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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천지개벽] (7) 서울 녹번동 | 도심까지 15분 숲세권 '굿'…신분당선 기대감

  • 정다운 기자
  • 입력 : 2019.03.11 09:22:34
서울에는 지금도 운영되는 광산이 있다. 서대문구와 은평구 경계 지점인 ‘산골고개’에 위치한 산골판매소다. 홍제역에서 녹번역으로 가는 버스가 통일로를 지날 때면 ‘산골고개’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많은 사람이 산골짜기의 산골로 알아듣는다. 하지만 여기서 산골은 광물질 산골(자연동·自然銅)이다. 뼈를 다쳤을 때 치료 효능이 있다고 해서 생골(生骨)이라 불리기도 하는 산골의 또 다른 이름은 녹반(綠礬)이다. 조선시대에는 산골고개 주변에 녹반이 많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고개를 녹반현(綠礬峴) 또는 녹번현(碌磻峴), 녹반이고개, 산골고개라고 불렀다. 지금의 녹번동은 여기서 유래했다.

녹번동은 꽤 최근까지도 ‘노후 주택 밀집지’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지역이다. 서울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강남과 물리적 거리가 멀었던 탓에 오랜 시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애초에 서울이 아니었다. 구파발 등 현재의 은평구 지역은 1949년까지 고양군 은평면이었다. 1949년 8월 고양군 은평면과 연희면이 서울 서대문구에 편입됐다. 1979년 10월 서대문구가 분구하면서 현재의 은평구가 됐다.

하지만 최근 버스를 타고 녹번동을 지나쳐본 사람은 ‘천지개벽’이라며 놀라워한다. 저층 단독·다가구주택들이 복잡하게 들어서 있던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일대가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다. 정비사업으로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수억원의 웃돈이 붙으면서 ‘강북권 변두리’였던 이미지를 벗어던진 지도 오래다.

▶녹번동 집값 1년간 36.5% 급등

남으로 부산 동래, 북으로 의주까지 양쪽으로 1000리라고 해 ‘양천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녹번동. 지금도 종로구, 서대문구와 인접해 있고 지하철 3호선이 강남까지 뻗어 있어 교통 입지가 우수한 편인데도 집값은 서울 하위권에 머물던 동네였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북한산푸르지오’(총 1230가구)가 입주한 2015년 전까지 녹번동 평균 아파트값은 줄곧 3.3㎡당 1000만원 선이었다. 2009년 고양시 평균 아파트값인 3.3㎡당 1045만원보다 못한 시세였다. 그나마 녹번동에 있는 아파트는 ‘JR아파트’(2002년 입주, 총 341가구) ‘녹번동대림’(1994년 입주, 총 370가구) 등 소규모 단지가 전부였다.

녹번역 주변 재개발 사업이 추진된 것은 2004년부터다. 2004년 물꼬를 튼 녹번역 주변 재개발 사업은 수립 당시 1개 구역으로 진행됐지만 2007년 3개 구역으로 나뉘었다. 3개 구역 가운데 1-3지구는 북한산푸르지오로 탈바꿈했다. 1000가구 넘는 대단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노후 주택이 많은 탓에 녹번동 분위기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개 구역 가운데 1-1구역과 1-2구역은 각각 2013년, 2014년에야 관리처분인가를 받았고 ‘힐스테이트녹번’(총 952가구) ‘래미안베라힐즈’(총 1305가구)라는 이름으로 2015~2016년 일반에 분양됐다.

일반분양을 마치고 3년여 뒤 이들 아파트가 입주를 마치자 녹번동 일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녹번역 출구를 나서자마자 지난해 10월 입주한 힐스테이트녹번의 깔끔한 입구가 펼쳐지고 완만한 언덕길로 좀 더 올라선 곳에 올 1월 입주한 래미안베라힐즈가 나란히 서 있다. 집들이를 마친 지 반년, 두 달이 채 안 된 단지라 각각 말끔하게 정돈돼 있다.

은평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전 분양한 단지였던 만큼 매물에는 적지 않은 웃돈이 붙어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입주 직전인 올 1월 래미안베라힐즈에서 6건의 입주권 매매거래가 이뤄졌다.

전용 84㎡ 아파트 3채가 각각 9억500만원(13층), 9억2733만원(12층), 8억7000만원(7층)에 실거래됐고 전용 59㎡ 아파트 3채가 7억1000만원(15층), 7억원(5층), 7억4000만원(6층)에 주인을 찾았다. 전용 84㎡ 일반분양가가 5억2000만~5억5000만원 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분양가 대비 4억원의 웃돈이 붙은 셈이다. 힐스테이트녹번은 전용 59㎡ 입주권이 지난해 10월 8억2000만원(15층), 11월 7억4000만원(5층)에 매매 계약서를 쓴 이후 거래가 뚝 끊겼다. 최근 전용 59㎡ 매매 호가는 8억3000만원 선이다. 올 2월 말 기준 녹번동 평균 아파트값은 3.3㎡당 2139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3㎡당 1567만원) 대비 1년 새 36.5% 올랐다.

녹번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래미안베라힐즈 전용 84㎡는 9억5000만원, 전용 59㎡는 7억5000만~8억원에 매물로 나온다”며 “최근 주택 시장이 주춤한 탓에 거래는 활발하지 않지만 싼 매물이 나오면 연락 달라는 문의는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제 지하철 3호선 녹번역 역세권에는 총 3487가구 규모 브랜드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 바로 옆 응암동 재개발 사업까지 완료되면 약 7000가구 규모 미니 신도시급 아파트촌이 형성된다. 은평구 신흥 주거지는 이미 불광동에서 녹번역 일대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비단 새 아파트라는 이유만으로 은평구 신흥 주거지 타이틀을 거머쥔 것은 아니다. 서대문구 홍은동과 맞닿아 있는 녹번동은 은평구에서도 서울 도심과 가장 가까운 입지다. 지하철 3호선(녹번역)은 서울 종로·광화문을 거쳐 한강 이남의 압구정·신사·고속버스터미널역 등으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다. 녹번역과 멀지 않은 불광역에서는 지하철 3·6호선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이사는 “강남과 도심, 홍대, 이태원 인프라를 가까이서 누리고 싶은 30~40대 젊은 직장인에게 인기 주거지로 각광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굵직한 개발 호재도 이어졌다.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사업이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자문위원회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됐다.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사업은 강남에서 용산까지 연장하기로 한 노선을 서울역을 거쳐 은평뉴타운, 고양 삼송까지 추가로 연장하는 프로젝트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도 최근 착공했다. 이외에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주거환경이 쾌적하다는 점도 녹번동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다.

신분당선 연장선이나 GTX A노선이 녹번역을 바로 지나지는 않지만 인근 독바위역이나 연신내역과 연계해 삼성동, 분당, 판교 등지로 한결 빠르게 이동 가능하다.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라는 점에서 사업 성사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일대 교통망이 한결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여전하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학부모가 선호하는 학군이 아닌 데다 종로·광화문 등 서울 도심으로 연결되는 통일로가 상습 정체 구간이다. 지하철 3호선이 알짜 노선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강남권이나 마포구와 비교했을 때 인구에 비해 지하철 노선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가뜩이나 최근 잇따른 부동산 규제 발표 이후 주택 매매거래 시장이 전반적으로 주춤한 상태다.

“지역 변화에 대한 기대감, 강남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값, 서울 종로·광화문·시청·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와 가까운 입지 등 장점이 많아 주거 수요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집값 급등세로 피로감이 쌓인 점, 도로 교통 정체 해소 등 과제가 남아 있다.” 김광석 이사의 총평이다.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8호 (2019.03.06~2019.03.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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