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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수주전 뛰어든 삼성물산
결국 믿을 건 건설뿐? 재건축 시장 노크

▶패션·리조트 지지부진한 가운데 건설에 힘 실려…래미안 철수·합병설은 여전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19.01.28 09:26:19
주택 사업 철수설에 시달리던 삼성물산 건설 부문이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3년 만에 정비사업 수주전에 뛰어들면서다. 건설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입찰 수주전 참여가 가져올 여파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주택 사업 철수설에 시달리던 삼성물산 건설 부문이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3년 만에 정비사업 수주전에 뛰어들면서다. 건설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입찰 수주전 참여가 가져올 여파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주택 사업 철수설에 시달리던 삼성물산 건설 부문이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3년 만에 정비사업 수주전에 뛰어들면서다.

HDC현대산업개발을 내친 반포주공1단지(3주구) 재건축조합이 새로운 시공사를 찾아 나섰다. 그동안 재건축 수주 사업에서 자취를 감췄던 삼성물산이 입찰의향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1단지 재건축에 삼성물산을 비롯해 현대건설, 대림산업, 대우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국내 주요 건설사가 모두 도전장을 내게 됐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삼성물산 ‘래미안’은 재건축 시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였다. 서울 강남역 일대는 삼성물산이 시공한 아파트가 즐비해 ‘래미안’ 타운으로까지 불렸다. 하지만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5년 무지개 아파트 수주전 참여 이후 입찰 경쟁에서 아예 발길을 끊었다. 지난 2017년 삼성물산은 강남권 재건축 최고 물량인 ‘반포주공1단지’ 입찰마저 포기했다. 반포주공1단지는 공사비 2조6400억원, 입찰 보증금만 1500억원에 달하는 놓치기 아까운 사업이었으나 삼성물산은 현장 설명회에 불참했다.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 아파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 통합3차’, 송파구 잠실동 ‘진주 아파트’ 등 분양 대기 중인 물량이 있으나 이는 수의계약으로 조합이 래미안 브랜드를 선택한 곳이다.

삼성물산이 발을 뺀 공식적인 명분은 재건축 시장이 혼탁해 투명하고 깨끗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금품과 향응 제공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자칫 도덕성 훼손으로 기업 이미지가 크게 타격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근 몇 년 새 각종 정치적 풍파에 휘말렸던 삼성그룹은 ‘윤리·준법경영’을 앞세워왔다. 조합원 마음을 얻기 위한 영업활동이 필수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삼성물산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입찰 수주전에 나서지 않자 뒷얘기도 무성해졌다. 2014년 빌딩사업부로 흡수 통합됐고, 2016년 주택사업부가 팀 단위로 축소되자 핵심 인력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주택 사업에서 손을 뗀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도시·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공정한 경쟁 가능해졌다고 판단

최종적으로 사업 따낼지 미지수

삼성물산의 이번 수주전 참여는 ‘주택 부문 철수설’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듯 보인다.

삼성물산이 수주전에 참여한 이유는 삼성물산의 실적 악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패션이 골칫덩어리였다. 국내 패션 산업이 정체 시기라고 하지만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전혀 ‘삼성’ 이름값을 못 했다. 2015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에 선임된 이서현 전 사장(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실적 악화로 물러났다. 지난 3분기 패션 부문 매출은 389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늘었으나 영업손실은 50억원이 불어난 18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물산 건설·상사 부문에서 각각 2040억원, 38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과 대조적이다. 이 전 사장은 2020년 연매출 10조원 달성을 공언했으나 현실은 2조원대 벽도 넘지 못했다. 무엇보다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에잇세컨즈’의 실패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패션 부문은 물론 건설, 상사, 레저 등 다른 부문도 성장 기대감이 떨어지자 삼성물산 사업 구조조정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삼성물산은 현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성장과 계열사인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생명 등의 지분으로 얻는 배당수익에 크게 의존한다.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심지어 엔지니어링과 바이오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회사 움직임에 패션 사업 철수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4개 부문 가운데 ‘대장’이라 할 수 있는 건설 부문 내 주택 사업 위기감도 심각하다. 2013년 13조7801억원이었던 수주잔고는 지난해 3분기 8조3153억원으로 40% 가까이 감소했다. 지금까지는 2016년 이전에 수주한 단지로 곳간을 채웠는데, 신규 수주 없이는 2~3년 후의 분양 물량과 좋은 실적을 장담하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패션, 리조트 등 다른 사업에서 실적을 끌어올리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래미안 브랜드가 여전히 강력한 상황에서 주택 사업을 외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물산 전체 실적이 불안한 상황에서 지난해 3월 재무통인 이영호 사장이 건설 부문 구원투수로 부임했다. 이 사장은 삼성그룹 재무부서에서 주로 근무해왔다. 1985년 삼성전관에 입사한 이후 삼성SDI 상무, 삼성 기업구조조정본부 상무, 삼성 전략기획실 상무, 삼성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 전무, 삼성물산 건설부문 경영지원실장·부사장,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재무통답게 그는 탄탄한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지난 3분기 건설 부문 영업이익은 6054억원으로 전년 동기(3345억원)보다 80% 이상 늘었다. 특히 매출이 소폭 하락한 상황에서 80% 이상 영업이익을 늘렸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아울러 지난 3분기 누적 삼성물산 전체 실적을 보면 건설 부문 매출액 비중은 38%지만, 영업이익 비중은 70%(8611억원 중 6054억원)가 넘는다. 사실상 건설 부문이 삼성물산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주택 사업 강화는 실적 안정을 위한 또 하나의 ‘히든카드’라는 분석이다.

마침 지난해 10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가 삼성물산이 입찰 수주전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개정안에 따르면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금품·향응을 제공하다 적발된 건설사는 해당 시공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2년간 정비사업 수주가 금지된다. 또 ‘꼬리 자르기’를 막기 위해 건설사가 계약한 홍보업체(OS) 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 역시 건설사가 함께 지도록 했다.

엄격해진 정부 제재는 타 건설사가 몸을 사리게 만드는 악재로 작용했다. 반면 삼성물산은 입찰 수주전에 뛰어들지 않은 이유로 ‘혼탁한 경쟁’을 지목했던 만큼, 법개정은 삼성물산을 다시 입찰 시장으로 복귀시키는 발판이 됐다.

반포주공1단지(3주구) 재건축조합 시공사 간담회에 참석한 김상국 삼성물산 신규주택사업총괄 상무는 “프로젝트 수익성, 투명한 수주전 수행 가능 여부, 시공사로서 제시 가능한 조건을 따지다 보니 이 자리에 서기까지 고민이 많았다”며 “정부에서 투명한 시장 환경을 권장하고 있는 만큼, 그동안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한 상품을 보여줄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재건축 수주전 참여에도 불구하고 주택 사업 철수설 또는 인수합병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현재 삼성물산 건설 부문은 서울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사옥 일부를 임차해 사용한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이 서초동 사옥에서 경기 판교 알파돔시티로 사옥을 이전한 지 2년도 안 돼 이사가 재차 이뤄진 이후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물산 건설 부문 합병설이 여전히 남은 상태다.

이영호 사장 신년사 두고 설왕설래

“성공은 그만두지 않는 것”…래미안 지키겠다?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는 자세로 2019년 각자 목표한 바를 실천하고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의 신년사가 화제를 낳고 있다.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는 말이 철수설이 끊이지 않은 래미안(주택 사업) 복귀를 알리는 신호라는 해석이다. 이를 입증하듯 삼성물산은 반포1단지 재건축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삼성물산 측은 원론적인 신년사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 “수익성 등 조건에 맞는 사업장이 있다면 언제든 수주전에 참여한다는 (래미안 사업)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영호 사장은 지난 1월 4일 건설인 신년인사회에서도 래미안 주택 사업 철수와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 사장 신년사에 적지 않은 의미가 포함됐다고 판단한다. 철수설까지 돌았던 래미안 주택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출신으로 누구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그룹에 대해 잘 아는 이 사장이 신년사 한마디 한마디를 허투루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업계에서는 래미안 매각설이나 분사·철수설이 꺾이지 않는 가운데 래미안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임직원과 업계에 던진 것이라고 관측한다. 아울러 수년간 주택 부문 등 구조조정을 지속해온 만큼 직원 사기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전체 수주 역량 강화를 주문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사장은 신년사에서 소통과 팀워크 강화, 원가, 엔지니어, 기술력 강화 등 프로젝트 강화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3호 (2019.01.23~2019.0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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