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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
영혼불멸과 사후세계는 인간 문명의 대원칙

  • 입력 : 2019.01.28 09:26:06
  • 최종수정 : 2019.01.28 16:51:55
‘관에서 일어나는 파리나타’. 윌리엄 블레이크, 단테 ‘신곡’ 인페르노 제10곡 삽화, 영국 대영박물관.

‘관에서 일어나는 파리나타’. 윌리엄 블레이크, 단테 ‘신곡’ 인페르노 제10곡 삽화, 영국 대영박물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거대한 ‘디스’ 성벽을 지나 하부지옥의 시작인 여섯 번째 둘레로 내려간다. 여섯 번째 둘레는 수많은 무덤으로 가득 찬 광활한 평원이다. 디스 성벽은 ‘상부지옥’으로부터 구별된 ‘하부지옥’의 시작이다.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둘레가 상부지옥이고, 여섯 번째부터 아홉 번째 둘레가 하부지옥이다. 다섯 번째 둘레와 여섯 번째 둘레 사이에 상부지옥과 하부지옥을 가르는 디스 성벽이 있다.

지옥은 역삼각형 구조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그 세 부분은 ‘인페르노’ 제1곡에서 단테의 하강을 막는 세 마리 짐승으로 등장한다. 세 짐승은 암늑대, 사자, 그리고 표범이다.

암늑대는 ‘무절제’의 상징이다. 무절제의 죄는 색욕, 식탐, 인색과 방탕, 그리고 분노와 우울이다. 무절제의 죄를 지은 사람은 두 번째~다섯 번째 둘레를 차지하는 상부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다. 무절제는 가장 약한 죄다. 무절제는 스스로 절제하지 못해 자신에게 해를 끼친 ‘1인칭 죄’다. 사자는 ‘폭력’을 상징한다. 폭력의 죄를 지은 자들은 일곱 번째 둘레에서 형벌을 받는다. 무절제보다 심한 죄가 폭력이다. 폭력은 가까운 사람에게 행사하는 ‘2인칭 죄’다. 이 폭력의 대상은 이웃, 신, 혹은 신의 소유물로서 ‘자기 자신’이다. ‘표범’은 ‘사기와 배신’을 상징한다. 사기는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가하는 행위로 ‘3인칭 죄’다. 사기와 배신의 죄를 저지른 자들은 여덟~아홉 번째 둘레에서 형벌을 받는다.

디스 성벽은 무절제의 죄로 형벌을 받는 죄인과 폭력의 죄로 형벌을 받는 영혼 사이에 위치한 경계다. 단테는 디스 성벽을 지나 여섯 번째 둘레에서 무절제의 죄도 아니고 폭력의 죄도 아닌 죄를 지어 벌을 받는 죄인들을 소개한다. 이곳에서 형벌을 받는 죄인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인 ‘영혼불멸’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이것이다. 인간만이 언젠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순간적인 삶을 영원으로 만들기 위해 문명과 문화를 구축했다. 다른 동물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거나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미지의 장소로 돌아가 죽기도 한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죽음에 관한 의례와 죽음에 관한 기억을 통해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다. 30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유인원과는 달리 정교한 장례의식을 거행했다. 호모사피엔스는 사후세계 존재를 믿고 거대한 건축물을 지었다. 영국의 스톤헨지, 이집트의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같은 구조물은 인간의 몸은 유한하지만 영혼은 불멸할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사후세계와 심판은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일 뿐 아니라 단테 ‘신곡’의 기본 틀이다. ‘신곡’은 사후세계를 전제한다. 생전에 죄를 저지르는 인간은 사후에 그것에 합당한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논리는 ‘신곡’ 이야기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영혼불멸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교 근간을 흔들었을 뿐 아니라 단테 ‘신곡’의 핵심 사상을 거부한 자들이다.

단테는 제10곡에서 사후세계 존재를 거부한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와 그의 신봉자인 피렌체의 기벨린당 정치가 파리나타를 소개한다. 1세기 후반 바울이란 학자를 통해 ‘그리스도 복음’이 로마와 아테네 같은 서방세계에 전파됐다. 특히 2세기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세운다. 그들은 이단과의 논쟁을 통해 정체성을 서서히 만들어갔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는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유대교가 이단이었다. 또한 외부에서 그리스도교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했던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낙인찍었다. 영지주의는 예수의 인성(人性)을 믿지 않는 분파다. 2세기 교부 이레나이우스는 ‘이단 논박’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오서독스(orthodox)’, 즉 ‘정통’이라고 불렀고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불렀다.

‘이단’이란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 ‘헤러시(heresy)’는 ‘선택’ 혹은 ‘선택된 것’이란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단어 ‘하이레시스’에서 유래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이념을 달리하는 집단을 선택해 일방적으로 ‘이단’이란 오명을 붙여 추방했다. 기원후 4세기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소아시아 콘스탄티노플로 옮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리키니우스 황제와 함께 그리스도교를 ‘미신의 종교’에서 ‘허용된 종교’ 자격을 주는 동시에 로마제국 내에서 신앙활동을 허용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면서 대제사장으로 로마제국 내의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회의를 소집하고 황제의 권위로 정통 교리를 수호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디스 성문을 지나 광대한 평원으로 들어선다. 그곳에는 수많은 관이 있고 뚜껑이 모두 열려 있다. 베르길리우스가 말한다.

“그 영혼들이 저 위에 남겨진 육체와 함께 여호사밧으로부터 돌아올 때, 모든 관이 닫혀 봉해질 것이다.” (제10곡 1~12행)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위치한 계곡으로,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장소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년)’인들이다. 에피쿠로스는 그리스 철학자로 고통과 욕심이 없는 상태인 ‘평정심’을 최선으로 여겼다. 에피쿠로스는 에게해 사모스라는 그리스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테네로 이주해 그리스 철학을 공부하다 종교집단 교주처럼 많은 추종자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생활했다. 여자와 노예를 수용한 최초의 학교이자 공동체다. 고대사회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그는 아테네 교외에서 ‘철학학교’를 운영했다. 아테네인들은 이 학교를 ‘정원’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에피쿠로스 사상을 ‘쾌락주의’로 착각한다. 에피쿠로스 사상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육체의 ‘위’를 찬양하는 식탐주의다. 단테는 이미 제6곡에서 ‘돼지’라는 의미를 지닌 치아코(Ciacco)를 소개하면서 탐식주의자를 소개했다. 그러나 제10곡에서 다른 종류의 에피쿠로스 추종자를 소개한다. 이들은 지적인 쾌락, 대화의 쾌락, 우정의 쾌락, 명상의 쾌락에 탐닉하는 ‘고상한 에피쿠로스인’이다. 그들은 ‘정원’에서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고상한 철학을 논한다. 이들은 육체의 요구에 탐닉하는 천한 에피쿠로스인이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을 즐기는 숭고하고 철학적인 에피쿠로스인이다. 이들은 빵 한 조각과 철학적인 대화와 친구와의 명상을 최초의 행복으로 삼았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는다. 죽음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저서 ‘논리철학논고’(1922년)에서 “죽음은 인생의 사건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고 전한다.

“나는 없었습니다. 나는 살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없습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한 목소리가 관에서 흘러나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에게 말을 건다.

“오, 불의 도시를 살아서 지나가는 투스카니 사람이여! 이렇게 점잖게 말하는 당신, 원컨대 이 자리에서 물러가시오!” (22~24행)

그 영혼은 단테의 투스카니 방언을 알아차리고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말한다.

“돌아보라.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보아라, 파리나타가 서 있다. 너는 그의 허리 윗부분을 볼 수 있다.” (31~33행)

파리나타는 피렌체의 정치가며 영혼의 불멸을 불신하는 에피쿠로스 철학 신봉자다. 그는 피렌체 귀족 출신으로 단테의 정적인 기벨린당의 우두머리다.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에피쿠로스 추종자다. 영혼은 육체와 함께 죽으며 인간의 행복은 일시적인 쾌락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고급 음식을 즐겼고 배고플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먹었다. 이 죄 때문에 그는 이곳에서 이단자로 정죄됐다.” 단테는 파리나타를 자신이 부인한 사후세계에서 영원히 불타는 관 속에서 고통받는 죄인으로 묘사한다. 사후세계와 심판은 인간이 구축한 문화와 문명을 유지하는 인과응보의 대원칙이다.

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은 필자 사정으로 이번 호를 끝으로 중단합니다.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3호 (2019.01.23~2019.0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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