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한창 제철 맛 뽐내는 ‘땅끝마을 삼총사’

김진영 식품 MD

전남 해남 5일장

자애젓은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즐기는 바다의 별미다(왼쪽). 맛과 품질에 비해 덜 알려진 해남의 먹거리가 바로 낙지다(가운데). 투석식으로 키운 해남 굴은 겨우내 살이 올라 1월부터 제맛이 난다(오른쪽).

자애젓은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즐기는 바다의 별미다(왼쪽). 맛과 품질에 비해 덜 알려진 해남의 먹거리가 바로 낙지다(가운데). 투석식으로 키운 해남 굴은 겨우내 살이 올라 1월부터 제맛이 난다(오른쪽).

한반도의 끄트머리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1000리, 서울에서 함경북도까지 2000리, 합하면 삼천리 강산이 되는 시작이자 끝인 곳이 해남이다. 해남은 전국에서 시·군 중 15번째로 크고 전라남도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다. 면적이 넓으며 삼면이 바다와 접해 있고 제주도처럼 한겨울에도 날이 따뜻해 나는 산물들이 다양하고 맛도 좋다.

많은 산물이 나는 곳이다 보니 지역별로 오일장이 선다. 그중 가장 큰 장은 해남읍에서 매달 1, 6이 들어가는 날에 서는 해남읍장이다. 4, 9일에 열리는 진도 초입의 우수영 오일장, 2, 7일에 완도와의 경계 지점에서 열리는 남창장도 싱싱한 수산물을 살 수 있는 장으로 유명하다. 해남은 강진과 영암에 맞닿아 있는 계곡면, 옥천면 그리고 충청북도처럼 내륙에 있는 삼산면을 제외하고는 바다를 품고 있다. 해남 오일장에 많은 것들이 나오지만 그중 해남 사람들도 이 시기가 되면 찾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새벽에 도착해 오일장 구경 전에 들어간 식당에서 이름 모를 젓갈이 찬으로 나왔다. 토하젓과 비슷하지만 살짝 나는 흙내도 없거니와 귀한 토하를 7000원짜리 백반집에서 찬으로 낼 일이 없기에 작은 바다 새우젓이라 생각했다. 따스한 밥과 함께 먹으니 토하젓 못지않게 밥을 빠르게 훔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속을 든든히 하고 장 구경을 나서니 채반에 소복이 담긴 것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다. 옆에서 지켜보니 새우처럼 보인다. 이름을 물어보니 ‘자애’라 한다. 자애는 ‘자하’의 사투리다. 자하는 새우처럼 생겼지만 새우는 아니다. 새우와 다른 곤쟁이다. 발이 열 개인 새우와 달리 곤쟁이는 여덟 개다. 곤쟁이와 새우를 구별할 때 가슴에 아가미가 달려 있으면 곤쟁이라 여기면 된다. 자하는 얕은 바다에서 겨울 초입부터 이른 봄까지 나는 겨울 별미다. ‘자애젓’을 만드는 방법은 고춧가루, 다진 마늘, 쪽파와 달래 다진 것으로 양념하고 마지막으로 들기름 한 방울로 향을 더하면 끝이다. 해남에서는 자애젓이라 부르지만 다른 젓갈처럼 삭히지 않고 어리굴젓처럼 무쳐서 바로 먹는다. 젓갈보다는 무침에 가깝다. 죽은 입맛도 살리는 묘약이다. 플라스틱 그릇 한가득 담은 것을 1만원에 판다.

해남에서 나는 것 중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들이 있다. 김장철의 절임 배추, 가을부터 달달함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고구마 등이 대표적이다. 바닷바람 맞은 양파와 마늘도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육지 것들과 상대적으로 비린 것들은 많이 나면서도 이름이 없다. 있으면서도 없는 것들이 있는 해남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낙지다. 해남의 낙지는 씹는 맛이 부드러워 경매에서 항상 최고가를 받는다. 해남 낙지가 부드러운 이유는 잡는 방법이 다른 곳과 다르기 때문이다. 낙지는 보통 통발로 잡거나 아니면 게(서렁게, 칠게)를 매단 타일을 길게 연결한 주낙으로 잡는다. TV에서 흔히 보는 물 빠진 갯벌에서 삽질로 낙지 잡는 것은 일부분이다. 해남에서는 다른 곳처럼 주낙으로 잡지만 타일에 바늘이 없어 잡힌 낙지에 상처가 없다. 바늘이 있으면 올리는 도중 낙지가 떨어지지는 않지만 상처 나기 십상이다. 해남에서는 올라오다 떨어지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놔두고 끝까지 게를 붙잡고 있는 먹성 좋은 낙지만 잡는다. 먹성이 좋은 녀석들이다 보니 살 맛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때는 서울 가락동시장이나 노량진에서 높은 몸값을 자랑했지만 값싼 중국산에 밀려 지금은 대부분 목포에서 목포 낙지로 소비된다. 회를 주문하면 곁들이는 찬으로 나오는 한 접시 중국산 낙지와 달리 해남 낙지는 차진 맛과 부드러운 맛을 같이 가지고 있다. 삼면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해남에는 상설 어시장이 없다. 낙지가 많이 잡혀도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이 드물다. 30년 넘게 해남에서 낙지 도소매를 하는 매일수산(061-533-6362)이 그나마 낙지를 살 수 있는 곳이다. 2, 7일에 열리는 남창 오일장 바로 옆에 있다.

찬 바람이 불면 맛이 쨍해지는 것이 굴이다. 굴 하면 통영이다. 겨울 한철 먹는 굴의 열에 여덟은 통영에서 생산한 것이다. 굴을 생산하는 방식은 수하식과 투석식 두 가지가 있다.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줄에 매단 가리비 껍데기에 굴 유생을 부착시켜 키운다. 바닷물에 계속 잠긴 상태로 성장을 하기에 알이 크고 살집이 좋다. 우리가 먹는 굴 대부분이 이 방식으로 키운 것이다. 반면 수심이 낮은 갯벌에 돌을 던져 놓고 굴 유생이 달라붙도록 한 것이 투석식이다. 혹자는 수하식과 투석식을 양식이니 자연산이니 구별하지만 사실 먹이를 따로 주는 것이 아니므로 구별은 의미가 없다. 투석식으로 자란 것은 알이 수하식보다 작다. 먹이 활동이 제한되고 햇빛과 공기에 노출되는 혹독한 환경이다 보니 살집은 작아도 맛이나 향은 수하식에 비해 진하다. 해남의 남쪽, 완도를 바라보는 북일면과 북평면에서 맛있는 굴이 난다. 모래와 펄이 적절히 섞인 갯벌에 돌을 던져 놓은 굴밭(갯벌마다 집집의 구역이 정해져 있다)에서는 12월부터 굴에 살이 오르고 1월에야 제 맛이 난다. 옹골찬 굴맛을 찾아 북일면 내동리를 찾았다. 마침 수확한 굴을 까고 있었다. 몇 개의 굴이 제멋대로 붙어 있는 굴 껍데기를 열어 굴을 발라낸다. 작은 것은 젓갈용으로, 살집이 좋은 것은 횟감으로 분리한다. 화톳불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붙이고 있으니 입 다물라는 의미인지 커다란 굴을 건네신다. 바닷물을 품은 굴에서 쨍한 짠맛이 나더니 이내 감칠맛이 덮는다. 굴 한 개를 먹었는데도 향긋한 바다 향이 입안을 채웠다. 맛있는 탄성이 굴 넘어간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굴은 바닷물이 많이 빠질 때 채취한다. 잡은 것은 갯벌 초입에 쟁여 놨다가 조금씩 낸다. 해남읍 오일장에서 인기 좋은 품목이다. 해남 북평면 와룡리에서 나는 굴도 내동리 못지않다고 한다. 이곳 굴을 사려면 내동리 어촌계(김종원 010-9172-3289)에 문의하면 된다.

밥과 김, 양념장을 더한 삼치회.

밥과 김, 양념장을 더한 삼치회.

남도 밥상의 매력은 백반을 시켜도 열댓 가지 나오는 반찬의 다양함이다. 한정식은 무엇을 먹을지 헷갈릴 정도로 나온다. 다양한 찬이 나오는 것도 좋지만 한 가지를 꼭 집어서 먹으면 조금 더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한겨울 남도 여행에서 꼭 맛봐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삼치회다. 삼치회는 초장이나 고추냉이 간장 없이 먹는다. 대신 김, 쪽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이 필요하다. 물론 곰삭은 김치가 빠져서는 안된다. 반듯하게 자른 김 한 장을 왼손에 올린 다음, 간장과 고춧가루를 품은 쪽파를 삼치회에 얹는다. 그리고 김치를 올린다. 이렇게 먹으면 술안주. 여기에 밥을 한 숟가락 퍼서 올려 먹으면 최고의 한 끼가 된다. 갓김치가 맛있는 여수, 순천은 묵은지 대신 갓김치 썬 것이 나온다. 삼치회는 방어와 참치를 합친 맛이다. 참치처럼 한없이 부드럽고, 겨울 방어의 기름진 맛이 있다. 생선구이로 먹는 삼치는 어린 삼치다. 회로 즐기는 것은 1m 내외의 큰 삼치로 구워도 맛있지만, 회는 더 맛있다. 삼치회에 빠지면 다른 회는 눈에 잘 안 들어온다. 겨울에 먹을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지만 먹어본 사람이 다른 회에 비해 드물다. 영일만식당(061-536-9588)이 해남에서 이름난 곳이다.

양 많고 저렴한 육회비빔밥.

양 많고 저렴한 육회비빔밥.

전라남도의 군·면 단위 시내를 다니면 식당 메뉴로 생고기, 육회비빔밥을 흔히 볼 수 있다. 전남은 전국에서 경북 다음으로 소를 많이 키우는 곳이다 보니 파는 곳도 많다. 많기도 많지만 가격이 우선 착하다. 육회비빔밥 비싼 곳이 9000원, 싼 곳이 7000원이다. 가격이 싸지만 육회 양이 박하지 않고 많다. 해남 읍내에서 30분 정도 진도 방향으로 가면 우수영 관광지가 있는 문내면이다. 해남에서도 육회비빔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식당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40년 가까이 고기와 곰탕 그리고 육회비빔밥을 내는 식당이다. 오후 1시30분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들고 난다. 관광 성수기도 아닌 한겨울에 면 소재지 식당에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라는 방증. 육회비빔밥은 지지고 볶는 과정이 없어 주문하면 금세 나온다. 준비 과정이야 복잡하지만 그릇에 담고 먹는 과정은 전형적인 패스트푸드다. 채소 위에 육회가 고명처럼 담긴 것이 아니라 압도하는 양이다. 육회비빔밥을 먹기 전에 먼저 하는 의식이 있다. ‘김가루’를 제거하는 것. 조금 들어간 것은 그냥 두지만 좀 많다 싶으면 비비기 전 덜어낸다. 김가루 만들 때 쓴 향신참기름(식용유에 참기름 향을 첨가해 만든 기름)이 전체 맛을 흩뜨리기 때문에 빼내고 먹는다. 전라도의 개미(제대로 된 맛을 일컫는 전라도식 맛의 최상급 표현) 가득한 김치를 곁들여 먹다 보면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 현대식당(061-532-1344).

대도시로의 여행이 아니라면 사전에 오일장 일정을 체크하면 여행이 재밌어진다. 이름난 맛집과 함께 제철 음식을 같이 검색하면 잊지 못할 맛있는 여행이 된다. 지금 해남은 한창 맛있을 때다.

▶필자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2)한창 제철 맛 뽐내는 ‘땅끝마을 삼총사’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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