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무섭다기보다는 측은한…‘먹는 존재’로서의 조선판 좀비

이로사 칼럼니스트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인육을 먹고 변질된’ <킹덤> 속 좀비들은 어딘가 측은하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깨어나는 좀비들은 낮에는 정치사극을, 밤에는 좀비물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며 한국형 좀비물에 입체감을 더한다. 조선의 반상 제도하에서 양반들이 좀비를 맞닥뜨렸을 때 취하는 태도도 웃음 유발 포인트다. 넷플릭스 제공

‘인육을 먹고 변질된’ <킹덤> 속 좀비들은 어딘가 측은하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깨어나는 좀비들은 낮에는 정치사극을, 밤에는 좀비물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며 한국형 좀비물에 입체감을 더한다. 조선의 반상 제도하에서 양반들이 좀비를 맞닥뜨렸을 때 취하는 태도도 웃음 유발 포인트다. 넷플릭스 제공

15세기 조선에 좀비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킹덤>에서 좀비는 ‘역병’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근과 굶주림 속에서 “식탐만 남은 역병 환자”. 보고 있으면 무섭다기보다 좀 징글징글하고 측은하다.

초반 눈길을 끄는 것은 한옥의 마루 밑에 봉인된 수많은 좀비들이 잠든 채 서로 엉겨 붙어 줄줄이 끌려 나오는 장면이다. 낡은 한복을 입은 그들의 얼굴은 까맣게 변색되어 있지만 무해해 보인다. 그저 지쳐서 서로에게 기대어 잠든 무구한 짐승들 같다.

병사들이 시체들을 모두 마을 관아 마당에 옮겨놓으며 봉인은 풀려버린다. 의녀 서비(배두나)는 급히 관아에 나아가 해가 지기 전에 이들을 다시 가둬야 한다며 말한다.

“그들은 지율헌에 있던 병자들과 식솔들이었는데, 지독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인육을 먹은 뒤 밤에는 사람의 살과 피를 탐하는 괴물이 되었고, 아침에는 해가 들지 않는 곳으로 몰려가 시신처럼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결국 해가 진 뒤 시체들이 살아나 마을은 아비규환이 된다. 거리를 날뛰는 괴물들은 식욕밖에 남지 않은 아귀처럼 게걸스럽게 사람들을 물어뜯고 씹어 먹는다.

■먹는 존재

<킹덤>에서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보다 주로 “인육을 탐하는 괴물”로 불린다. 보통 좀비 하면 걸어다니는 시체의 지치지 않는 운동성이나 끈질긴 공격성 같은 게 부각되지만, <킹덤>은 좀비의 수많은 특성 중에서도 ‘인간의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역병의 시작은 왕이다. 왕위를 노리는 조학주 대감(류승룡)이 숨이 멎은 왕에게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생사초를 먹여 그를 좀비로 소생시킨다. 자신의 딸인 중전(김혜준)의 태아가 출생할 때까지 왕의 죽음을 미루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왕은 살지도 죽지도 않은 괴물이 되고, 그에게 물려 죽은 수상한 사체를 뭔지도 모르고 나눠먹은 사람들은 좀비가 되어버린다.

백성들이 먹은 것은 위정자의 욕망에 희생된 무언가다. 배고픈 백성들은 단지 뭔가를 먹었다는 사실 때문에 괴물로 변하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욕망이 낳은 이 괴물들을 치료하거나 그 괴물들 때문에 위험에 처한 백성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관문을 봉쇄해 자신들의 이득을 지키려 한다(봉쇄된 문경새재 앞으로 역병을 피해 몰려든 피난민들은, 현실의 국경 장벽 앞의 굶주린 난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킹덤>의 좀비는 전염병과 기근으로 굶주린 백성들의 그저 ‘먹고 싶다’는 서글픈 욕망에, 권력자의 추악한 욕망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대재앙이 현현한 듯한 존재다. 드라마는 유독 인간이 고기를 먹는 모든 장면을 역겹고 게걸스럽게 연출하는데, 인간의 모든 고통과 욕망이 ‘먹는 존재’로 귀결된 느낌을 준다. 또한 먹는 장면은 매번 보는 이를 불안하게 한다. 그들이 자신이 먹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것을 먹어치우고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좀비 자체의 장르적 특성으로 보면, <킹덤>의 좀비를 지배하는 법칙들 중 몇 가지 역시 이들이 그냥 좀비가 아니라 ‘인육을 먹고 변질된 좀비’라는 데서 비롯한다. 생사초를 먹은 뒤 좀비로 되살아난 왕에게 물린 최초의 희생자는 그냥 죽었다. 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체를 나눠먹은 이들은 좀비로 변했고, 이후 공격이 시작되자 희생자가 좀비로 소생하는 속도는 점차 더 빨라졌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이로사의 신콜렉터]‘킹덤’ 무섭다기보다는 측은한…‘먹는 존재’로서의 조선판 좀비

백성들의
먹고 싶다는 서글픈 욕망과
권력자의
추악한 욕망이 결합된 대재앙

식탐만 남은 좀비들은
낮에 잠들고 밤엔 깨어나
낮에는 정치사극을
밤에는 좀비물을 보게된다

인물들의 비밀들은
아직 풀리지 않았고
대량 좀비 퇴치전도
아직 보여주지 않아
시즌2를 기대해본다

<킹덤> 속 좀비들이 갖는 여느 좀비물의 좀비들과 다른 특성은 여기서 비롯한 듯하다. 우선 이들은 좀비에게 물리는 순간 매우 빠른 속도로 좀비가 되어버린다. 보통의 좀비물에서라면 감염자의 발병 과정은 시간이 좀 걸린다. 점차 감염부위가 변색되다가, 근육 조정 능력을 잃고 이후 혼수상태에 빠진 뒤 적어도 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좀비로 소생한다. 그러나 <킹덤>의 좀비 바이러스는 거의 물린 즉시, 수 분 내로 발병한다.

또한 이들은 좀비치고 움직이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 일반적으로 좀비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운동신경이 극도로 둔한 것이다. 근육이 썩어문드러지거나 뼈가 제대로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절뚝거리며 느릿느릿 걷는 게 보통이고, 달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킹덤>의 좀비들은 뛴다. 게다가 꽤나 빠르다. 좀비가 신체능력에서 인간보다 나은 것은 불굴의 지구력뿐이라는 것이 상식인데, 지구력에 속도까지 더해진 좀비들이라니, 좀비 자체를 바이러스로 본다면 역병은 변이를 거쳐 좀 더 강력해지고 감염 속도도 훨씬 빨라진 것이다.

물론 뭐니뭐니 해도 <킹덤>의 좀비들을 지배하는 제1법칙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깨어난다’는 것이다. 보통 좀비는 휴식이 필요 없는 존재지만, 여기서는 해가 뜨면 힘을 잃는 뱀파이어와 비슷하다. 이런 설정은 낮에는 정치사극을, 밤에는 좀비물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해가 나면 기어 들어가 잠드는 한옥의 ‘마루 밑 좀비’와 같은 ‘조선 패치’가 빛을 발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조선 패치

사실 좀비 퇴치에 있어서는 현대 도시와 현대 무기보다 구식 무기, 구식 요새, 구식 탈것이 고전적인 힘을 발휘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15세기의 조선과 좀비는 의외로 잘 맞는 조합이다. 그리고 <킹덤>의 재미는 대부분 ‘조선 패치’가 붙은 좀비물의 양상을 즐기는 데서 온다.

좀비를 죽이려면 머리를 노려 뇌를 파괴하거나, 불태워야 한다. <킹덤>에서 주로 사용하는(사용할 수밖에 없는) 무기는 장검, 불, 불화살이다. 그 밖에 호미(배두나가 사용한다), 죽창, 총포가 사용된다. <워킹데드>에서 익히 보았듯 칼은 장전이 필요 없이 목을 베어버릴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킹덤>의 좀비는 잘린 대가리가 사람을 물지는 않는 것 같다). 불화살은 개별 좀비를 맞혀 불태우는 데도, 원거리에서 소리 없이 불을 지르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사실 화공작전은 좀비전에서 최고의 전술이지만 도심지에서는 불이 좀비보다 인간에게 더 위험할 수 있어 잘 쓸 수 없다. 이곳이 15세기 시골 평야라서 가능한 전투다. 헤엄을 못 치는 좀비의 성격을 이용해 물길로 막힌 지형에서 수중전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조선의 자연을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이들이 이용하는 말, 배 등의 탈것 역시 현대전일지라도 좀비들에게 공격당할 때 선호되는 이동수단이다. 말은 평평한 도로가 아니어도 어디든 네 발로 달릴 수 있고, 따라서 선택 가능한 지형의 폭이 넓어지는 확실한 탈출 수단이다. 배는 헤엄을 못 치는 좀비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이동수단이다.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옥이 피난처로 사용되는 것도 재미있다. 감옥은 인간을 가둬두려고 만들었지만 바깥에서 밀려들어오는 좀비를 막아내는 데도 그런대로 효과적이다. 목에 칼을 나눠 찬 두 명의 수인 중 하나가 좀비로 변해, 나머지 하나가 그를 피하려 줄곧 좁은 감옥을 돌고 도는 장면은 <킹덤>에서 가장 웃긴 장면 중 하나다.

[이로사의 신콜렉터]‘킹덤’ 무섭다기보다는 측은한…‘먹는 존재’로서의 조선판 좀비

무엇보다 조선의 반상 제도하에서 양반들이 좀비를 맞닥뜨렸을 때 취하는 태도가 웃음을 자아낸다. 그들은 “잡것들이 양반을 공격한다!”며 도망치고, 좀비를 불태워야 한다는 말에 “어디 시신을 태운단 말이냐. ‘신체발부 수지부모’거늘! 삼대독자 귀하디 귀한 내 아드님 시신에 털끝만큼이라도 손댔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걸세” 운운하다 좀비에게 물어뜯기고 만다.

시즌 1은 <킹덤> 좀비의 제1법칙 ‘낮에 잠들고 밤에 깨어난다’가 무너지면서 끝난다. 애초 주인공들이 잘못 파악했던 것인지, 좀비 자체가 한 차례 더 변이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인물들이 가진 비밀들은 아직 풀리지 않았고, 본격적인 준비 태세에서의 대량 좀비 퇴치전도 아직 보여주지 않았으므로 시즌 2를 기대해본다.

참고도서 :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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