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석면 철거 ‘마구잡이’ 공사, 교육 당국 ‘팔짱’…학부모 속탄다

허진무 기자
학교 석면 철거 ‘마구잡이’ 공사, 교육 당국 ‘팔짱’…학부모 속탄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개학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운동장을 함께 쓰는 옆 중학교의 석면 해체 공사 때문이다. 이 중학교는 지난달 23일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5일 뒤인 28일이 이 초등학교의 개학일이었다. 이날도 공사가 예정됐다. 학부모들은 교육청과 협의해 개학을 늦췄다.

공사 가이드라인 ‘무용지물’
학부모들 작업 감시에도
폐기물 아무 조치 없이 방치
규정 어기고 ‘도둑 반출’도

학부모들은 ‘학교 모니터단’에 참여해 석면 해체·제거 작업을 감시했다. 교육부의 ‘학교 시설 석면 해체·제거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여러 사례를 찾아 지적했다. 그중 하나가 석면 반출 위반이다. 반출일 아침 학부모들은 깜짝 놀랐다. 전날 밤 석면 폐기물이 학부모들의 눈을 피해 이미 ‘도둑 반출’됐기 때문이다.

폐기물이 적정 반출구로 나갔는지, 주변을 오염시키지 않고 지정 폐기물 차량에 제대로 옮겨졌는지 살필 수 없었다. 이 초등학교는 정밀청소를 끝낸 뒤 실시하는 석면 잔재물 검사를 지난 1일 하기로 했지만,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석면이 확인돼 다시 정밀청소에 들어갔다. 2차 잔재물 검사가 예정된 11일은 이 초등학교의 연기된 개학일이다.

<b>방진처리 않고 옮기고</b> 교육부의 ‘학교 시설 석면 해체·제거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울 둔촌동 한 초등학교에선 석면 덩어리를 방진 처리하지 않고 비닐째로 포클레인으로 옮기다 학부모 모니터단에 적발됐다.

방진처리 않고 옮기고 교육부의 ‘학교 시설 석면 해체·제거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울 둔촌동 한 초등학교에선 석면 덩어리를 방진 처리하지 않고 비닐째로 포클레인으로 옮기다 학부모 모니터단에 적발됐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한 초등학교도 지난달 11일부터 석면 해체 공사를 했다. 학부모 모니터단에 따르면 철거업체는 석면 폐기물을 일반 자루에 넣어 열려 있는 채로 방치했다. 석면에 오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폐기물도 아무 조치 없이 바깥에 쌓아놓았다고 했다. 공사 과정 문제를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모니터단은 국립환경과학원이 인정한 사설 석면 분석 기관에 석면 검출 분석을 직접 의뢰했다.

분석 보고서를 보면 기준치를 초과하는 석면 덩어리들이 학교 전체에서 검출됐다.

초·중·고교의 석면 해체·제거 공사 안전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와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로 호흡을 통해 체내에 축적될 경우 10∼50년의 잠복기를 거쳐 치명적인 폐질환을 유발한다.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전국 시·도교육청 학교석면공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사를 실시한 전국 614개 학교 중 교육부 가이드라인을 어긴 곳은 193곳(31.4%)에 달했다.

교육부·교육청·학교 등 교육 당국은 학부모들의 비판과 우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도 보였다. 둔촌동 초등학교 관계자는 “(이 논란은) 학부모와 폐기업체의 눈높이 차이”라며 “학부모가 100%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업체가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제시한 석면 검출 보고서는 공식 절차를 거쳐 나온 게 아니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철거업체는 교육청이 선정하고 계약한 것이라서 학교가 업체에 이래라저래라 못한다”고도 했다.

학교, 교육청에 책임 넘겨
교육청 “위반 조사” 불구
행정조치 의무 없다는 입장
교육부는 업체 부족 탓만

교육청 측은 ‘안전’보다 ‘절차’를 더 문제 삼았다. 강동송파지원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공식 절차를 통하지 않고 몰래 시료를 채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업체의 가이드라인 위반에 대해 조사하겠지만 교육청이 철거업체를 제재하진 않는다”며 “업체가 법령을 위반했다면 노동부나 환경부에 행정조치를 요청할 뿐”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역량을 갖춘 철거업체의 부족을 호소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을 어기는 업체에 대해선 사업면허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행정 규제를 할 것”이라면서도 “석면이 국정과제에 포함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업체들이 아직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수행할) 역량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b>조리실에 널려 있고</b> 보양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덩어리로 유출된 석면이 이 학교 내 유치원 급식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학부모 제공

조리실에 널려 있고 보양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덩어리로 유출된 석면이 이 학교 내 유치원 급식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학부모 제공

학부모들, 감사원에
교육지원청 관계자 등 고발

방이동과 둔촌동의 두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지난 7일 서울시교육청 산하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관계자 등을 감사원에 고발했다. 학부모 ㄱ씨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매일 철저하게 모니터했는데 (학교 바닥에) 석면 덩어리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ㄴ씨는 “(아이들 안전에 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당국이 책임 회피에만 바쁘고 절차 탓만 하고 있다”며 “이럴 거면 왜 (공사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정희 전국학교석면학부모네트워크 대표는 “학부모가 학교나 업체의 위반을 지적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교육부가 환경부와 노동부와 상의해 더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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