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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 규제 벗고 '두둥실'

  • 명순영, 나건웅 기자
  • 입력 : 2019.02.15 09:53:37
  • 최종수정 : 2019.02.15 10:13:11
누적 펀딩금액이 1000억원 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국내에서 탄생했다. 국내 최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지난해 펀딩금액이 전년 대비 113% 성장한 601억원을 달성했다”며 “2016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펀딩금액이 1075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와디즈 펀딩 액수는 106억원(2016년) → 282억원(2017년) → 601억원(2018년)으로 해마다 배 이상 커졌다. 와디즈 성장세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부는 2년 전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제도를 신설해 창업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를 열어줬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코넥스 기업에 크라우드펀딩·소액 공모를 허용하고 회계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성장 페달을 밟아가는 크라우드펀딩의 빛과 그늘을 알아봤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에 자금 창구 역할

중기·벤처기업 생태계에 활력소 기대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대학생 아이디어로 세상에 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까.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최근 그 실험을 시작했다.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통해서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사내벤처팀 ‘SI_랩’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디자인총괄)와 대학생이 함께 트렌치코트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방안을 기획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500만원을 모으면 트렌치코트 600벌을 제작·판매하게 된다.

크라우드펀딩이 태동기를 넘어 성장 페달을 밟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군중 또는 다수(多數)’를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해 만든 단어다. 새로운 아이템을 가진 초기 사업가가 다수의 소액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월 기업당 크라우드펀딩 모집금액 한도가 7억원에서 15억원으로 확대되면서 업계 기대감이 고조되는 중이다. 규제 완화 이틀 후 모집을 시작한 ‘불리오’는 펀딩 1시간 만에 7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1월 기업당 크라우드펀딩 모집금액 한도가 7억원에서 15억원으로 확대되면서 업계 기대감이 고조되는 중이다. 규제 완화 이틀 후 모집을 시작한 ‘불리오’는 펀딩 1시간 만에 7억원을 돌파했다.

최근 각광받는 P2P(Person To Person) 대출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P2P는 개인 대 개인 간 대출이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금을 모은 뒤 대출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를 제공하고 이자를 받는다. 소액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점은 크라우드펀딩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P2P를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차이점 역시 분명하다. 크라우드펀딩은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단순 중개 역할에 그친다. 반면 P2P 금융은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심사와 채권 사후관리를 담당한다. 이런 이유로 관련법과 규제가 판이하게 다르다.

크라우드펀딩은 크게 보상형(후원·기부)과 투자형(증권)으로 나뉜다. 도입 초창기 주로 활용된 보상형은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다. 자금 부족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어려웠던 제작자를 후원하고, 제작자는 후원자에게 이에 따른 보상(리워드)을 제공한다.

미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 Starter)’가 대표적이다. 2009년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킥스타터를 통해 진행된 캠페인은 총 42만9691건. 모금된 액수만 40억7000만달러(약 4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36%인 15만6524건(36.4%)이 성공했다.

최근 각광받는 크라우드펀딩은 투자형이다. 2016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투자형은 드라마틱한 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은 중개회사를 통해 스타트업 등 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배당받는 식이다. 금융위원회가 인가한 중개업체에서 기업 정보를 파악한 뒤 투자하면 된다. 목표금액 80% 이상 돈이 모이면 투자가 완료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청약금을 환불받는다. 투자자는 기업이 수익을 올릴 경우 배당을 받고, 주식 가격이 오르면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물론 기업이 손실을 보거나 파산하면 원금을 잃을 수 있어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분류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월 31일 기준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 조달에 성공한 기업은 429개(누적 펀딩 성공금액 796억원)였다. 2016년 115건, 2017년 183건에 이어 지난해 185건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펀딩 시도가 2017년 295건에서 지난해 287건으로 감소했지만 성공 건수는 늘어났다. 펀딩을 진행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펀딩 분야가 다변화한다는 점은 좋은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2016년 초반 영화나 음악 같은 문화 콘텐츠에 편중돼 있었는데 지난해 1월 이후 제조업(33.3%), IT(26%), 도소매(11.2%) 등으로 분산됐다.

누적 펀딩금액이 1000억원을 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국내에서 탄생했다는 점 역시 굿뉴스다. 스타트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손쉽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시장이 커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와디즈 관계자는 최근 “지난해 펀딩금액이 전년 대비 113% 성장한 601억원을 달성했다”며 “2016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펀딩금액이 1075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시장 규모에 비하면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와디즈의 누적 펀딩액 1000억원 돌파는 ‘의미 있는 진전’으로 판단된다.

특히 정부 규제 완화가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4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되며 개인투자자가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 돈을 넣을 수 있는 한도가 늘었다. 기존에는 한 업체당 최대 200만원까지, 총 금액이 연간 500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가능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한 업체당 500만원까지, 연간 총 투자금액은 1000만원까지로 한도가 늘었다. ‘규제 완화 → 원활한 자금 수혈로 탄탄한 중개업체 확보 → 크라우드펀딩 생태계 확대 → 추가 규제 완화’라는 선순환이 진행된 셈이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크라우드펀딩 성공 사례가 늘며 정책 금융 등에 의존하던 스타트업이 직접 투자자와 만나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친화적인 자금 조달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자금 조달에서 신생 업체 혁신성을 키우는 효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으로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물꼬가 더 트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업이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집할 수 있는 자금 한도가 7억원에서 15억원으로 확대됐다. 펀딩을 받을 수 있는 기업 범위도 넓어진다. 그간 크라우드펀딩 가능 기업은 창업·벤처기업과 비상장 중소기업으로 한정돼 있었다. 앞으로는 코넥스에 상장된 기업이더라도 공모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았다면 상장 후 3년 동안 크라우드펀딩이 허용된다.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9’는 공모형 펀딩 프로젝트 최초로 기존 한도 7억원을 넘어 9억7000여만원 모집액을 기록했다.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9’는 공모형 펀딩 프로젝트 최초로 기존 한도 7억원을 넘어 9억7000여만원 모집액을 기록했다.

규제가 풀린 직후 기존 한도였던 7억원 초과 펀딩에 성공한 프로젝트가 2개 나왔다. 주식회사 지피페스트가 시도한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9’ 프로젝트는 9억7000여만원을 모았다. 규제 완화 이틀 후인 1월 17일 자금 모집에 나선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자산관리 서비스 ‘불리오’는 펀딩 하루 만에 모집액 8억원을 넘어섰고 1월 31일 기준 12억8000만원을 모집했다. 이는 단일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모집 사상 최대 금액이다. 규제가 완화되자마자 역대 신기록을 갈아치운 셈이다.

불리오를 운영하는 천영록 두물머리 대표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늘어났고 규제 완화 시점과 맞물려 기대 이상 좋은 성과를 올렸다. 다양한 투자자가 모여 기업 성장성을 검토하는 ‘집단 지성’의 장이 될 가능성도 높다. 앞으로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갈 길이 멀다는 의견 역시 귀담아들어야 한다. 먼저 시장 규모 자체가 너무 작다. 관련 업계는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 규모를 지난해 기준 13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스타티스타는 2017년 기준 전 세계 크라우드펀딩 시장을 80억달러(약 8조9000억원)로 추정했다. 보상형이 55억달러, 투자형이 25억달러였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형성되는 초반부터 규제가 너무 과했던 게 문제다. 기업당 펀딩 가능 액수가 영국 10분의 1도 안 됐고,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액수도 적었다. 세제 혜택을 더 늘리고 규제를 없애야 맞지만 현 금융당국이 그런 파격을 보여줄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시장을 키워갈 플레이어, 즉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자도 탄탄하지 못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크라우드펀딩 사업자를 뜻하는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는 15개다. 2016년에도 총 15개 중개업자가 활동을 시작했지만 숫자가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2016년 신화웰스펀딩이 자본시장법 위반 문제로 등록 취소됐다. 유캔스타트 역시 최근 사업을 폐지했다.

KTB투자증권은 신규 펀딩을 종료하고 조만간 사업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인크는 지난해 1월을 마지막으로 신규 등록 펀딩 프로젝트가 없다. 펀딩포유 역시 지난해 진행한 프로젝트가 2건에 그쳤다. 여러 중개업체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셈이다. 그나마 지난해 9월과 10월에 신규 중개업체 2개가 추가되며 숫자만 겨우 유지하는 실정이다.

업계 1위 와디즈가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과도한 쏠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와디즈는 지난해 상반기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모집금액 기준 68%의 점유율을 보여 독과점 논란에 휘말렸다. 신혜성 와디즈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은 미완성에 투자하는 거의 유일한 자본시장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육성해야 할 시장이다. 와디즈가 업계 1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경쟁 없는 시장은 빠르게 성장할 수 없다.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자에 과도한 출자제한 의무를 부과하는 금산법 적용의 배제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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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명순영(팀장)·배준희·정다운·나건웅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5호 (2019.02.13~2019.02.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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