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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평창동 平倉洞-정적이 주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동네

입력 : 
2019-01-30 11: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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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기슭의 높고 넓은 시선, 갤러리 그리고 아름다운 작품 같은 저택들로 이루어진 동네, 평창동. 이곳에 가면 ‘잠시 휴대폰을 꺼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이 동네를 감싸고 있는 정적의 파동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 실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입을 닫고 귀를 열고 눈을 뜨면, 평창동의 아름다움이 오감으로 밀려온다. 서울 시내에서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다니, 이 동네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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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은 사실 ‘나들이 가야지’라는 맘이 있어야 갈 수 있는 동네다. 서울 북쪽 북한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평창동은 들고나는 길이 외통수다. 미아리, 정릉 등 서울 동쪽에서 가려면 국민대학교를 지나 북악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광화문이나 서대문, 은평구에서 평창동으로 가려면 구기터널을 지나야만 한다. 평창동을 가로질러 북악터널로 연결되는 유일한 대로인 평창문화로를 중심으로 양쪽이 평창동이다. 길을 따라 북악터널 방향으로 가면 왼편에 평창동주민센터가 여기부터 평창동임을 알린다. 조금 더 가면 오른편에 서울예고가 있고 롯데캐슬, 삼성아파트가 연이어 나타난다. 그 반대편, 언덕길로 연결되는 좁은 골목들이 핏줄처럼 뻗어 있는 곳부터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창동이 펼쳐진다. 평창동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갤러리’다. 인사동, 삼청동, 청담동 등과 함께 평창동에는 보석 같은 갤러리들이 골목마다 위치해 있다. 월탄 박종화 고택을 비롯해 토탈미술관, 조각 작품에 특장이 있는 김종영미술관, 가나아트센터, 키미아트, 자하미술관, 아트 스페이스풀, 갤러리세줄, 디방, 화정박물관 그리고 꽤 오랫동안 평창동을 지켜 온 그로리치 화랑도 있고 한국 현대 추상 회화의 대표 김환기 선생의 작품이 가득한 환기미술관도 있다. 이 정도면 서울에서 가히 ‘문화 밀도’로는 최고인 셈이다. 예부터 평창동은 ‘무언가를 쌓아 놓고 보관하는 창고’였다. 한양을 방어하는 총융청의 창고가 있었고 대동미를 관리하는 선혜청의 창고, 즉 평창이 자리했다. 이것이 동네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평창동은 문화와 예술 못지않게 재물 또한 풍족한 곳이다. 높은 담, 좁은 골목으로 연결된 이 동네에는 ‘저택’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집들이 산기슭을 타고 들어서 있다. 예술가, 연예인, 재벌급 부자들이 동네 주민이다. 한때는 청와대와 가까워 정치인들이 선호하기도 했지만 역시 토박이는 예술가들이다. 그들이 이곳에 하나둘 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1968년 ‘1.21사태’ 이후 텅 빈 채로 두는 것보다 사람들이 모여 살고 왕래가 빈번한 것이 오히려 보안상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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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의 첫인상은 정적이다. 조용하고, 번잡스럽지 않고, 소음이 없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주치는 이들은 갤러리나 맛집을 찾아온 이들이나, 간편한 등산복 차림의 중장년이 대부분이다. 그 흔한 마트나 편의점 등 서울의 여느 동네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가게’들이 없다. 집 대문만 열면 온갖 것을 다 살 수 있는 ‘서울식 동네’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여간 불편(?)한 동네가 아니다. 캔 맥주 하나, 라면 하나 사려 해도 차를 타거나 꽤 긴 길을 내려가고 거슬러야 하는 동네다. 이런 ‘작은 불편함’을 대신하는 것은 ‘편안한 정적’이다. 이 자연스런 정적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면 모든 사물이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인다. 하늘도, 산도 그리고 높은 담을 이루는 벽돌 한 장도,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이끼나 풀 한 포기의 모습도 비로소 뚜렷해진다. 마치 물성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0데시벨’에 가까운 무소음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글 장진혁(아트만텍스트씽크) 사진 코리아넷, 아트만텍스트씽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5호 (19.02.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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