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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웅기자의 비즈니스와인] 전쟁과 와인<1> 십자군전쟁의 산물 부르고뉴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07 16:03

수정 2019.02.07 16:03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의 심장이자 성지로 불리는 끌로드 부조. 시토회 수도사들이 처음 세운 끌로드 부조는 십자군 전쟁으로 부흥기를 맞아 오늘날의 부르고뉴 와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의 심장이자 성지로 불리는 끌로드 부조. 시토회 수도사들이 처음 세운 끌로드 부조는 십자군 전쟁으로 부흥기를 맞아 오늘날의 부르고뉴 와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주르륵, 콸콸, 또르르륵···.영롱하게 쏟아지는 루비빛 와인에서 환상적인 향기가 피어오릅니다. 수천년 전 방주에서 내린 노아를 취하게 만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와인도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8000년전부터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은 와인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때로는 새로운 문화에 의해 발전하기도 하고, 전쟁을 통해 국경을 넘기도 했습니다. 바로 앞에 놓인 이 한 잔의 와인 속에는 이처럼 우리가 살아온 오랜 역사와 문화가 비밀코드처럼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와인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
와인은 전쟁과 참 많이 맞닿아 있습니다.
십자군전쟁과 백년전쟁은 프랑스 와인 산업 발전에 획기적인 발전과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습니다. 특히 십자군전쟁은 오늘날의 명품 부르고뉴 와인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는 수도원은 10세기까지만해도 대부분이 사실상 귀족의 사유재산이었습니다. 많은 수도사들이 신학을 연구하며 구도자 생활을 하는 수도원을 운영하는데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이 돈의 대부분을 주변에 살고 있는 귀족들이 댔습니다. 귀족들은 사후에 구원을 받기 위해 자기를 위해 대신 기도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수도원에 돈을 대주고 그런 역할을 맡도록 한 것이죠.

그러던 중 910년 수도원의 소유 구조에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됩니다. 아키텐 공국의 기욤1세가 부르고뉴 소느 에 누아르라는 마을에 클뤼니 수도원을 세우고 교황의 권위 아래 둔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기욤 1세는 자신의 대를 이을 외아들이 죽자 신앙에 의지하다가 깊이 빠져들게 되고 이후 자신과 가족들의 내세 구원을 위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수도원을 설립했습니다.이 때부터 수도원이 하나 둘씩 귀족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수도원이 귀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재정 자립을 의미합니다. 수도원은 이 때부터 기부받은 땅으로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성찬의식에 꼭 필요한 와인을 생산하고 또 일반인에게 팔기 위해서 포도를 심기 시작한 것이죠. 베네딕토 수도회를 나타내는 문구인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말이 이 때 시작됐습니다.1071년 셀주크 투르크가 크리스트 교인들의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가로막자 1096년 십자군전쟁이 시작됩니다. 원정을 떠나는 기사들이 자신들의 땅을 클뤼니 수도원에 헌납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자신이 살아돌아올 수 있게 하느님께 빌어달라는 것이었겠지요.

부르고뉴는 십자군전쟁의 산물
수도원이 순식간에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됩니다. 부유해진 클뤼니 수도원은 각 지역에 지회를 만들고 수익의 일정액을 클뤼니 수도원에 보내도록 하면서 수도원의 재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부유해진 수도원이 세속적으로 타락하며 무절제한 음주와 과소비에 빠져든 것입니다. 결국 이에 염증을 느낀 수도사 20명이 클뤼니 수도원을 나와 시토 교단을 세웁니다. 이들이 자리잡은 곳이 바로 부르고뉴 와인의 성지이자 심장으로 불리는 '끌로드 부조'입니다.

오늘날 세계 최고가 와인인 '로마네 꽁띠'를 비롯해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명품 와인이 바로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사회 구성원 절대 다수가 문맹이던 그 당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수도사들은 지식인이고 과학자였습니다. 또 뛰어난 농부이면서 로버트 파커 못지않은 절대미각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김관웅기자의 비즈니스와인] 전쟁과 와인&lt;1&gt; 십자군전쟁의 산물 부르고뉴


수도사들은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며 땅의 속성을 하나하나 파악해 기록해뒀습니다. 그들은 같은 포도밭의 같은 포도 품종인데도 밭고랑마다 맛이 다른 포도가 생산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돌 무더기를 쌓아 이를 구분해놓았죠. 부르고뉴의 유명 포도밭에 '돌담'을 뜻하는 '끌로(Clos)'라는 명칭이 많은 이유입니다. 어쩌면 '떼루아'라는 말의 시작도 시토 수도사들에게서 시작된 말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앞에 놓은 와인의 라벨에 '끌로'라는 단어가 보인다면 1000년의 역사가 녹아있는 와인을 마시는 셈입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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