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블루투스 스피커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고가의 제품은 아니지만 줄곧 구매해 사용했다. 나름 매거진을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아주 비싼 제품도 촬영을 핑계로 만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게 그것들이 쥐어졌을 때 빛을 발하지는 않았다.
뱅앤올룹슨의 P6를 선물로 받으며 이걸 좀 제대로 사용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레코드 플레이어였다. 나름 트렌드로 도래한 유행을 시시때때 받아들이는 소비 지향적 성향인지라, 더욱이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기에 신혼집을 꾸미며 1순위로 장만해야 할 목록에 있던 것이 바로 레코드 플레이어였다. 물론 아내의 눈총으로 좋은 제품을 마련하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었다.
우리 집은 오래된 낡고 작은 평형의 아파트다. 조악한 내장 스피커가 탑재된 플레이어였지만, 거실 한편에 있었던 것이다. 스피커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으면 음악을 들을 때 그 방향에 있지 않으면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 집이 딱 그랬다. 층간 소음을 신경 쓰는 편이라 베이스음을 아주 키우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싸구려 플레이어와 스피커를 통해 재생되는 사운드는 굉장히 일방향으로 흐른다. 이때다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 중 하나가 되어 버린 P6를 바이닐 레코드를 듣는 데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LP 레코드가 상용화되고 뉴트로 트렌드로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턴테이블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 전축이라 불리던, 또 고급 오디오라 일컬어지던 제품군들에는 기기와 기기를 연결하는 라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트렌드에 부응하며 턴테이블들도 종종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하여 출시되고 있다.
검색에 들어갔다. 어떤 제품이 이 스피커와 가장 잘 어울릴까에 초점을 두고 말이다. 현재 내가 가진 플레이어는 장난감 수준에 불과했기에 좀 더 전문적인 제품을 구매하고 싶었다. 블루투스 내장형 제품이 몇 개 눈에 띄었다. 두세 개 제품은 그 기능만 있을 뿐, 지금 집에 놓인 플레이어와 별 다를 게 없이 조악했다. 그럼 이 기능도 가지고 있으며, 추후 재산이 늘어 넓은 집으로 이사할 때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고, 어느 정도의 가격대로 마련할 수 있을까? 선택은 의외로 단순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직 블루투스 기능을 가진 턴테이블 제품군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티악(Teac)에서 생산한 TN-400BT을 선택했다. 가격은 70만 원 중반대로 형성되어 있다. 새로운 걸 집에 들이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아내를 설득해야만 했다. 지금 가진 걸 어떻게든 처분하겠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활용하니 공간 점유율도 아주 낮다, 하는 식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말이다. 결국 ‘한 해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정도로 포장하며 나는 이걸 손에 쥐었다.
이제 완전한 새로움을 만끽하는 주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바이닐 레코드는 주말 아침에 직접 내린 커피 한 잔과 함께 즐긴다. 티악 TN-400BT와 베오플레이 P6의 조합은 꽤 근사했다. 스피커를 자유자재로 내가 원하는 공간에 둘 수 있으니 두 귀를 충만하게 채우는 사운드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식탁에 앉아 있을 땐 저 뒤편에 스피커를 위치시키고, 거실 소파에 자리할 땐 또 스피커를 옮긴다. 지저분하던 기기 뒤편의 라인들도 사라졌으니 말끔하다. 칸칸이 쌓아 두었던 레코드 판들도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 대략 100여 장 남짓하게 모은 바이닐 레코드가 있었다. 이참에 바이닐 레코드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장식장도 하나 마련했다.
그래서 나의 주말은, 아니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음악으로 꽤 충만해졌다. 물론 이 정도의 기기가 오디오 마니아들에게는 코웃음 칠 만큼 조악한 수준이란 걸 충분히 인지한다. 그럼에도 삶이란 건 자신의 취향과 만족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 가지 않던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천명했던 ‘소확행’의 삶.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필자는 두 개의 기기를 마련함으로써 꽤 진중하게 그걸 느끼고 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내게 있어 또 다른 행복은 음악과 함께하는 한 잔의 커피다. 이제 커피는 우리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어 버린 음료다(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가까이 하지 않는 이들도 많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좋다는 커피를 여기저기서 많이 접해 보았다. 근래에 어떤 고급스러운 카페에 들러 바리스타에게 오늘은 어떤 커피가 좋으냐고 물었다. ‘과테말라 게이샤’가 들어왔다며 추천해 줬다. 이곳은 본시 드립 커피가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게이샤는 얼마냐고 미리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2만 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한 잔 달라고 했다. 적당한 산미 위로 풍기는 그윽한 커피 내음이 기가 막히긴 했다.
앞서 음악을 이야기하다 커피 이야기로 전환되었다. 필자는 이 둘 사이가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로든 여가로든 어떤 공간에 들르더라도 커피와 음악은 마치 짐 자무시의 영화 ‘커피와 담배’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교집합을 형성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곁에는 고품질의 커피가 소리소문 없이 다가와 자리해 있다. 커피 믹스가 최고라 생각하던 시절을 벗어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한국의 커피 문화도 굉장히 발전했다. 동네마다 커피 잘하는 집이 즐비하다. 프랜차이즈에서 벗어나 슬로 커피를 추구하는, 갓 볶아 낸 원두를 소비자가 선별하고, 기다림을 참아 내고서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카페를 ‘커피’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과거에는 커피가 맛난 곳을 찾아 다녔다면, 이제는 커피 맛은 기본이고 공간이 좋은 카페를 찾아 나서기에 하는 말이다.
음악과 커피외에도 동시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대변하는 아이템은 또 뭐가 있을까? 그건 바로 음식과 페어링되는 술이 아닐까 싶다. 위스키의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던 몇 년 전에는 싱글 몰트가 굉장한 트렌드였다. 패션 스타일에 있어 클래식 수트 차림의 남성들에게 싱글 몰트는 그들의 나이트 라이프를 지탱하는 버팀목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브랜드 맥주가 아닌 수제 맥주 시대가 도래했다. ‘크래프트 비어’라고 칭하는 맥주들 말이다. 어떤 재료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따라 아주 다른 맛을 내는 이 수제 맥주 트렌드는 전국 각지에 맥주 브루어리가 설립되는 기회를 만들어 냈다. 이 모든 술들이 기존부터 넘쳐나던 기성 주종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번 주말, 나는 내가 내린 커피와 블루투스가 주는 자유로움으로 아침을 즐길 예정이다. 저녁에는 내추럴 와인 한 잔으로 꽤 근사한 무드를 만들어 볼 테다. 여기에도 음악은 필수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5호 (19.02.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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