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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비리'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구속 파장
금감원, 유고(CEO) 시 승계 질의…신한·하나 '긴장'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19.01.21 09:37:06
  • 최종수정 : 2019.01.21 15:24:10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채용비리 관련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고위 공직자나 주요 고객의 자녀·친인척을 특혜 채용한 혐의다. 서울북부지법은 이 전 행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채용비리 수사가 전 금융권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관련 인사의 첫 판결이 나왔다는 점과 더불어 구속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찮다. 현재 재판 중이거나 수사 대상인 금융사가 적잖기 때문이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법원 판결 후 법정구속되면서 다음 재판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법원 판결 후 법정구속되면서 다음 재판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전 행장 판결문 보니

▷‘은행은 규제산업’ 공공성 강조

이번 선고가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판결문에 있다.

금융권은 인사권은 경영진 고유 권한인 데다 민간 회사에서 자율권을 갖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인재상 역시 은행마다 추구하는 철학이 다 다르기 때문에 채용비리, 즉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번 판결문을 보면 사안이 간단치 않아 보인다.

쟁점은 은행이 사기업이냐 여부다. 법원은 ‘은행이 사기업은 맞다’라고 인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사기업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이재희 판사는 “은행의 공공성과 우리은행 (사회적) 위치 등을 고려하면 (은행장의) 재량권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공성’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우리은행을 ‘은행이 부실화되거나 금융위기가 발생할 시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도 하는 등 국가로부터의 감독과 보호를 동시에 받는 은행업을 영위하는 금융기관’으로 분류했다. 우리은행에는 아직도 예금보험공사 지분(18.43%)이 있다. 우리은행이 2001년 부실화되자 정부는 약 12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후 은행 사정이 정상화되며 지난 4~5년간 예보 지분을 팔면서 부분 민영화 과정을 거쳤다. 이로써 공적자금 대부분은 상환했지만 여전히 정부가 우리은행 지분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은행인 만큼 재판부는 ‘공공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은행업은 정부가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규제산업이라는 점도 양형에 반영됐다. 재판부는 정부가 은행 인허가권 외에도 은행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다른 사업자가 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사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신한·하나 ‘우린 달라’

▷공적자금 투입 NO…정부 지분 없어

이제 초점은 비슷한 채용비리 사건에 연루된 다른 금융사로 모인다.

검찰은 지난해 6월 KB국민·KEB하나·우리·부산·대구·광주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를 수사한 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과 이광구 전 행장, 성세환 전 부산은행장,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 등 은행권 임직원을 각각 구속·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전현직 주요 시중은행장 중 이광구 전 행장이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KB국민은행도 혐의는 받았지만 CEO는 이 사안에서 비켜 갔고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임직원 4명은 채용비리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는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후문이다.

재판 중인 현직 인사는 함영주 행장과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 등이 꼽힌다.

금융권에서는 KB국민은행 사례에 비춰 다른 은행도 비슷한 수순을 따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최근 이 전 행장 판결 후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조용병 회장은 2013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에 걸쳐 외부 청탁 지원자, 신한은행 임원, 부서장 이상 자녀 명단을 별도 관리하며 채용 특혜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용병 회장은 이 기간 중 일부 시기에 신한은행장을 지냈다. 검찰은 또 조 행장 시절 남녀 성비를 인위적으로 3 대 1로 맞춰 채용하기 위해 총 154명의 서류전형과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문제 삼고 있다.

함 행장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인사 청탁을 받고 총 지원자 9명을 부당하게 채용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신입행원 남녀 비율을 4 대 1로 맞춰 차별 채용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도 제기됐다.

두 은행은 모두 행장이 직접 관리했거나 보고받은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채용 과정 자체는 민간 자율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광구 전 행장 담당 재판부가 강조했던 ‘공공성’을 놓고 보면 이들 거취 또한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이 정부 규제산업’이란 시각이 이들 재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아무래도 판결에서 불리해질 여지가 생긴다.

최근 금감원이 이를 의식한 듯 신한금융지주에 지배구조 관련 질의를 한 사실은 파장이 꽤 컸다. 금감원은 최근 신한의 이사진에 ‘혹시 모를 CEO 유고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요구했다. 오렌지라이프 자회사 편입 승인에 앞서 CEO 공백 시 승계 계획 등이 준비됐는지 확인해보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에서 조 회장이 업무 수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예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현행법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회사 이사회는 경영 승계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구체적인 원칙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회장 유고 시 이사회에서 정하는 이사를 직무대행으로 선정하고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후임자를 정식 선출한다는 내부 규정을 보고했다. 신한금융의 서열 2위는 신한은행장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언제든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관리한다는 차원이지 다른 저의는 없다. 최고경영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으니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는지는 금융당국 입장에서 당연히 챙길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오렌지라이프 인수를 승인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앞서 오렌지라이프를 2조2989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연임에도 영향 줄까

▷실적 보면 문제없지만 판결이 변수

함영주 행장 임기는 올해 3월까지, 조용병 회장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법조계는 재판부 일정상 판결이 연초에 빨리 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판결이 난다 해도 최종심(3심)까지 가는 데 3년 이상 걸린다. 이렇게 놓고 보면 조 회장이나 함 행장은 연임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현직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 모두 경영 능력, 실적만 놓고 보면 연임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조 회장은 오렌지라이프, 아시아신탁 등 잇따라 대형 M&A를 성사시키며 비은행 계열사 비중을 높였다. 또 순익 면에서도 약 3조원 가까운 순익을 올려 사상 최대 실적을 넘볼 정도로 실적이 좋았다.

함 행장도 마찬가지다. 은행 단일 기준으로 약 2조원대 예상 순익을 기대해볼 정도로 실적 개선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표면적으로는 채용비리가 연임을 막기 힘든 구조다. 다만 변수는 법정구속이다. 만에 하나 유죄 판결과 더불어 도주의 우려 때문에 재판부가 법정구속을 선언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채용비리와는 별개지만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이 법정구속됐을 때를 예로 들면 구속 초반만 해도 회장직을 유지했으나 주요 의사결정이 지체되는 등 그룹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여론이 일자 결국 회장추천위원회가 꾸려졌다. 이광구 전 행장 판결 후폭풍이 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3호 (2019.01.23~2019.0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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