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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트렌드 마리아주-음악, 커피 그리고 술

입력 : 
2019-01-30 11:45:09
수정 : 
2019-01-30 13: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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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삶 속에서 우리는 여유를 찾아 헤맨다. 어떤 이는 음악 속에서, 또 어떤 이는 커피 속에서, 또 어떤 이는 술에서. 시대별로 유행하는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금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속에서 떠오르는 아이템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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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앞두고 근사한 선물을 받았다. 덴마크 국적의 브랜드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의 블루투스 스피커 베오플레이 P6다. 익히 알고 있듯 뱅앤올룹슨은 휘게(Hygge: 덴마크어로 편안함, 안락함)의 나라에서 탄생한 럭셔리 오디오 브랜드다. 과거부터 이 브랜드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내세워 호화로운 사운드, 영상 기기를 선보여 왔다. 그래서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싶어 하는 제품을 갖춘 브랜드이기도 하다. 뱅앤올룹슨은 고급 오디오 스피커 및 기기를 오랫동안 만들어 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블루투스 시스템에 기반한 소형 스피커 및 헤드셋을 주력으로 어필하고 있다. 그 라인이 바로 베오플레이(Beoplay) 시리즈다. 내가 선물 받은 제품이 대략 얼마 정도 하는지 검색해 봤다. 인터넷 최저가로 약 50만 원 초반 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기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의 제품인 것은 확실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즉 집에는 이미 몇 개의 블루투스 스피커가 존재한다. 물론 한두 개는 장식장에서 먼지를 축적하고 있고, 또 한두 개의 포터블 소형 스피커는 서랍 속에 파묻혀 잠자고 있다. 뒤져보니 IoT 기반의 블루투스 스피커가 박스도 뜯기지 않은 채 구석에 나뒹굴고 있기도 했다. 이 말인 즉, 개인적으로 블루투스 스피커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사용해 보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한 모금의 커피와 한 잔의 와인을 즐기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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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투스의 자유

과거 블루투스 스피커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고가의 제품은 아니지만 줄곧 구매해 사용했다. 나름 매거진을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아주 비싼 제품도 촬영을 핑계로 만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게 그것들이 쥐어졌을 때 빛을 발하지는 않았다.

뱅앤올룹슨의 P6를 선물로 받으며 이걸 좀 제대로 사용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레코드 플레이어였다. 나름 트렌드로 도래한 유행을 시시때때 받아들이는 소비 지향적 성향인지라, 더욱이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기에 신혼집을 꾸미며 1순위로 장만해야 할 목록에 있던 것이 바로 레코드 플레이어였다. 물론 아내의 눈총으로 좋은 제품을 마련하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었다.

우리 집은 오래된 낡고 작은 평형의 아파트다. 조악한 내장 스피커가 탑재된 플레이어였지만, 거실 한편에 있었던 것이다. 스피커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으면 음악을 들을 때 그 방향에 있지 않으면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 집이 딱 그랬다. 층간 소음을 신경 쓰는 편이라 베이스음을 아주 키우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싸구려 플레이어와 스피커를 통해 재생되는 사운드는 굉장히 일방향으로 흐른다. 이때다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 중 하나가 되어 버린 P6를 바이닐 레코드를 듣는 데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LP 레코드가 상용화되고 뉴트로 트렌드로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턴테이블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 전축이라 불리던, 또 고급 오디오라 일컬어지던 제품군들에는 기기와 기기를 연결하는 라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트렌드에 부응하며 턴테이블들도 종종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하여 출시되고 있다.

검색에 들어갔다. 어떤 제품이 이 스피커와 가장 잘 어울릴까에 초점을 두고 말이다. 현재 내가 가진 플레이어는 장난감 수준에 불과했기에 좀 더 전문적인 제품을 구매하고 싶었다. 블루투스 내장형 제품이 몇 개 눈에 띄었다. 두세 개 제품은 그 기능만 있을 뿐, 지금 집에 놓인 플레이어와 별 다를 게 없이 조악했다. 그럼 이 기능도 가지고 있으며, 추후 재산이 늘어 넓은 집으로 이사할 때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고, 어느 정도의 가격대로 마련할 수 있을까? 선택은 의외로 단순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직 블루투스 기능을 가진 턴테이블 제품군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티악(Teac)에서 생산한 TN-400BT을 선택했다. 가격은 70만 원 중반대로 형성되어 있다. 새로운 걸 집에 들이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아내를 설득해야만 했다. 지금 가진 걸 어떻게든 처분하겠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활용하니 공간 점유율도 아주 낮다, 하는 식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말이다. 결국 ‘한 해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정도로 포장하며 나는 이걸 손에 쥐었다.

이제 완전한 새로움을 만끽하는 주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바이닐 레코드는 주말 아침에 직접 내린 커피 한 잔과 함께 즐긴다. 티악 TN-400BT와 베오플레이 P6의 조합은 꽤 근사했다. 스피커를 자유자재로 내가 원하는 공간에 둘 수 있으니 두 귀를 충만하게 채우는 사운드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식탁에 앉아 있을 땐 저 뒤편에 스피커를 위치시키고, 거실 소파에 자리할 땐 또 스피커를 옮긴다. 지저분하던 기기 뒤편의 라인들도 사라졌으니 말끔하다. 칸칸이 쌓아 두었던 레코드 판들도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 대략 100여 장 남짓하게 모은 바이닐 레코드가 있었다. 이참에 바이닐 레코드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장식장도 하나 마련했다.

그래서 나의 주말은, 아니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음악으로 꽤 충만해졌다. 물론 이 정도의 기기가 오디오 마니아들에게는 코웃음 칠 만큼 조악한 수준이란 걸 충분히 인지한다. 그럼에도 삶이란 건 자신의 취향과 만족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 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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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내리는 커피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천명했던 ‘소확행’의 삶.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필자는 두 개의 기기를 마련함으로써 꽤 진중하게 그걸 느끼고 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내게 있어 또 다른 행복은 음악과 함께하는 한 잔의 커피다. 이제 커피는 우리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어 버린 음료다(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가까이 하지 않는 이들도 많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좋다는 커피를 여기저기서 많이 접해 보았다. 근래에 어떤 고급스러운 카페에 들러 바리스타에게 오늘은 어떤 커피가 좋으냐고 물었다. ‘과테말라 게이샤’가 들어왔다며 추천해 줬다. 이곳은 본시 드립 커피가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게이샤는 얼마냐고 미리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2만 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한 잔 달라고 했다. 적당한 산미 위로 풍기는 그윽한 커피 내음이 기가 막히긴 했다.

앞서 음악을 이야기하다 커피 이야기로 전환되었다. 필자는 이 둘 사이가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로든 여가로든 어떤 공간에 들르더라도 커피와 음악은 마치 짐 자무시의 영화 ‘커피와 담배’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교집합을 형성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곁에는 고품질의 커피가 소리소문 없이 다가와 자리해 있다. 커피 믹스가 최고라 생각하던 시절을 벗어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한국의 커피 문화도 굉장히 발전했다. 동네마다 커피 잘하는 집이 즐비하다. 프랜차이즈에서 벗어나 슬로 커피를 추구하는, 갓 볶아 낸 원두를 소비자가 선별하고, 기다림을 참아 내고서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 카페를 ‘커피’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과거에는 커피가 맛난 곳을 찾아 다녔다면, 이제는 커피 맛은 기본이고 공간이 좋은 카페를 찾아 나서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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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논함에 있어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공간(Space)’이기도 하다. 현대 도시의 모던함을 결정하는 것 역시 공간이다. 어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천차만별이니까. 과거의 카페는 누군가와의 소통을 위해 잠시 임대하는 공간 정도로 이해됐다. 그러니 커피는 그 공간을 대여하기 위한 소품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카페는 내려진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내린 커피를 마시는 곳으로 정의할 만하다. 그러니까 ‘공간이 내린 커피’를 마시는 곳이 카페라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상향 평준화된 커피 맛을 근간으로, 그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서울 내부에도 우후죽순 이런 공간형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다. 심지어 올해 한국에 정식 론칭하게 될, 전 세계적으로 스페셜티 커피 트렌드를 선도했던 ‘블루 보틀(Blue Bottle)’이 자리할 성수동의 공간도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블루 보틀이 한국 1호점을 성수동으로 선택한 것 역시 공간이 주는 중요성을 인지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지금의 성수동은 뉴트로 트렌드를 담뿍 담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지역으로 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공간의 커피는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로 퍼져 가고 있다. 속초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스폿이 생겨났고, 부산도 그렇다. 심지어 제주도에도 좋은 음악으로 가득 찬 멋진 공간에서 내려진 커피들이 즐비하다. 머신으로 추출된 에스프레소 기반의 예술적 커피도 좋고, 원두의 숨결을 살려내며 여과된 슬로 커피도 좋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한 잔의 커피와 함께 급변하고 있음을 이 공간들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으니까. 물론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커피와의 조화도 여전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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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맛 그대로, 내추럴 와인

음악과 커피외에도 동시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대변하는 아이템은 또 뭐가 있을까? 그건 바로 음식과 페어링되는 술이 아닐까 싶다. 위스키의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던 몇 년 전에는 싱글 몰트가 굉장한 트렌드였다. 패션 스타일에 있어 클래식 수트 차림의 남성들에게 싱글 몰트는 그들의 나이트 라이프를 지탱하는 버팀목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브랜드 맥주가 아닌 수제 맥주 시대가 도래했다. ‘크래프트 비어’라고 칭하는 맥주들 말이다. 어떤 재료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따라 아주 다른 맛을 내는 이 수제 맥주 트렌드는 전국 각지에 맥주 브루어리가 설립되는 기회를 만들어 냈다. 이 모든 술들이 기존부터 넘쳐나던 기성 주종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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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떠오른 가장 최신의 술 트렌드를 꼽으라면 와인 중 ‘내추럴 와인’이라 말할 수 있다. 내추럴 와인은 지속 가능한 재배 방식을 따른 유기농 포도를 사용하고, 일부 와인에 소량의 아황산염을 넣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빼거나 더하지 않고 만든 와인을 뜻한다. 즉, 고전적 방식 그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포도즙을 발효시켜 와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와인 산업은 현대에 들어 점차 산업화되고, 인공적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다. 이런 와인 양조에 반하여 자연 그대로의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생겨나면서 내추럴 와인 생산량이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동시에 이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들에서 내추럴 와인이 서브되는 추세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내추럴 와인이 트렌드로 대두된 데에는 현대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이 자연의 원형을 그대로 즐기려 하는, 그래서 더욱 더 그것이 건강한 맛이라고 믿게 되는 것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근래 내추럴 와인을 맛보았다. 사실 어찌 보면 이것의 맛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와인이 아닌 신맛이 강한 과일주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분명 내추럴 와인 트렌드를 강하게 부정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어쩌면 내추럴 와인의 반란은 대단히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로 인지되던 기존 와인의 품격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렌드로의 부상은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레스케이프 호텔 내의 레스토랑 라망 시크레나 녹사평 역 부근의 슬록 같은 바에 들르면 내추럴 와인을 가볍고 즐겁게 마실 수 있다. 굳이 이 같은 공간을 찾지 않더라도 내추럴 와인을 구입할 수 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주말, 나는 내가 내린 커피와 블루투스가 주는 자유로움으로 아침을 즐길 예정이다. 저녁에는 내추럴 와인 한 잔으로 꽤 근사한 무드를 만들어 볼 테다. 여기에도 음악은 필수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5호 (19.02.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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