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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래의 미라이’ 부모도 자식도서로가 다 처음이야

입력 : 
2019-01-30 09: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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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늑대아이’를 만든 애니메이션 거장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는 네 살 주인공 쿤에게 여동생 미라이가 생기면서 벌어지는 시간 여행기다. ‘타임 리프’ ‘가상 세계’ ‘가족’을 다루는 호소다 월드는 이번에도 그대로다. 감독의 실제 네 살 아들과 한 살 딸을 모델로 한 쿤과 미라이의 귀여움이 ‘갓소다 마모루’만의 서정적인 그림을 타고 스크린 위로 폭발한다.

사진설명
커다란 산 모형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인형이 마주앉은 다음 아이에게 반대편 인형이 어떤 장면을 보고 있을지 물으면 아이는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을 말한다. 타인이 자신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기 중심적 사고를 보여 주는 심리학자 피아제의 ‘세 산 실험’(Three mountain problem)이다. 영화 ‘미래의 미라이’는 이처럼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가 여동생의 탄생으로 무너진 네 살 쿤이 주인공이다. 엄마, 아빠, 강아지와 사랑하는 기차 장난감들. 행복하기만 하던 쿤에게 동생이 태어나고, 부모님의 관심을 빼앗긴 쿤은 아빠를 무시하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미라이를 미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에서 미래에서 온 미라이를 만난 쿤은 그녀와 함께 엄마의 어린 시절, 증조할아버지의 청년 시절 등으로 환상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을 알게 된다. 생각해 보면 부모가 되는 것도, 오빠가 되는 것도 다 처음이다. ‘미래의 미라이’는 처음부터 어른일 것 같았던 엄마, 아빠에게도 미숙한 시절이 있었고 그들도 실수하고 싸우며 성장한다는 것을, 애정 순위에서 밀려나는 뼈아픈 경험은 네 살짜리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부터 ‘썸머 워즈’(2009) ‘늑대아이’(2012)와 ‘괴물의 아이’(2015)까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영화로 판타지를 얻으려는 관객들에게 영화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들려줬다. 이번에도 그가 심어 놓은 장치들은 꽤 섬세하다. 변화해 가는 가족의 가치, 전통적 남녀 성 역할의 역전, 아이의 성장과 함께 진행되는 어른 성장기…. 극중 미라이는 부모의 사랑을 빼앗기고 세계가 흔들리는 쿤에게 다른 시점을 제공하는 길잡이이자 안내자다.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네 살 아들이 실제 우는 모습을 보고 모티프를 얻었다는 감독은 네 살짜리 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증조부모 세대까지, 4대를 관통하는 생명의 거대한 순환을 마치 거대한 계보도처럼 그려 낸다.

기획과 각본 개발, 캐릭터 디자인, 작화, 편집, 더빙까지 3년을 매달린 이 작품에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오랜 팀워크를 자랑하는 작화 감독들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에 참여한 미술 감독 오모리 타카시, 타카마츠 요헤이 등이 참여했다. 아이들의 몸짓과 표정 외에도 환상이 시작되는 정원의 나무를 비롯,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집 공간의 특이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계적인 건축가 타니지리 마코토가 프로덕션 디자인에 참여해 전통 일본식이 아닌 높낮이가 다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을 탐험하도록 만들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과정 자체가 아이의 성장을 뜻하도록 한 것. DNA와 혈연을 강조하는 것이 촌스러운 일이 된 지금, ‘미래의 미라이’는 전통적 가족의 의미를 강제하기보다 가족도 각자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노력’해야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한 가족을 통해 생명의 커다란 순환, 삶을 구성하는 거대한 고리를 그려 내는 ‘미래의 미라이’가 호소다 감독의 말대로 ‘언뜻 평온해 보이지만 대단한 야심을 품은 애니메이션’인 이유다.

[글 최재민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5호 (19.02.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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