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박물관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자 떠오른 최초의 생각. ‘여기는 젠트리피케이션 걱정이 없겠군’. 이 마을은 박물관마을로 변하기 전, 그러니까 2010대 초반까지는 꽤 활발한 상업지역이었다. 삼성병원, 적십자병원, 금융기관, 언론사 등 규모가 큰 기업들이 주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공시설이 되어 대중음식점이나 카페 등이 장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전의 골목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옥 골목, 근대식 건축물, 일본식 가옥 정도가 대강의 블록을 형성하고 있는 게 그렇다. 이 동네가 음식점 밀집 지역이었던 1990년~2010년대 초반 시절 한옥 골목에는 고깃집, 추어탕집, 복집, 칼국수집 등이 줄줄이 있었고, 일본식 건축물과 근대식 건물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맥주집, 일반 식당 등이 문을 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흔적만 남고 사라져버린 ‘북적북적했던 식당들’이었다. 한때는 이 건축물들까지 모두 헐어버리고 새로운 공원으로 조성하는 작업이 진행된 적도 있었다. 바로 뒤에 위치한 경희궁 등을 생각해 볼 때 공원으로 만들었어도 크게 잘못될 일은 아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송월동 언덕은 인왕산의 끝자락쯤 되고, 성곽 복원과 함께 사라진 주택들도 적지 않다. 완전히 사라질 뻔했던 이 마을을 되살린 것은 돈의문이다. 마을 바로 아래에 돈의문이 있었고, 언덕 아래에 경희궁이 있고, 길 건너에는 정동, 덕수궁이 있으니 이 언덕을 근대 문화의 연장으로 보고 보존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방향도 그렇게 선회된 것이었다.
▶한옥, 적산가옥, 슬라브집이 한 곳에
‘경희궁 궁장유적’은 옛 아지오 건물 옆 별개의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궁장이란 궁궐의 담장을 말한다. 지금 경희궁은 본래의 경희궁에 비해 규모가 위축되어 있고, 궁장의 길이도 200m 정도이다.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원래 경희궁의 궁장은 1.8km에 달했었으나 일제 강점기 시절 도시 계획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다. 발굴된 경희궁장 유적이 경희궁의 규모와 당시 도시 계획으로 변화된 이 지역의 중요한 연구 사료이자 복원을 위한 고증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는 점은 상식이다. 경희궁장유적 전시장에는 궁장 외에도 조선 시대의 온돌, 근대 건물터 기초, 일제 강점기 건물터 등이 실물로 전시되어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실제로 사람이 주거하는 마을은 아니다. 일정한 요건과 자격을 갖춘 문화 관련 전문가들, 단체 등이 곳곳의 공간에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미술관협의회, 와인 관련 문화 교육, 컨설팅 회사인 ‘디비알디코리아’, 음악 크리에이터 집단 ‘돈의문싸운드연구소’, 미디어 활동가 그룹 ‘DOCS’, 국수를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논하는 인문 예술 콘텐츠 집단 ‘면담’, 도시 조사 연구소 ‘도시연구소’ 등이 그들이다. 시민이나 여행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전시, 체험, 투어 등 열린 프로그램들도 많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체험 프로그램은 ‘내내로NNR 상상공방’에서 주관하는 ‘목공워크숍 상상공방’ 하나다. 내내로의 상상공방은 버려지는 가구를 분해하고 채집하여 예술과 결합한 새로운 사물로 만드는 예술가들의 작업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1월4일부터 2월26일까지, 매주 화요일 10:00~13:00, 금요일 13:00~16:00에 열리며, 예약을 통해 참가 가능하다. 참가비는 쿠폰 구입 형태로 선지불 해야 한다. 쿠폰은 1회 5만 원, 2회 8만 원, 3회 12만 원, 4회 15만 원이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어린이의 경우 부모 동행이 필수다.
요즘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최대 관심사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전시회가 아닐까? 필자 역시 이 겨울에 이 마을을 찾은 이유는 마을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바로 이 전시를 보기 위함이었다. 오스트리아 사람인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건축가이자, 미술가이자, 패션 활동가이자, 환경운동가로 살다 간 인물이다. 그는 ‘자연을 사랑한 예술가’, ‘건축치료사’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일생을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대명제 하에 분야를 망라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의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미술, 건축, 디자인, 환경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쳤고 그 에너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 에너지의 힘이 크고 오래가는 이유는 훈데르트바서의 ‘창의적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문맹은 쓰고 읽는 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라는 그의 주장을, 적어도 그 자신은 철저하게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더파이브스킨(THE FIVE SKIN)’이라는 주제의 흔데르트바서 서울특별전은 돈의문박물관마을 다섯 곳의 공간에서 열리고 있는데,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마을을 오가며 감상하고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다섯 개의 피부란 ‘자신’, ‘옷’, ‘집’, ‘정체성’, ‘지구환경’ 등을 일컫는데, 각 주제별로 전시 공간을 나눈 것이다. 신문로 강북삼성병원 사거리에서 돈의문박물관마을로 올라가는 계단 꼭대기 오른쪽에 있는 제1전시관에선 ‘네 번째 피부: 정체성’을 주제로 우표시리즈, 그래픽 원화, 환경포스터, 두들시리즈 등이 1, 2, 3층 전시장에서 전시 중이다. 훈데르트바서의 그림, 우표는 한마디로 꿈틀거리는 생동감, 주목하게 하는 힘, 피식 웃으며 형성되는 공감이 있는, 역시 대가의 작품들이었다. 2전시장에서는 ‘두 번째 피부: 옷’이 전시되고 있다. 단 세 점의 사진과 영상이 전부이지만, ‘다른 생각이 가져오는 창조성’을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3전시관의 주제는 ‘세 번째 피부: 집’.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사진, 영상, 드로잉집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그의 곡선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4전시관의 주제는 ‘첫 번째, 다섯 번째 피부: 나와 지구 환경’. ‘핀토라리움’은 훈데르트바서가 설립한 예술 학교로, 그의 자연과 예술의 철학이 담긴 곳이며, 모든 시설 또한 그 콘셉트에 맞춰져 있었다. 이곳은 바로 그 핀토라리움의 재현한 공간으로 자연스럽다 못해 비현실적인 느낌까지 받게 되는 공간이다.
전시를 본다기 보다, 그냥 그 안에 잠시 안거나 눕고 싶은 심정이랄까? 4전시관에서 골목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서대문여관’이라는 세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재개발 전까지 여관으로 영업을 했던 이곳은 현재 ‘세븐픽쳐스’라는 예술 디자인, 유통 단체가 입주해 있는데,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화가, 디자이너는 물론, 성수 수제화 장인, 가수 유노 윤호 등의 작품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계단을 내려와 신문로 큰 길가에 있는 ‘체험관’에는 ‘살아있는 미술: 나선의 미학’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보다는 곡선을, 사각보다는 스트라이프를, 대칭보다는 비대칭을 사랑했다. ‘사람들은 항상, 왜 두 개의 다른 양말을 신으셨습니까, 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오히려, 왜 꼭 두 짝을 똑같이 신어야 합니까’라고 답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자신만의 시선과 관점’을 가졌을 때 삶의 방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느끼게 하는 극명한 메시지이다. 체험관은 그저 마카펜이나 크레용으로 ‘참가자만의 나선을 그려보는 기회의 벽’이다. 훈데르트바서 서울특별전은 2월24일까지 열린다.
화목토일 10:00~18:00 / 수금 10:00~20:00 /월요일 휴관 / 무료
오래된 동네이니만큼 오래된 건축물, 문화적 가치가 살아있는 공간들도 근처 송월동, 행촌동, 신문로, 교남동 곳곳에 있다. ‘딜쿠샤’는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 세계로 타전한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가 1923년에 지은 집이다.
이 집은 부부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출국 당한 뒤 오랜 세월 방치되었는데, 2005년에 비로소 이 집의 이름이 ‘딜쿠샤’이고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되었다. 확인 작업을 한 사람은 서일대학교 김익상 교수로, 그는 테일러 부부의 아들이자, 어린 시절 딜쿠샤에서 살았던 ‘브루스 T 테일러’의 ‘내가 살던 집 좀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두 달간의 조사 끝에 실체를 확인해 주었다. 딜큐샤는 서울시 문화재로 등록되어 복원 작업 중이다. 딜큐샤란 힌디어로 ‘매혹, 기쁨’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18세기에 축조된 영국령 인도의 건물 이름이기도 하다. 딜쿠샤에 대한 이야기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전에서 더욱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니 꼭 들려서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경험해 볼 것을 권한다.
해방 직후 소유주인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했는데, 김구는 일본식 이름인 ‘죽첨장’을 근처에 있던 다리 이름인 ‘경교’를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도록 했고,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김구는 바로 이곳 경교장에서 1949년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되었다. 김구가 암살당한 뒤 경교장은 다시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삼성재산에서 구입, 병원 본관으로 사용하다 서울시와 함께 문화재로 보전 중이다.
경교장에는 김구의 집무실, 회의실, 암살 현장 등이 공개되어 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무료 개방 중이다.
이밖에 돈의문박물관마을 근처의 문화 명소로는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한양도성의 성곽 변천을 볼 수 있는 월암근린공원, 송월동 기상청 별관 등이 있다. 사거리 건너 정동길로 들어거면 조선의 개방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는 많은 문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4호 (19.01.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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