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통치 도구로 전락한 오늘날의 민족주의

김찬호 기자

경계 너머의 삶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손영미 옮김

연암서가 | 264쪽 | 1만7000원

[책과 삶]통치 도구로 전락한 오늘날의 민족주의

‘민족’이 국가의 기본단위로 인식되던 시절.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의 기원을 파헤친 <상상의 공동체>를 출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책을 통해 민족이 태고적부터 존재한 ‘실체’가 아닌 18세기 이후 만들어진 ‘허구’임을 논증했다. 과감하고 독창적인 그의 논의는 이후의 민족주의 연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앤더슨 스스로 고백하듯 <상상의 공동체>는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처음부터 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데다 독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민족주의 관념을 파괴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논의의 이해를 도울 도구가 필요한데 앤더슨의 자서전 <경계 너머의 삶>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경계 너머의 삶>은 앤더슨이 2015년 타계하기 직전에 수정을 끝낸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민족’에 기반한 국가들의 경계를 넘나든 경험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민족, 언어, 학문 등의 경계를 뛰어넘는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민족이 허구라고 해서 앤더슨이 모든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는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 시달리는 개인과 집단에게 민족주의가 그들만의 정체성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연대한 집단은 또 다른 연대를 통해 해방을 얻는다. 앤더슨은 이를 ‘해방적 민족주의’로 긍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민족주의는 억압적인 세력의 ‘통치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연대에 관심이 없는 세력이 국민들에게 국수주의와 편견만 심어준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다.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개구리들이 컴컴한 코코넛 껍데기 속에만 쪼그리고 있으면 절대 이길 수 없으리니, 세계의 개구리들이여, 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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