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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의 그늘-원금보장이라더니 피해는 투자자 몫? "돈이 안 돼" 펀딩 중개업체 잇단 철수

  • 정다운 기자
  • 입력 : 2019.02.15 09:39:20
지난해 6월 게임업체 ‘아이피플스’가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자금 7억원을 갚지 못해 채권이 부도처리됐다. 이 회사는 2017년 11월 유명 보드게임 부루마불의 모바일 버전 ‘부루마불M’을 만들겠다며 펀딩을 시작했다.

펀딩 당시 아이피플스는 연 10% 넘는 수익률을 제시했다. 원금 손실이 가능한 상품이지만 아이피플스는 ‘원금 보장’을 내세워 투자를 유도했다. 펀딩 시작 5일 만에 목표 금액인 2억5000만원을 조달했다. 이렇게 총 770명에게서 7억원을 모았다. 하지만 지난해 6월 15일 채권 만기일이 되자 아이피플스는 돌연 입장을 바꿨다. 게임이 흥행하지 못해 현금이 거의 없다며 투자자에게 상환 연기를 요청했다. 이들 투자자는 아직 이자는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성공 사례만큼이나 투자 피해 사례도 적지 않은 분야다. 물론 투자자가 손해를 보는 일은 흔하다. 다만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가 문제 있는 기업을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다는 허점이 고스란히 투자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앞의 아이피플스 사례를 들어 중개업체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펀딩을 받는 기업이 여러 차례 중개 플랫폼을 통해 원금 보장을 약속했지만 중개업체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중개업체는 “프로젝트 발행 기업의 게시물을 임의로 삭제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데 소홀했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제도 도입 이후 창업 초기의 기업에 새로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면서도 “향후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안정적인 자금 공급처 역할을 하려면 투자자 보호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간 업계가 ‘창업기업 활성화’에 집중한 나머지 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투자자 정보 제공 등 보호 조치 시급

이에 정부 역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크라우드펀딩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는데 투자자가 투자 위험과 청약 내용을 확실히 파악하도록 청약 전 사업 적합성 테스트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일정 금액 이상의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할 때 기업이 직전 사업연도 감사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크라우드펀딩 투자 한도 확대 등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중개업체 가운데 뚜렷해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아쉬운 대목이다. 2016년 1월 이후 340여개 기업이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약 600억원을 조달했는데 지난해 기준 P2P 누적 대출액이 약 4조3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더딘 편이다. 시장에서 철수하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중개사도 나타났다. ‘유캔스타트’는 최근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고 KTB투자증권도 신규 펀딩을 중단한 채 철수 준비 중이다. 앞서 신화웰스펀딩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해 퇴출된 사례가 있지만 사업자가 스스로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펀딩을 받는 기업으로서도 아쉬운 점은 있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에는 발행 한도(15억원)와 투자 한도(일반투자자 연 1000만원 이하)가 각각 정해져 있다. 여기서 업계 관계자는 “제대로 된 사업 모델을 갖춘 잠재력 있는 기업이 15억원을 위해 펀딩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좋은 기업이 크라우드펀딩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5호 (2019.02.13~2019.02.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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