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헬렌 아폰시리 글·그림 | 엄혜숙 옮김
이마주 | 68쪽 | 1만5000원
이토록 아름다운 사계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 식물을 누르고 말린 재료로 그리는 압화(꽃누르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헬렌 아폰시리는 자신의 정원에서 직접 키운 장미꽃과 고사리잎 등을 6~7주간 누르고 말리고, 그 바서지기 쉬운 재료들을 정성껏 한 땀 한 땀 붙여 2년 만에 그림책을 만들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이처럼 아름답고 경이로운 그림책이다.
고사리의 잎은 새의 보드라운 깃털이 됐고, 장미 꽃잎은 화려한 곤충의 날개와 새들의 가슴털이 됐다. 밀짚의 줄기를 갈라 거미줄을 만들고, 열매의 껍질은 여우의 신비스러운 눈동자가 됐다. 압화는 식물표본을 만들기 위해 썼던 방법으로 일러스트에 쓰이면서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이란 장르를 만들어 냈다. 헬렌 아폰시리의 압화는 옷, 가방, 시계, 문구 등으로 제작될 만큼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작가가 그린 첫 그림책이다.
책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을 포착해 그림이란 형태로 영원하게 만들었다. 꽃과 식물을 누구보다 세심하게 관찰했을 작가가 그린 첫 책이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봄날에 합창을 시작하는 새들, 만발하는 꽃, 다람쥐와 토끼 등은 아기자기하고, 한밤중의 올빼미, 사슴의 웅장한 뿔, 여행을 떠나는 기러기떼 등의 모습은 웅장하다. 잎맥만 남은 낙엽으로 표현한 땅 밑에서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 밀 줄기에 매달린 멧밭쥐의 모습은 재치 있고 앙증맞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는 데 수백개의 잎과 꽃이 쓰였고, 물감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다. 오롯이 자연의 모습과 색깔 그대로다. 헬렌 아폰시리는 “꽃과 나뭇잎은 계절에 따라 항상 변하지만, 이 책에서는 잠시 변신을 멈추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며 “책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의 다음 책은 해초로 만든 그림책으로 여름에 우리 곁을 찾아온다. 해초가 만들어낼 또 다른 경이로운 풍경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