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고장난 기계가 끊임없이 울리는 경종

정유진 기자

기계비평들전치형·김성은·임태훈 외 4명 지음워크룸프레스 | 240쪽 | 1만8000원

[책과 삶]고장난 기계가 끊임없이 울리는 경종

<기계비평들>이란 낯선 제목의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조금 긴 사전 설명이 필요하다. 2006년 <기계비평>이란 책을 내며 비평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영준은 당시 서문에서 기계비평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주 쉽게 말하면 KTX가 서울역에 도착한 다음의 상황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서울역에 도착하면 자신이 타고 온 열차의 구조와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매일 그렇게 다녀도 탈이 없는 건지, 탈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어떤 일들을 하길래 그런 건지 전혀 관심이 없다. 재빨리 서울역을 빠져나와 노숙자들을 지나쳐 자기 갈 곳으로 가버릴 뿐이다. 기계비평의 관심은 다르다. 서울역에 도착한 KTX는 고양 행신 차량기지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대접을 받는지, 어떤 식으로 검수가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어 한다.”

물론 일반인은 KTX 차량기지에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들어가더라도 복잡한 기계의 작동원리와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계비평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건 “기계와 인간, 기계와 자연이 맞닿는 접면”이다. 기계비평은 고장난 스마트폰을 고치는 일에는 무력한 공부일 수 있으나, 통신사 약정 만료 기간이 닥칠 때마다 이상이 생기는 기계의 “계획적 진부화”에 무감각한 시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안내서이다.

2018년 5월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좌현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는 세월호가 40도가량 들어올려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한 기계의 실패가 사회 전체의 연쇄적 신뢰를 모두 붕괴시킨 사례다. 연합뉴스

2018년 5월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좌현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는 세월호가 40도가량 들어올려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한 기계의 실패가 사회 전체의 연쇄적 신뢰를 모두 붕괴시킨 사례다. 연합뉴스

이번에 출간된 <기계비평들>은 이영준의 기계비평에 공명한 연구자 7명이 2006년 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를 겪어온 기계문화의 이력을 이영준의 스타일을 빌려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을 기획한 임태훈은 “처음 <기계비평>을 읽었을 때의 상쾌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재기발랄한 작업이 한국 비평계에서 시도된다는 것이 기뻤다”면서도 “우리는 (그때와 달리) 이 시대의 기계문화를 이야기하면서 함부로 웃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분기점은 2014년의 세월호 참사일 것이다. 그의 지적처럼 “단언컨대 지금은 인간도, 기계도 처절히 실패하고 있는 시대”다.

우리는 비행기에 탈 때마다, 엘리베이터로 고층빌딩에 오를 때마다, 그 작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행기와 엘리베이터가 우리를 품은 채 땅으로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한다. 그 배경에는 기계를 만들고 다루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다. 기계의 검사, 정비가 적절하게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믿고, 그 제도를 운영하는 조직의 존재를 믿는다. 그래서 비행기와 승강기가 추락하고 열차가 탈선할 때마다 우리는 믿었던 기계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낀다.

세월호 침몰을 본 한국 사회
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목격
사고가 아닌 재난으로 규정
구의역 노동자 사망 사고도
공학적 해법 외면했기 때문

“기계와 인간·기계와 사회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세상
기계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회가 제대로 작동 안 한 탓”

“어떤 기계의 실패는 신뢰의 연쇄 중간 정도까지만 무너뜨리고, 다른 어떤 기계의 실패는 신뢰의 연쇄의 가장 끝까지 모두 붕괴시킨다.” 예를 들어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이 사고들이 미국이라는 시스템 전체의 실패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9·11 테러는 고층빌딩 두 채의 붕괴가 한 사회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었다.

세월호도 실패한 기계였다. 이 책에서 ‘고립된 배: 세월호라는 기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란 챕터를 쓴 전치형은 “기계의 실패를 설명하려 할 때 우리는 기계와 그 기계를 둘러싼 사람, 조직, 제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게 된다”며 “이는 곧 기계관의 표현이자 세계관의 표현이고, 때로는 정치적인 입장이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세월호 침몰은 교통사고’라는 주장은 세월호라는 기계의 실패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사고’에서 기계의 실패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반면, ‘재난’을 일으킨 한 기계의 실패는 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시사한다. 즉 “‘교통사고론’의 주창자들은 세월호의 실패를 한 교통기계의 실패로 규정했고, 한 기계의 실패를 기계 너머로 확대해석하지 말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고장난 기계 뒤에는 그 기계가 고장날 수밖에 없는 더 큰 이유가 있다. 한국인들이 세월호 침몰을 ‘사고’가 아닌 ‘재난’으로 받아들인 것은 배 한 척의 침몰에서 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배의 운항을 규제하고 감독하는 시스템, 배에서 사람을 구조하는 시스템, 이 시스템들을 관리하는 더 큰 시스템 전체가 침몰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목격한 것은 “세월호를 ‘고립된 배’로 만들려는 세력과 ‘연결된 배’로 되돌리려는 세력 사이의 대립”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전체에 대한 통찰 없이는 기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람과 기계를 위해 마땅히 필요한 제도와 장치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폐기되거나, 기계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안정적으로 고용할 돈의 결핍으로 인한 결과”를 사회에 알리는 알람이 이 순간에도 연발하는 기계 고장이다.

이는 김성은이 쓴 이 책의 두번째 챕터 ‘수리공은 왜 선로 안쪽에 들어가야만 했나’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고 김모군은 이미 망가진 지하철 시스템을 애써 움직이게 하는 “윤활유” 같은 존재였다.

2018년 5월 서울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를 맞아 한 시민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모군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5월 서울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를 맞아 한 시민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모군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라는 낭랑한 목소리의 안내방송만 접하지만, 이 매끄러움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통계적으로도 스크린도어는 1년간 무려 3000회 이상 고장이 난다. 스크린도어 고장의 압도적 다수는 장애물검지센서라 불리는 부품의 불량 때문이다. 센서는 선로 안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지하철이 발생시키는 풍압이나 먼지에 취약하다.

그렇다면 ‘2인1조’ 근무수칙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공학적인 해법을 통해 수리공이 선로 안쪽에 들어가지 않도록 센서의 위치를 조정하거나 고장이 덜 나는 레이저 스캐너로 교체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지하철공사는 더 신뢰할 만한 스크린도어와 운영시스템을 만드는 대신 “삐걱거리는 시스템을 ‘저렴한 노동’이라는 경제적이고 생물학적인 방법으로 보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기계비평이란 방식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면 좀 더 두터운 내러티브로 사건을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강부원이 쓴 ‘항모 민스크호는 왜 테마파크가 되었나?: 매뉴얼의 내러티브와 기술지배’ 역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떠올릴 때 우리가 간과해 온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바로 ‘매뉴얼’이라고 지적한다. 제품에 딸려 함께 배송돼 오지만 우리가 종종 냄비 받침으로 용도 전환하는 바로 그 매뉴얼북 말이다.

그는 “매뉴얼은 기계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고 의심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파시즘적”이라고 주장한다. 구소련의 주력 항공순양함이었던 민스크호가 처분되는 과정은 기계의 매뉴얼이 지니는 위상을 잘 보여준다. 냉전이 끝나고 러시아의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러시아 국방부는 이 전함의 운용을 포기하고 매각을 추진했다. 민스크호가 매각되면서 가장 먼저 거친 절차는 바로 매뉴얼의 소각과 장착된 무기의 해체였다. 일반적인 항공모함의 매뉴얼은 종이무게만 23t에 달한다. 더구나 민스크호 같은 전투 무기의 매뉴얼은 군사 대외비에 속하기 때문에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철저히 보안감시가 된다. 그러나 매뉴얼이 소각되자 국가가 독점적으로 부여했던 본래의 기능이 소멸된 항공순양함은 현재 중국 관광도시로 유명한 선전의 해상 테마파크로 활용되고 있다. 강부원은 “국가와 자본이 기계(테크놀로지)에 대한 오염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며, 더욱 문제는 매뉴얼이 기계에 대한 해석을 독점한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기계비평은 인간과 조직과 자본을 해부하는 강력한 사회비평이다. 이 책이 마무리될 무렵에도 기계는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경고를 보냈다. 심각한 통신장애와 금융서비스 중단을 불러일으킨 KT 통신망 화재, 198명의 승객을 태운 KTX 열차 탈선, 고 김용균씨가 참변을 당한 태안화력발전소, 3명이 사망한 한화 대전사업장 폭발까지. 저자들은 “문제는 비슷한 사고가 앞으로도 벌어질 게 자명하다는 사실”이라며 “더 이상 기계와 인간, 기계와 사회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세상에서 기계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기계비평’에 흥미를 갖게 됐다면 <기계비평들>의 발간에 맞춰 이번에 재출간된 <기계비평>을 함께 읽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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