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자와 뮤지션의 만남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

기타를 배우고 싶어 무작정 기타 책을 사서 연습을 했다. 책 맨 뒤에 코드 연습을 위한 표가 있다. 그 표 위에는 늘 ‘cort’라는 표시가 있다. 그래서 콜트(Cort)기타를 안다. 돈 없고 가난한 시절 콜트기타는 뮤지션을 꿈꾸는 이들에겐 소중한 기타였다. 중저가 브랜드 중에선 최고였다.

문화연대가 지난 13년간 콜트콜텍과 연대하면서 만난 가수 중 대부분은 콜트기타를 알고 있었다. 지금도 처음 기타를 배울 때 썼던 콜트기타를 가지고 있다는 뮤지션도 있었다. 소중한 추억의 기타가 노동자의 눈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기고]노동자와 뮤지션의 만남

가수 이한철은 “예술은 감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기타를 생산한다는 것은 예술과 만나는 것이다. 예술은 감성이 결여된 사람이 하기엔 역부족이다. 박영호 사장처럼 노동을 부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은 예술이며 예술은 계산기로 두드려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도 했다.

밴드 한음파는 “음악인으로서 콜트콜텍과 같은 일에는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기타를 만드는 사람과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공생 관계로 노동자의 착취는 결국 뮤지션에 대한 착취다. 늘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겠다. 박영호 사장이 버틸수록 연대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고 말했다.

그룹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의 톰 모렐로(Tom Morello)와 잭 드라 로차(Zack De La Rocha), MC5의 웨인 크레이머(Wayne Kramer) 등 세계적 뮤지션들도 “기타는 착취가 아니라 자유를 의미한다”며 자신의 기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졌는지 알아봐야겠다며 콜트악기의 노동자들을 응원했다.

시나위의 신대철을 비롯해 사랑과평화의 최이철, 한상원밴드, 게이트 플라워즈는 사측이 만든 콜트문화재단의 공연 섭외에 좋은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다가,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즉각 사과를 했고, 콜트콜텍 노동자와 함께 후원공연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2007년 당시 콜트악기와 콜텍은 전 세계 기타 시장의 점유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잘나가는’ 회사였다. 재무상태도 안정적이었고, 10년 동안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갑자기 국내 공장을 폐업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한 이유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콜트콜텍은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 펜더, 알바레즈 등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다량의 기타를 납품하고 있었다. 박영호 사장은 30년 동안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쥐어짜 자산규모가 1000억원대에 이른다. 한국 부자순위 140위가 되었다. 이것도 모자랐는지 박 사장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1993년 인도네시아 공장, 1999년 중국 공장을 설립하고는 천천히 국내 생산라인을 축소시켜 나갔다.

2007년 4월에는 인천 콜트악기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하고, 7월에는 계룡시에 있는 콜텍악기를 위장폐업하고 남아있던 67명 전원을 정리해고했다. 2008년 8월에는 인천 콜트악기마저 폐업했다. 생산 물량을 해외 공장으로 빼돌리고, 서류상 경영위기를 만들어 정리해고와 폐업의 명분으로 삼았다.

올해로 정년을 맞이하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는 13년의 긴 투쟁을 끝내고 싶다고 한다. 정년이 되기 전에 복직해 아빠의 싸움이 정당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저항의 목소리를 냈지만 확고부동한 부의 소유자 박영호 사장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콜텍은 여전히 기타산업 1위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대전에서 콜텍 본사가 있는 등촌동을 거쳐 부평으로, 여의도에서 광화문을 거쳐 최근 등촌동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올해가 지나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복직의 꿈을 찾아서, 일상의 삶을 돌려받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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