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펫 편한 세상-보호소 동물들은 죄가 없다

입력 : 
2019-01-23 09:39:58

글자크기 설정

‘케어’의 대표가 반려동물들을 은밀하게 안락사 시켜왔다는 일이 폭로되면서 동물 보호 문화에 대형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벌써 후원 취소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오갈 곳 없거나 박해받는 동물을 보듬어 주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또한 함께 살아갈 반려인들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해 달라며 보낸 돈의 일부를 안락사 비용으로 쓰였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냐는 게 후원자들의 성난 목소리들이다. 그러나 후원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하나의 지점을 향하고 있다.

사진설명
동물보호단체들의 활동 목적은 말 그대로 동물 보호에 있다. 농림축산검역소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동물보호 민간 단체 및 관련 협회’는 모두 16곳이다. 지방정부에서 직접 또는 위탁 운영하는 보호시설 293곳에 비하면 극소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 단체들은 단순한 동물 구조, 치료, 입양, 보호 등을 넘어 ‘동물 복지’, ‘동물 폭행 고발’, ‘동물 복지 확충’, ‘식용개 농장 반대’, ‘정부 정책 개선 제안’, ‘유기동물 보호 시설 확충’ 등 동물을 매개로 한 사회 운동 성격을 띄고 있어서 그들의 활동 성과는 규모에 비해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활동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 중 상당 부분이 후원금에서 나오는 것도 그들의 활동이 시민 운동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정부에서 세금으로 운영하는 보호소는 ‘구조 – 주인 찾아주기 – 입양 홍보 – 관리 – 안락사’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시설의 유지’와 개체 수 조절이라는 이유로 안락사를 고수하고 있다. 민간 보호소 역시 비슷한 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민간 단체는 ‘합법적 안락사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민간동물보호소에서의 안락사 케이스가 제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간 단체에서도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안락사를 시키기도 한다. 도저히 살릴 수 없는 질병에 걸렸거나 대형 사고를 당했을 경우, 치료를 진행하고 있으나 그 고통이 극심한 경우(이 또한 모호한 부분은 있지만) 등이 그렇다. 안락사를 시킬 때에도 협의 과정을 거치고, 그 사실을 내부 활동가는 물론 후원인들에게도 홈페이지를 통한 ‘사망 사실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번 사건은 현재 우리나라 동물 보호 정책의 후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라 씁쓸한 분노를 감

출 수 없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보호소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은 ‘구조 후, 입양되지 않는 한 차례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운명 앞’에 설 수 밖에 없고, 민간단체의 보호소는 턱없이 부족한 시설과 예산 때문에 아우성치듯 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엄연한 현실이고 대다수 후원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공개적 논의를 거친, 어쩔 수 없는 안락사’의 경우 마음은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여론이다.

케어 사태를 보는 눈이 따가운 이유도, ‘안락사가 불가피한 수용 시설의 한계를 알면서도 무리하게 유기동물을 수용했다’는 점과, ‘당초부터 활동가, 후원인들과 상의했어야지’라는 분노 때문이다. 동물 복지가 시민운동의 개념이고, 시민의 후원과 참여로 단체가 운영되고 있는 한 그 어떤 이유로도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케어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 보면 ‘후원’에 대한 세 가지 정도의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첫째, ‘그래도 계속 후원’이다. 이런 마음에는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이 케어의 시설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둘째, ‘당장 중단’이다. 배신감 때문이 아니다. 후원자들은 물론 반려동물 문화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짓을 저지른 개인이나 단체 대신 합리적이며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 단체로의 이동을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세 번째 여론은 조건부 후원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박소연 대표가 사퇴하면 후원을 지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주장하는 형식은 차이가 있지만 사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한 곳,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과 ‘건강한 활동가’들에 있다. 그들은 죄가 없으며, 공동의 피해자일 뿐이다.

[글 이누리(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4호 (19.01.29)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