표되는 일본의 세련된 잡지들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 문화는 우리 옆에 있었다. 이것을 김대중 정부가 한일 관계, 국제적인 흐름, 우리 문화의 경쟁력 강화 등을 고려해 1998년과 1999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개방을 시행한 것이다. 특히 영화의 경우 1998년 10월20일 1차 개방을 계기로 한일 공동제작, 한국 영화에 일본 배우 출연, 4대 국제 영화제 수상작 등을 수입했다.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 등 작품성에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영화인들은 ‘국내 시장을 개방하면 일본 영화가 영화 시장의 10%를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하나비’와 ‘카게무샤’는 개봉 3주를 넘기지 못했다. 이렇게 개방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희석시키며 1999년 9월10일 2차 개방의 문호를 넓혔다. 이 2차 개방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러브 레터’다. ‘러브 레터’는 사실 ‘볼 만한 사람은 이미 다 본 영화’였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라 정작 극장을 누가 찾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무려 140만 명이 이 영화를 감상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개봉된 일본 영화 흥행 1위의 기록이다. 참고로 전체 흥행 1위는 371만 명의 ‘너의 이름은.’, 2위는 301만 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3위는 240만 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러브 레터’ 뒤를 이어 ‘일본 침몰’이 77만, ‘데스노트’가 64만 명이다. 영화 ‘러브 레터’는 일본 문화 개방의 최대 수혜주이며 이와이 지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으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선호하는 감독이 되었다. 20세기 말엽, 한국 영화 팬들이 가장 사랑한 해외 영화 감독은 바로 왕가위와 이와이 지 두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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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숨겨진 비극 소수 민족 아이누

이 영화의 배경인 오타루, 더 넓게 보면 홋카이도에서 우리가 주목할 포인트는 ‘아이누’다. 지난 2월15일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를 원주민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일본이 자랑하는 ‘만세일계의 천황 가문’과 ‘야마토인의 단일 민족’이라는 원칙을 깨는 중대한 사건이다. 아이누는 홋카이도를 중점으로 일본 북부 도호쿠 지역과 러시아 지배지인 쿠릴 4개 섬 등에 거주해 온 소수 민족이다. 일본은 아이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차별 대우해 왔다. 일본 정부가 갑자기 아이누를 인정하게 된 것은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 때문이다. 일본은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쿠릴 4도에 대한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에 거주하는 아이누를 ‘일본 원주민’이라고 인정하면서 쿠릴 4도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 일본의 의도다. 또한 지난해 12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쿠릴 4도에 있는 아이누를 ‘러시아의 소수 민족’이라고 인정하자 급하게 아이누를 일본 원주민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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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는 2만 명 남짓의 아이누가 거주하고 있다. 물론 오키나와 원주민인 류큐인 등과 함께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이를 감안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아이누가 홋카이도 등지에 살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일본의 본섬인 혼슈 지역 사람들은 이들을 ‘이민족’이라는 비하의 뜻으로 ‘에조’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에조치’라고 불렀다. 즉 홋카이도도 19세기까지는 에조치라고 불렀다. 이를 메이지 시대 때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미 일본의 역사가 홋카이도, 일본 도호쿠, 사할린 지역을 ‘에조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아이누는 독특한 외모로 인해 동양계가 아닌 서양계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들은 눈이 깊게 들어가 있고 코가 오뚝하며 얼굴 등 몸에 털이 많았다. 일본은 물론 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외모가 아니었다. 해서 동양계가 아닌 백인의 선조격이라는 설이 있었다. 일본은 이 같은 아이누의 외모적 특징만으로도 이들을 차별했다. 하지만 DNA 분석을 통해 아이누는 ‘고대 몽골로이드계’라는 것이 유력하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단일 민족이라고 말하며 ‘배달민족’, ‘한민족’이라고 쓴다. 그것처럼 일본은 자신들을 ‘야마토大和 민족’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 야마토에는 아이누, 류큐인 그리고 재일 동포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본 고대 역사인 조몬 시대를 거쳐 일본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야요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천황의 선조가 ‘천계’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하며 수천 년 동안 혈통의 순수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3세기경 일본 최초의 통일 권력이 된 야마토 정권을 일본 민족의 지칭으로 쓰고 있다. 야마토 정권은 3세기부터 7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물론 그 전 야요이 시대부터 일본은 통일 전쟁을 시작했고 수많은 부족, 종족이 있었지만 사라지거나 동화되면서 야마토라는 큰 이름의 범주 안으로 흡수된 것이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포토파크, Daum 영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70호 (19.03.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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