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테마여행] 영월에 잠든 조선의 어린 임금은 비로소 위로 받았을까

고서령 기자
입력 : 
2019-02-11 04:01:03
수정 : 
2019-02-11 09:52:41

글자크기 설정

24개 박물관 투어
재미와 반전의 연속
김삿갓 묘 가는 길
강원·충청 11번 바뀌어
"영월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편안할 녕(寧), 넘을 월(越) 자를 써서 '편안하게 넘어가시라'는 뜻이에요. 영월 주변에 높은 고개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영월'은 지나가는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강원도 산골의 작은 마을 이름에 그리 고운 뜻이 담겼을 줄이야.

영월엔 고운 이름만큼 고운 풍경이 많다. 맑은 동강, 신비로운 한반도 지형, 4억년의 시간을 품은 고씨동굴. 이런 풍경은 워낙 유명해 영월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월 구석구석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동강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영월로 이야기 여행을 다녀왔다.

◆ 이야기 하나, 단종

사진설명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지금도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를 잃고, 12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 왕위에 올랐다가 17세에 억울한 죽음을 맞은 삶. 그 짧은 생은 얼마나 무섭고 슬프고 외로웠을까.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던 임금, 단종의 이야기를 영월에 가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첫 번째 장소는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다. 조선 6대 임금이었던 단종은 왕이 된 지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에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깊은 산골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영월 청령포.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 있어서 배가 없으면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섬 같은 곳이다. 유배지로 이만큼 적합한 곳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내 이 고요한 곳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 단종이 안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린다.

두 번째 장소는 단종의 묘 '장릉'이다. 단종은 결국 사약을 받아 숨을 거두었고 그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당시 영월호장이었던 엄흥도는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찾아 현재의 장릉 자리에 몰래 매장했다. 장릉이 조선 임금의 묘로 인정을 받게 된 건 그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뒤다. 숙종은 단종을 노산군에서 노산대군으로, 다시 노산대군에서 단종으로 복위시켰고 단종의 묘를 장릉이라 이름 붙였다.

장릉엔 유독 기도를 올리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삶이 억울하다 느껴질 때 그 억울함을 모두 이해할 것만 같은 단종에게 위로받고 싶은 심정이리라.

◆ 이야기 둘, 박물관 고을

사진설명
별마로 천문대. 망원경으로 하늘의 달과 별을 자세히 관측할 수 있다. [사진 = 고서령 기자]
영월엔 박물관이 24개나 있다. 그중엔 '라디오스타 박물관'이나 '영월동굴생태관'처럼 영월과 관계가 깊은 주제의 박물관도 있지만,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이나 '인도미술박물관'처럼 뜬금없이 왜 영월에 있는 건지 모르는 주제의 박물관이 더 많다. 영월의 박물관들을 둘러보는 여행 일정에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반전이었다. 직접 가보니 박물관 하나하나에 기대 이상의 볼거리가 있었다. 각 박물관에 깊은 애정을 갖고 노련하게 설명을 들려주는 해설사들도 인상적이었다. 웬만한 대도시의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없이 깨끗한 박물관 시설도 놀라웠다.

그런데 왜, 언제부터 영월에 이렇게 박물관이 많아진 걸까. 군청에 물어보니 노무현정부 시절 '박물관 특구'로 영월이 지정되면서부터 하나둘씩 생겨난 박물관이 24개까지 늘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별마로천문대'다. 5억원이 넘는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과 달을 관측할 수 있고 계절에 따른 별자리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300~400년 전의 진품 민화 작품을 재미난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민화박물관'도 관람객들에게 꾸준히 호평을 받고 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중국의 차 도구를 관람하고 차의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호안다구박물관'은 가족이 함께 가기 좋은 곳이다. 한복을 입고 차를 마시며 차 예절을 배우는 등 체험 거리가 풍부하다.

◆ 이야기 셋, 방랑시인 김삿갓

사진설명
영월엔 방랑시인 김삿갓을 기억하는 조형물이 많다.
빈 주머니로 삿갓 하나 쓰고 전국 팔도를 떠돌며 살았던 시인, 김삿갓. 그가 방랑을 시작하기 전 영월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그 인연으로 영월 사람들은 오랫동안 김삿갓을 기리며 그의 시문을 발굴하고 그의 삶에 대한 조사를 펼쳐 왔다. 영월에 가면 김삿갓의 사연 많은 인생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먼저 찾아야 할 곳은 '김삿갓 문학관'이다. 이곳에선 김삿갓이 30여 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쓴 수많은 시를 만날 수 있다. 전국 팔도의 명승지에 대한 경탄을 담은 시, 길 위에서 겪은 설움을 풀어낸 시, 후한 인심을 만난 고마움을 표현한 시, 한평생을 돌아보며 쓴 시까지. 하나씩 찬찬히 읽다 보면 그의 삶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영월엔 김삿갓의 묘도 있다. 그가 생을 마감한 곳은 전남 화순군이었지만, 그의 아들 익균이 묘를 과거 김삿갓이 살았던 집 근처로 이장했다. 영월 사람들은 이 묘의 자리가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김삿갓의 묘 바로 앞은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되는 지점인 동시에 강원도(영월), 충청도(단양), 경상도(영주) 3개 도의 끝이 만나는 곳이라는 것. 묘에서 김삿갓의 집까지 가는 길 위에선 강원도와 충청도가 11번 바뀌는 경험도 할 수 있다고.

[영월 = 고서령 여행+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