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삶…배우가 아니기에 다큐처럼 와닿는다

김경학 기자

영화 ‘가버나움’

자인이 법정에서 부모를 고소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배우 겸 감독 나딘 라비키(오른쪽)는 변호사로 출연했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자인이 법정에서 부모를 고소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배우 겸 감독 나딘 라비키(오른쪽)는 변호사로 출연했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는 허름한 차림의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의사는 자인의 치아 상태를 살펴본 뒤 “유치가 다 빠진 것으로 봐서 12~13살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이어 영화는 자인과 아이들이 빈민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표정만 보면 다른 나라의 여느 또래와 같은 모습이다. 두 장면 중 어떤 것이 자인의 과거인지, 현재인지 알 수 없다. 제목이 올라간 뒤 자인은 법정 원고석에 들어선다. 자인이 고소한 이는 자신의 부모다. 이유는 ‘자신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는 법정과 과거 회상 장면을 번갈아 가며 자인이 왜 부모를 고소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가버나움>의 주인공은 “유령·기생충 같은 존재” “제조년월일이 있는 케첩병보다 못한 존재” 12살 소년 자인이다. 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자인은 아동학대와 다름없는 가정 환경에서 산다.

자인의 가족은 마약 성분이 있는 약을 녹인 “특제 주스”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자인은 잡화점에서 가스·식료품 등을 배달하며 생계를 돕는다.

학교도 마음대로 못 가는 자인이지만, 자신보다 동생을 먼저 챙긴다. 초경을 한 여동생 사하르에게 생리대로 쓰라고 자신의 상의를 건넨다. 가임 여성이 되면 돈을 받고 이웃에 팔아넘긴다는 것을 아는 자인은 사하르에게 조심할 것을 권한다. 자인은 사하르를 위해 함께 가출을 시도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홀로 가출한 자인은 놀이공원에서 에티오피아 출신 불법체류자인 라힐을 만나 함께 지낸다. 식당 종업원 등을 하는 라힐은 아기 요나스를 몰래 키운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요나스를 뺏기고 추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인은 라힐이 일하는 동안 요나스의 친구 겸 보모가 된다.

레바논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가버나움>은 시나리오가 있는 극영화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레바논 감독 나딘 라비키는 난민·불법체류자 등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을 수년간 관찰한 뒤 영화로 재구성했다.

자인·라힐·요나스·사하르 등 주요 인물 모두가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비전문 배우로 거리에서 캐스팅됐다. 라비키 감독은 “영화는 현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하다”며 “배우들은 실제 삶에서 거의 같은 상황을 겪은 이들로, 영화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역할에도 쓴 주인공 자인 알 라피아는 ‘리틀 제임스 딘’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깊이 있는 눈빛 연기 등을 선보인다.

영화는 어른이나 제3자의 시선이 아닌 아이들, 그들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암울한 현실을 그리지만 ‘혼돈 속 작은 기적’을 의미하는 영화 제목처럼 곳곳에 소소한 웃음, 행복, 희망도 담겨 있다.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24일 개봉. 126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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