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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사회적 가치 경영과 기업 성과 | SK하이닉스 사회적 가치 7조원 창출
공유인프라·DBL경영(Double Bottom-Line)…비즈니스 혁신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9.01.25 10:16:57
  • 최종수정 : 2019.01.29 11:31:39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회적 가치 화두를 꺼내 들자 재계에서는 온갖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하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할 상황에 갑자기 ‘돈 버는 것만이 기업의 목적이 아니다’라는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회장 생각은 달랐다. 사회적 가치를 얼마든지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기업 유무형 자산을 사회적 가치 창출 인프라로 활용하는 ‘공유 인프라’,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DBL(Double Bottom Line) 경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겠다고 말한다.

SK에너지는 공유 인프라 모델로 주유소를 활용한 택배 서비스 ‘홈픽’을 선보였다.

SK에너지는 공유 인프라 모델로 주유소를 활용한 택배 서비스 ‘홈픽’을 선보였다.



▶공유 인프라 확충 속도

▷주유소 O2O 플랫폼으로 ‘물류 허브화’

공유 인프라의 대표적인 사례가 ‘주유소 O2O(온오프라인 연계) 플랫폼’이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지난해 6월 양 사 주유소를 활용한 택배 서비스 사업 ‘홈픽’을 시작했다.

기업과 개인이 아닌 개인과 개인 간(C2C) 택배 운송이 핵심이다. 네이버, 카카오톡, SK텔레콤 인공지능 서비스 ‘누구’, CJ대한통운 애플리케이션(앱), 홈픽 홈페이지나 앱으로 택배를 접수하면 택배 집화기사 ‘피커’가 1시간 내 집으로 찾아간다. 이후 택배를 450여개 거점 주유소로 운반한다. 주유소에 보관된 택배는 CJ대한통운이 배송지까지 운송하는 시스템이다.

‘언제 어디서든 1시간 이내 방문 픽업’ 전략을 내세운 덕분에 인기가 뜨겁다. 하루 평균 3000건 이상 주문이 이뤄져 월 이용건수만 5만건을 넘는다. 경쟁사와 손을 잡은 데다 전국 곳곳에 퍼진 주유소를 소비자 생활 인프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SK에너지는 여세를 몰아 주유소 기반 스마트 보관함 서비스 ‘큐부(QBoo)’까지 내놨다. 큐부는 ‘큐브(스마트 보관함)야 부탁해’의 줄임말. 주유소 내 무인택배 보관 서비스를 이용하고, 중고물품을 거래할 때도 상대방과 직접 만나지 않고 거래가 가능한 서비스다. 또 세탁소가 문을 열지 않은 시간에도 세탁물을 맡기고, 개인 물품을 오랜 기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주유소 입장에서는 고객 증가에 따른 매출 확대는 물론이고 스마트 보관함을 광고 플랫폼으로 활용해 추가 수익 창출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큐부 서비스에는 여러 스타트업이 함께 참여해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생태계 조성’이란 의미도 더했다.

스타트업 ‘스마트큐브’는 스마트 보관함 제작, 소프트웨어 개발과 시스템 운영을 맡는다. ‘리화이트’는 세탁 서비스, ‘마타주’는 물건 보관 서비스를 각각 큐부와 연계해 운영한다. 중고품 거래 사이트 ‘중고나라’는 중고물품 거래 서비스를 맡는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서울 20여개 주유소에서 큐부 서비스를 시작한 후 거점 주유소를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홈픽에 이어 큐부 서비스로 ‘주유소 물류 허브화’가 속도를 내는 중이다. 공유 인프라 조성과 동시에 스타트업 상생 효과까지 내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SK 측 입장이다.

SK에너지는 공유 인프라를 위해 우정사업본부와도 손을 잡았다. 주유소와 우체국뿐 아니라 전기·수소차 충전소, 택배 거점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했다. 우체국 업무를 기존 주유소에 결합하거나 우체국 건물에 주유소 기능을 더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른바 ‘미래형 복합 네트워크’ 개발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SK이노베이션은 2017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DJSI 월드 기업에 선정됐다. DJSI는 기업의 경제, 사회, 환경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지속 가능성을 측정하는 세계적 권위의 기업평가지수다. 미국 금융정보회사 S&P 다우존스 인덱스와 스위스 투자평가사 로베코샘이 전 세계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상위 2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SK하이닉스도 ‘공유 인프라 포털’을 만들어 반도체 산업 생태계 육성에 나섰다.

공유 인프라 포털은 SK하이닉스가 30년 이상 축적한 기술, 노하우를 협력사에 전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모아놓은 곳이다. ‘반도체 아카데미’ ‘분석·측정지원센터(장비·부품·소재의 개발 공급 지원)’ 등으로 구성됐다. 협력사들은 회원가입만 하면 반도체 아카데미에서 제조 공정, 설계, 통계 등 120여개 온라인 교육 과정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특히 기술 협력 플랫폼인 분석·측정지원센터 효과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협력사 요청을 받아 SK하이닉스가 자사의 최신 장비, 노하우를 이용해 각종 측정, 분석을 해주고 데이터도 제공한다. “분석·측정지원센터를 통해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협력사들은 장비, 부품 공급에 소요되는 시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비즈니스 성과를 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SK하이닉스 측 얘기다.

“한때 기업 사회공헌활동은 단순한 기부 개념에 그쳤지만 점차 CSV(공유가치창출), SVM(사회가치경영)으로 바뀌는 중이다. SK그룹의 사회가치경영도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할 때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개념으로 의미가 크다. ‘착한 기업’ 이미지로 마케팅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제품에서 환경오염 물질이 나오는 등 비난 여론이 커질 때도 사회가치경영이 위기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배종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분석이다.

▶DBL 경영도 성과

▷사회적 가치 측정 회계 시스템 도입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반영하는 ‘DBL 경영’도 속속 효과를 내는 중이다. 최 회장은 “현재 회계는 경제적 가치만을 계산하는 ‘싱글보텀라인’이지만 앞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 성과도 표시하는 ‘더블보텀라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2017년부터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회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 경제적 이익을 계산한 기존 회계장부에 사회적 가치를 측정한 재무제표를 추가했다. 일례로 SK하이닉스가 전기를 아끼는 저전력 반도체를 생산하거나 장애인 고용을 늘릴 경우 단순한 영업이익이 아닌 ‘사회적 이익’으로 계산한다. 물론 이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거나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해 과태료를 부과받을 경우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이런 사회적 이익과 비용을 모두 반영해 새로운 형태의 손익계산서를 만드는 방식이다.

SK하이닉스 지속경영보고서에 따르면 DBL 도입 첫해인 2017년 7조866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에너지 소비, 폐기물 온실가스 배출 절감 등 ‘비즈니스 사회 성과’에서만 5586억원의 가치를 창출해 사회적 가치가 충분히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배종태 교수는 “SK그룹이 계열사 평가에 사회적 가치까지 반영하는 것은 일종의 실험이지만 의미가 크다. 사회적 가치 측정이 어려울 뿐 사실 대부분 기업이 이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기업이 1~2년 사업하고 문 닫을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가능경영을 하려면 사회적 가치가 중요한 만큼 머지않아 중소기업까지 사회적 가치 도입이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SK그룹이 공유 인프라 창출, DBL 경영으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꿈꾸지만 최 회장은 아직 욕심이 많다. 궁극적 목표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처럼 사회적 가치가 돈으로 교환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로 돈도 벌 수 있다면 수많은 기업이 동참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다만 SK의 사회적 기업 경영이 계속 이어질지 우려하는 시각도 적잖다.

“취지는 좋지만 SK 사회적 활동이 오랜 기간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지금이야 SK그룹 실적이 좋지만 향후 핵심 계열사 이익이 줄어들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사회적 경영 예산부터 줄일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기업마다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추진해왔지만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장 분석은 새겨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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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3호 (2019.01.23~2019.0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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