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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SK그룹 회장)은 왜 사회적 가치(Social Value)에 올인하나?

  • 명순영, 김기진 기자
  • 입력 : 2019.01.25 10:48:51
  • 최종수정 : 2019.01.29 11:30:27
“첨단산업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에서도 혁신성장해야 한다.”

지난 1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 말이다. 그는 돈을 벌어 과실을 분배한다는 원칙보다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추구가 국민에게 ‘다이렉트’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고 했다.

국내 대기업은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남다른 수준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해 핵심성과지표(KPI) 가운데 SV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며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이익 추구가 기업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는 현실에서 착한 기업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최태원 회장의 실험을 재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SV 창출 성과, 50%까지 인사고과 반영

착한 기업으로 환골탈태하는 SK 실험


“첨단산업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에서도 혁신성장을 해야 한다.” (1월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의 대화)

“행복의 척도는 사회적 가치…함께 만들어가자.” (2019년 SK그룹 신년사)

새해를 맞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추구 행보가 더욱 빨라졌다.

웬만한 국내 기업 가운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언급하지 않는 곳이 드물다. 하지만 SK그룹의 사회공헌활동을 비슷한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최 회장이 서운해할지 모르겠다.

최 회장이 강조하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기존 통념을 확실히 깬다. 사회로부터 돈을 벌었으니 이익 일부분을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수준을 크게 넘어선다. 그는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국가 경제도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이윤 추구를 기업 목적으로 가르쳤던 ‘경영학 원론’을 벗어난 얘기로까지 들린다. 이런 철학을 담은 최 회장의 발언은 셀 수 없이 많다.

지난 2017년 8월 ‘제1회 이천포럼’에서의 강연이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생물학적 비유를 동원해 ‘이익’과 ‘사회적 가치’의 관계를 설명했다. “근육만 키우다가는 관절이 망가지는 것처럼, 기업이 돈만 많이 벌려고 하면 관절의 부담이 커지니 관절운동을 하자는 게 우리가 사회 혁신을 하자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과거에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라고 간주했으나 이제는 기업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만 ‘서든데스(sudden death)’를 피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5월 열린 ‘2018 상하이포럼’에서 축사를 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관심을 모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5월 열린 ‘2018 상하이포럼’에서 축사를 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관심을 모았다.



▶최종현 선대 회장부터 사회적 역할 강조

인재 양성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로 진화

지난해에는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이해 2018년을 ‘뉴SK’의 원년으로 만들겠다 선포하며 다시 한 번 사회적 가치 창출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가치는 사회와 고객으로부터 무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일 뿐 아니라 기업 전체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 요소다. 이를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신년사에도 사회적 가치 전도사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나타냈다. 그는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해 핵심성과지표(KPI) 가운데 SV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재무 실적을 주로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일반적인 재계 관행을 깬 파격적인 조치로 평가받는다. 최 회장은 “완벽한 평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다”며 사회적 가치 추구 전략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일관된 메시지는 ‘사회(social)’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5일 대기업 총수·중견기업인 130여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2019 기업인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최 회장은 “유럽은 사회적 기업이 고용 창출의 6.5%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협동조합 등 모든 것을 포함하더라도 1.4%에 불과하다”며 “사회적 경제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 있는 분야”라고도 했다. 이처럼 자산 규모 192조원의 그룹 회장이 사회적 가치에 올인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흔치 않다.

최 회장이 주창하는 사회적 가치의 역사는 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종현 선대 회장은 ‘돈 버는 것만이 기업의 목적이 아니다’라는 철학이 확고했던 기업인으로 꼽힌다. “우리는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며, 기업의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었다”는 그의 평소 언급에 이 같은 철학이 담겼다.

최종현 회장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인재 양성이었다. 그는 1972년 서해개발(현 SK임업) 설립, 1973년 MBC 장학퀴즈 후원,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등 청년인재 양성에 공을 들였다. 국가를 이끌어갈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대였던 만큼 청년인재 양성이 주가 된 것이다.

최종현 회장의 인재 양성 노력은 최태원 회장에 이르러 사회적 가치 추구로 진화 발전했다. 구체적인 시점은 회장 취임 이후 6년 만인 2004년이다. 그는 이때 “그동안 SK 경영의 최우선 목표였던 이윤 극대화라는 경영 이념은 다원화되고 복잡한 경영 환경 변화에 맞게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객·구성원·주주·사회 등 기업 이해관계자의 가치 추구라는 개념을 꺼내 들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일 뿐 아니라,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처음 언급한 이후 10년 뒤인 2014년, 옥중 집필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 책을 통해 개념을 더욱 명확히 했다. 그는 저서에서 “적정 기술(이윤만이 목적이 아닌 사회에 기여하는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이 정부, 비영리 조직보다 더 효율적이다. 이들이 사회적 기업과 긴밀히 협력해 ‘합동작전’을 편다면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이런 철학을 토대로 2017년 주요 계열사는 ‘기업 핵심 가치’로 정관에 적혀 있던 ‘이윤 창출’을 빼고 ‘사회적 가치 창출’을 적시했다.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추구는 적극적으로 시장을 키우는 개념이다. SK그룹 측은 기존 시장과 고객을 놓고 서로 뺏거나 뺏기는 제로섬(zero-sum)게임이 아니라 다양한 시장 플레이어들과 함께 성장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혁신적인 경영 전략이라 강조한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두 힘을 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얘기다.

최 회장의 구체적인 방법론은 3가지다. ▲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보텀라인(DBL·Double Bottom Line) 경영’ ▲ 기업의 유·무형 자산을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인프라로 활용하는 ‘공유 인프라’ ▲ 사회적 가치 창출 전문가와 함께 협력하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으로 요약된다.

최 회장이 구체적으로 방법론을 설파하고 나섰으나 초기에는 SK 직원조차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 사업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거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게 기업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있었다. 일시적인 시혜적 접근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SK 계열사 각각의 핵심 사업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안을 앞다퉈 고민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실천’ 성과가 도드라지게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말 사회적가치추진단을 꾸리고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뒀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직접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사업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환경보호 인식 확산’에 초점을 맞췄는데 올해는 ‘환경보호 실천’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다.

SK텔레콤은 사회적 가치 창출 업무를 전담하던 조직 ‘오픈콜라보센터’를 ‘SV이노베이션센터’로 바꿔 실행력을 높인다. 지난해 전국 1000여개 대리점과 200여개 와이파이 센서를 통해 미세먼지 데이터를 제공하는 미세먼지 지도 서비스 ‘에브리에어’를 내놓는 성과를 냈다. 올해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기술 등 정보통신기술 인프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도체 부문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SK하이닉스는 공유 인프라 포털을 통해 협력사에 무상 또는 저렴한 금액으로 반도체 지식을 전수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전담하는 임원급 조직 ‘지속경영추진담당’을 신설했다.

회사 내부 자산을 외부와 공유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전국 3600여개 SK주유소를 O2O 서비스의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거점 주유소의 ‘로컬 물류 허브화’를 추진한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경쟁사인 GS칼텍스와도 손을 잡았다. 두 회사는 주유소 자산 공유를 통한 택배 서비스 ‘홈픽’을 선보였다.

SK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한 자본 형성에도 힘쓰고 있다.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제도를 통해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한 뒤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7년 사회성과인센티브 제도에 참여한 130개 기업이 한 해 동안 일자리 창출, 사회 서비스 제공, 환경 문제 해결, 생태계 문제 해결 등 4개 부문에서 만들어낸 사회 성과가 32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급된 사회성과인센티브는 73억원에 달한다.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경영’은 학계와 국제사회에서도 新 경영 전략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최근 학계에서는 최태원 회장처럼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CEO가 조직의 재무 성과까지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BCG(보스턴컨설팅그룹)의 한스 파울 뷔르크너 회장이 지난 4월 중국 보아오포럼에서 한 발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사회경제적 약자 배려·환경보호 등 ‘착한 경영’으로 사회적 영향(Total Societal Impact) 점수가 상위 10% 이내 속한 기업은 중간 그룹(50%)에 비해 기업가치와 마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이 기업가치와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연구 결과인 셈이다.

세계은행 부총재 출신으로 중국 경제학계 거두로 꼽히는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 역시 “사회적 가치 경영은 중국의 경제정책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참고할 만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정현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사회공헌팀장

사회적 가치가 결국 경제적 가치로 전환

SK그룹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그 어떤 기업보다 공을 들여왔다. SK그룹 내에서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정현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사회공헌팀장(전무)에게 SK그룹이 사회공헌에 공들이는 이유,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Q SK그룹이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故 최종현 선대 회장 영향이 컸다. 최종현 회장은 “기업활동은 사회 속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날 때부터 사회에 빚을 진다는 뜻이다.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선심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빚진 것을 갚는 것이다. 더불어 사회가 성장하는 만큼 기업이 성장한다”고 늘상 강조했다. 이 철학이 경영 방식에 많이 반영됐다.

Q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 사회적 가치와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

A 시각의 문제인 것 같다. 짧게 보면 두 가지 목표는 상충된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자원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재무제표에 마이너스다. 그러나 길게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고 혁신에 속도가 붙는다. 고객과의 관계도 좋아진다. 결국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와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Q 현재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지난 몇 년간 많이 발전했다. 수도 많이 늘었고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보완할 점이 여전히 많다. 유럽 등 앞서나가는 지역에 비해 사회적 기업 수나 비율이 굉장히 낮다. 역할도 제한적이다.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가 유럽은 6.5%나 되는데 한국은 1.4%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곳도 상당수다. 다양성에서도 다소 뒤처진다. 현재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곳 상당수는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데 몰두한다. 그런데 일자리 창출 외에도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할 수도 있고 기술 발전을 이끌어나갈 수도 있다. 아직 국내에는 이 같은 활동으로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곳이 소수에 불과하다.

Q SK그룹의 사회적 기업 지원활동이 단순 기부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원받은 기업이 자력으로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A 우선 단순히 착한 기업에 돈을 기부하는 데에 그치지 않도록 지원 대상을 신중하게 선정한다.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만들어내고 있으며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능력이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본 뒤 지원을 결정한다. 카이스트와 협업해 MBA 과정을 만드는 등 사회적 기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도 힘쓴다.

Q 앞으로 계획은.

A 지금까지는 SK그룹이 자체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주력했다. 앞으로는 다른 기업도 여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SK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 중 사회적 기업이 강점을 보이는 영역이 있다면 협업하는 것을 권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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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명순영(팀장)·김경민·노승욱·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3호 (2019.01.23~2019.0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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