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개들, 그들의 ‘낙원 찾기’ 성공할까

고희진 기자

‘마당을 나온 암탉’ 오성윤·이춘백 감독의 신작 애니 ‘언더독’

지난 16일 개봉한 <언더독>은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뀐 개 ‘뭉치’와 개성 강한 친구들이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언더독>의 한 장면.  NEW 제공

지난 16일 개봉한 <언더독>은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뀐 개 ‘뭉치’와 개성 강한 친구들이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언더독>의 한 장면. NEW 제공

<언더독>은 오랜만에 찾아온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주인에게 버려진 개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인간을 피해 자유로운 땅을 찾아가는 모험담이다. 개들이 지난 곳곳에서는 한국 사회의 이면이 드러난다. 처음 버려진 개들은 서울의 한 재개발지구에 모여산다. 개장수에 붙잡힌 친구를 구하려다 ‘개 공장’을 지나친다. 고속도를 거쳐 이들이 당도한 곳은 남과 북의 경계 비무장지대(DMZ)다. 영화는 진지한 이야기를 동화적 상상력 속에 적절히 버무려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오성윤·이춘백 감독은 다시 한번 한국 성인 극장 애니메이션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깊은 산속에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다. 차에서 내린 인간은 개 한 마리를 내려놓고 떠난다. 멀어져가는 주인을 바라보는 개는 ‘뭉치’(목소리 도경수)다. 버려졌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뭉치 곁으로 이미 주인을 잃은 ‘짱아’(박철민)와 개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뭉치를 위로하며 자신들의 안식처로 데려간다. 개들이 사는 곳은 사람이 떠나고 없는 서울의 한 재개발지구다. 먹을 것은 없고 개장수를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이들은 우연히 산에 사는 들개 ‘밤이’(박소담) 일행을 만난다. 개들은 결심한다. 사람이 없고 개들이 행복한 ‘낙원’을 찾자고.

영화는 기본적으로 ‘견생역전’을 위한 개들의 여행기다. 점차 독립적인 개로 변해가는 뭉치와 인간을 싫어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짱아, 외로운 밤이는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영화 내내 개성 강한 캐릭터가 잘 조화를 이룬다. 전문 성우는 아니지만, 주연을 맡은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좋다. 박철민은 짱아 캐릭터로 영화의 웃음을 담당한다.

한국적 수묵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애니메이션 그림체가 신선하다. 미국의 월트디즈니나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와는 결을 달리하는 한국적 애니메이션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만하다. 기술적인 완성도에도 흠결이 없다. 제작 기간 6년, 제작진만 178명이다. 작화에 사용된 A3용지는 5050장에 달한다. 영화의 총 프레임 수는 14만5440개다.

<언더독>이 반가운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한국 성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과정을 겪으며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 달리 성인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크지 않다. 그나마 극장에 실리는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어린아이를 타깃으로 방학 기간에 개봉하는 작품들뿐이다. 사회적인 시선과 고민을 녹여낸 성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쉽게 자리 잡기 힘들다. 최근 들어 연상호 감독 등이 주목받았으나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긴 어려웠다.

새 둥지 구하는 과정 담은 모험기
재개발 등 우리 사회 이면 드러내

<언더독>은 애니메이션 장르가 줄 수 있는 모험과 환상에 사회적 고민을 녹여냈다. 버려진 개들이 사는 재개발지역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지구를 모델로 했다.

국산 애니메이션 <언더독>의 이춘백(왼쪽)·오성윤 감독.  NEW 제공

국산 애니메이션 <언더독>의 이춘백(왼쪽)·오성윤 감독. NEW 제공

이춘백 감독은 “사회적 약자들은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곳을 찾다 보니 사람들이 버리고 간 폐가 마을에서 개들이 많이 발견된다는 걸 알았다”며 장소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영화 초반 모두가 천시했던 개들에게 먹이를 줬던 이는 외국인 노동자다. 한때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개 공장’이 등장하고 ‘로드킬’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를 보다 보면 단순히 ‘반려동물에게 잘해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인간과 개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반려 문화는 과연 동물을 위한 것인지, 도시화가 야생 동물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할 수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동물보호단체들의 유기견 보호 실태로까지 생각이 옮겨간다.

한국적 수묵화 같은 그림체 신선
‘인간·개’ 공존 방법 고민 녹여내

오성윤 감독은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도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공장식 축사에서 알만 낳던 ‘잎싹’이 자신도 제대로 된 알을 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시작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오 감독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가 정한 프레임 안에 갇혀 사는 게 아닌가. 그 프레임 안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잎싹’도 그랬다”며 “이런 문제는 결국 사람이 생명을 포함한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동물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는 지난 16일 개봉했다.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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