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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남동 漢南洞-‘첫눈에 반한 예쁜 누나’ 같은 동네

입력 : 
2019-01-23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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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은 대학교에 입학해 첫눈에 반한 여자 과 선배 같은 곳이다. 그것도 예쁘고 애인까지 있는. 그래서 풋풋하게 마음에 담아두고는 있지만 선뜻 표현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가슴 졸이는 상대다. 그저 구내식당에서 밥이나 먹을 때 혹은 과 모임 있을 때 흘깃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한남동은 서울 한복판에 버젓이 존재하지만 그저 지나는, 해지면 나가야 하는 동네이다.

한남동이 예뻐지기 시작한 것은 그 옛날 헤은이의 ‘제3한강교’ 때부터이다. 당시 한남오거리 일대에 단국대학교, 순천향병원을 중심으로 외국 공관과 UN빌리지 등이 있어 이태원과 인접한 외국인이 많은 동네였었다. 그 한남동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남산외인아파트, 2003년 한남아파트 철거와 2007년 단국대가 옮기면서이다. 단국대 자리는 한남더힐이라는 ‘부자 중의 부자’만 살 수 있는 금싸라기 땅으로 변하면서 한남동은 더욱 쳐다만 볼 예쁜 선배가 되었다. 게다가 그 맞은편 외인아파트는 지금 한창 개발 중이다. 이곳 역시 한남더힐 못지않은 부촌이 될 전망이다. 이뿐이 아니다. 우리가 한남동을 부자 동네로 인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한남동 북쪽, 즉 이태원1동과 인접한 대저택들 때문이다. 재벌가 회장님들 대저택이 즐비한 이곳은 높은 담장이 있어 그저 걷기도 부담스러운 곳이다. 이에 필적한 곳이 바로 한남동 남쪽에 있는 UN빌리지이다. 입구에서부터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부촌이다. 독서당길로 옥수동과 연결되는 이곳 오른편이 위치한 UN빌리지는 사실 특정 빌라의 이름이 아닌 말 그대로 ‘빌리지’, 동네의 총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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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타워에서 내려다 본 한남동 일대(사진제공 아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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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리움미술관(사진제공 아트만 /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물론 한남동에 부자만 사는 것은 아니다. 제일기획 뒤쪽, 순천향 병원 근처와 보광동과 맞닿은 곳에는 나름 ‘서민적인 주택’들도 있었다. 이 두 곳이 지금 역동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스타트업 회사, 작은 공방 등이 들어서면서 한남동이 그저 돈 많고 예쁜 누나가 아닌 다재다능한 재주꾼임을 보여준다. 한남동의 이름 유래는 단순하다. 한강의 ‘한’, 남산의 ‘남’을 따 한남동으로 불렀다. 조선시대 때는 한남동을 ‘능터골’이라 불렀는데 미리 임금의 능터를 지금의 한남초등학교 부지에 잡아놓을 정도로 명당인 셈이다. 뒤로는 남산, 앞으로는 한강, 풍수의 기본을 몰라도 딱 봐도 ‘배산임수’이고 거북이가 물을 먹는 곳이라 재물이 풍족한 곳이란다. 한강은 서울의 젖줄이다. 노량진, 송파진과 더불어 한강진이 한남동에 자리 잡았다. 팔도에서 올라오는 곡물과 물품이 쌓였고 남산 인근 높은 곳에 홍수에도 끄떡없는 자리에 창고를 지어 보관했었다. 이래저래 한남동은 풍족한 곳이었다. 또 하나, 한남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지금의 한남역 인근에 있던 제천정이다. 고려 말부터 외국 사신 접대나 임금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이곳에 서면 한강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한강 남쪽에 있는 능을 참배하던 왕들이 잠시 쉬어가기도 했다. 맛집, 멋집 많은 동네, 강북 최대의 부촌을 형성한 동네, 외국 공관이 제일 많은 동네, 교통 편하고 풍수 좋은 동네 등등의 수식어가 붙어있는 한남동. 여기에 딱 하나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조금 낮은 문턱이 아닐까.

[글 장진혁(아트만텍스트씽크) 사진 이영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4호 (19.01.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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