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파라다이스·에덴·열반…불가능한 ‘영생’을 추구해온 인간들의 ‘정신승리’

정유진 기자

천국의 발명

마이클 셔머 지음·김성훈 옮김

아르떼 | 468쪽 | 2만8000원

[화제의 책]파라다이스·에덴·열반…불가능한 ‘영생’을 추구해온 인간들의 ‘정신승리’

2014년 초,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셔머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아무리 고쳐보려 애를 써도 헛수고였던 고장난 라디오에서 갑자기 사랑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너무나 놀라운 타이밍에.

그 오래된 트랜지스터라디오는 약혼녀 할아버지의 유품이었다. 그녀에게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준 각별한 존재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라디오로 음악을 들었던 추억 때문에 고장이 났는데도 버리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셔머는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새 배터리를 끼우고 전원 스위치를 ‘ON’에 놓아도 소리가 나지 않자 결국 포기한 그는 라디오를 침실 서랍에 넣어놨다.

몇 달 동안 꿈쩍하지 않던 라디오가 갑자기 작동한 날은 셔머와 약혼녀가 집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치른 날이었다. 약혼녀는 멀리 떨어져 있어 결혼식에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젖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침실에서 사랑 노래가 흘러나왔다.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할아버지의 고장난 라디오였다. 마치 그녀를 위로하려는 듯 그날 저녁 내내 사랑 노래를 내보내던 라디오는 다음날 갑자기 잠잠해졌다. 그리고 다시는 작동하지 않았다.

셔머는 유명한 과학 전문 잡지인 ‘스켑틱’의 발행인이고, 평생 오컬트나 유사과학과 싸우면서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보통 이런류의 ‘기이한 체험’을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초월적 존재를 증명해주는 사례라며 흠뻑 매료되거나, 아직도 미신을 믿는 것이냐며 조롱하거나. 하물며 셔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현상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비슷한 체험을 이야기하며 셔머에게 격려의 쪽지를 보냈지만, 그의 과학계 동료들은 “회의론이라는 방패를 내팽개친 것이냐”며 그를 비난했다.

로버트 블레어의 시집 <무덤>에 실린 윌리엄 블레이크의 삽화. 죽어서 육신을 떠나는 영혼의 모습을 묘사했다. 아르떼 제공

로버트 블레어의 시집 <무덤>에 실린 윌리엄 블레이크의 삽화. 죽어서 육신을 떠나는 영혼의 모습을 묘사했다. 아르떼 제공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음에도 일어난 사건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셔머의 약혼녀는 아마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결혼을 축하하고 위로해준 것이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을 경험하면 이를 초자연적인 사후 세계, 또는 신이 존재하는 증거라 해석하며 그 간극을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셔머는 “우리가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때까지 미스터리는 미스터리인 채로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고 말한다. “아직 과학적으로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냥 인정하고 즐기자”는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책장 속 책들이 저절로 떨어지는 폴터가이스트 같았던 현상이 나중에 알고 보니 웜홀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온 아버지가 중력파를 이용해 움직였던 것처럼, 언젠가 라디오의 미스터리도 그렇게 밝혀질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저자의 관심사는 정작 현재로선 알아낼 도리가 없는 기이한 사건의 원인이 아니다. 그는 “이런 사건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적 해석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사후 세계의 존재를 증명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 죽음이 영원한 끝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 하는 강력한 욕망 말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믿음은 압도적이다. 1990년대 말 이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72~83% 정도가 천국을 믿는다고 답했다. 심지어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답한 사람들의 3분의 1도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했다. 저자는 “저 높은 곳에 있다는 천국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지상의 천국은 실재한다. 적어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라고 말한다. 이 책의 원제가 ‘지상의 천국(Heavens on Earth)’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는 ‘죽으면 끝’이라는 명제를 부정하기 위한 끝없는 노력의 역사이기도 했다.

이를 위해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천국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종교와 문화권별로 ‘파라다이스’ ‘열반’ ‘시온’ ‘에덴’ 등 천국을 뜻하는 단어는 종류도 다양하다. 과학이 종교를 압도한 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이제 아예 영생을 찾아 나섰다. 인체를 얼렸다가 의학기술이 발달한 미래에 해동하는 냉동보존술, 뇌를 통째로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마인드업로더, 사이보그와 인공장기로 인체를 강화하는 트랜스 휴머니즘…. 저자는 해당 연구소를 모두 직접 방문해 연구자들을 취재했다. SF영화에서나 보던 것들이 실제 토끼나 돼지의 뇌를 이용해 실험실에서 연구되고 있는 현장의 이야기는 놀라우면서도 오싹하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이 죽음을 이길 수 있을 것이란 낙관주의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설령 냉동보존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먼 훗날 깨어난 나를 정말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뇌를 통째로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컴퓨터 안에서 깨어난 내가 정말 나일 수 있을까?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몸속의 세포는 몇 해를 주기로 완전히 바뀐다. 몇 해 전의 나와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세포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뇌의 신경세포 연결망 속에 암호화된 형태로 저장되는 정보의 패턴 때문이다.

과학은 이를 ‘커넥톰(connectome)’이라 부른다. 그런데 덩치가 크고 복잡한 뇌를 얼렸다가 해동할 때는 신경세포와 시냅스 연결이 일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 안의 기억과 정보가 날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커넥톰을 컴퓨터에 그대로 업로드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시점 자아’의 문제가 남는다. 우리가 마취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도 ‘나’일 수 있는 것은 한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는 자아의 연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깨어난 내가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자아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언젠가 혹은 영원히 안될 수도 있을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이 무의미해 보이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라”고 말한다. 약혼녀 할아버지의 라디오 사건처럼, 미스터리는 과학과 경이로움이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죽음은 인간이 마주한 가장 큰 미스터리다. 그는 “설명이 안되는 미스터리를 굳이 신이나 초자연적인 힘을 들먹이며 채우려 들 필요는 없다”면서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할 때 미스터리 앞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과 경외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과학과 역사, 유사과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저자의 흥미진진한 탐구 여행의 끝은 그래서 이렇게 귀결된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영생의 유토피아보다는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프로토피아를 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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