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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보험업계 새 격전지 부상한 '치매보험'
초기 치매까지 진단비 보장…암환자도 OK

  • 나건웅 기자
  • 입력 : 2019.01.21 10:18:52
# 직장인 김명환 씨는 2년 전 어머니를 위한 치매보험에 가입했다. 일흔을 넘긴 어머니가 불을 올려놓고도 자주 깜빡하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헷갈리는 등 건망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서다. 최근 전화기 사용법조차 까먹는 등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모습에 병원을 찾았고 ‘경증치매’ 판정을 받았다.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답변은 ‘NO’. 가입상품이 ‘중증치매’부터 보장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이 불가하다는 설명이었다. 김 씨는 “치매 증상 경중에 따라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내 치매 인구가 75만명에 육박한다. 치매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존 치매보험은 보장 범위가 좁은 탓에 실효성 있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상당수다.

생명·손해보험사를 막론하고 최근 잇달아 선보이는 치매보험 신상품은 다르다. 예전에는 경증치매 보장 보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면 신상품들은 대거 보장 범위를 중증에서 경증치매까지 넓혔다. 유병자나 고령자도 간편 고지로 가입할 수 있게 편의성을 높인 것도 특징이다.

보험업계 새 격전지로 ‘치매보험’ 시장이 부상하고 있다. 고령화에 따라 치매 환자가 늘어났고 보험 수요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새 격전지로 ‘치매보험’ 시장이 부상하고 있다. 고령화에 따라 치매 환자가 늘어났고 보험 수요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신상 치매보험 쏟아지는 이유

▷치매 환자 증가…보험업계 새 먹거리

치매보험은 치매 진단 시 진단금과 간병비, 월 생활비 등을 지급하는 질병·간병보험의 일종이다. 기존 치매보험과 요즘 상품의 가장 큰 차이는 증상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경증치매’까지 보장한다는 점이다. 보험사는 치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임상치매평가척도(CDR)’라는 기준을 활용한다. 평가를 통해 경증치매(CDR 총점 1점), 중등도 치매(2점), 중증치매(3점 이상)로 치매 경중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1단계 경증치매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반복적인 건망증 정도에 불과하지만 2단계인 중등도 치매 환자는 시간 인지 능력을 상실하고 새로운 기억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3단계 중증치매에서는 대소변 실금이 나타난다. 4단계는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이동이 어려울 정도로 인지 능력이 흐려진 상태다.

과거에는 3단계 이상 중증치매만 보장하는 상품이 많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만 해도 전체 치매보험 132개 중 중증치매만 보장하는 보험이 82개나 됐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1단계인 경증치매까지 보장 범위를 확장한 상품이 계속 나오는 중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중증치매 환자 비중은 전체 2% 정도다. 상품 실효성이 없다는 여론을 수용했다. 게다가 최근 정부 정책 탓에 중증치매 환자 의료비 부담 비율이 크게 줄어들었다. 보장 공백 상태인 경증치매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새해 나온 치매보험 비교해보니

▷月간병비는 ‘생보’, 경증 진단금은 ‘손보’

업계 내 치매보험 경쟁이 치열한 만큼, 근래에 나온 상품일수록 보장 혜택이 클 가능성이 높다. 새해 나온 치매보험상품 6개를 비교 분석한 까닭이다.

한화생명과 동양생명은 올해부터 경증치매까지 보장을 확대했다. 한화생명이 지난 1월 선보인 ‘간병비 걱정없는 치매보험’은 치매를 주계약으로 보장하는 치매 단독 상품이다. 보험 가입금액 1000만원 기준으로 경증치매 진단 시 400만원, 중등도 치매는 600만원을, 중증치매는 2000만원을 지급한다. 중증치매 판명 시에는 진단비와는 별개로 매월 간병비 100만원씩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동양생명 ‘수호천사 간병비 플러스 치매보험’과 비교해도 더 나은 보장이다. 동양생명 치매보험은 동일 가입금액 기준으로 경증치매 진단금 300만원, 중등도 치매는 500만원이다.

‘신한 간병비 받는 건강보험’ 경증치매 진단금은 200만원으로 두 생보사 상품보다 적다(중등도 치매 500만원, 중증치매 2000만원). 하지만 여타 노인성 질환을 종합관리하기에는 더 수월할 수 있다. 파킨슨병과 루게릭병 진단 시 각각 1000만원을 지급하는 담보가 주계약에 포함돼 있다. 단 간병비는 월 30만원까지다.

손해보험사에서 새해 내놓은 치매보험은 간편 가입에 초점을 둔 상품이 많다.

DB손해보험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간편 고지 간병보험을 선보였다. ‘착하고 간편한 간병치매보험’이다. 가입 심사 항목은 딱 3개다. ① 최근 3개월 이내 의사로부터 치매와 관련해 입원이나 수술, 추가 검사 소견을 받은 적 있는지 ② 최근 2년 내 입원이나 수술을 받은 사실이 있거나 치매, 인지기능 장애, 파킨슨병으로 진단받은 사실이 있는지 ③ 최근 5년 이내 암으로 진단받거나 입원, 수술을 받았는지 등이다. 진단비는 경증치매 500만원, 중등도 500만원 수준이다. 피보험자가 해당 특별약관 보험 기간 중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대상으로 인정될 경우 500만원을 추가 지급한다.

KB손해보험이 선보인 ‘KB The간편한 치매간병보험’은 알릴 의무가 있는 고지사항이 더 적어 2개뿐이다. 첫째, 1년 내에 치매나 인지기능 장애가 의심돼 의사로부터 검사받은 사실. 둘째, 치매·파킨슨병·뇌졸중 등으로 입원·수술·7일 이상 치료 내역이다. 당뇨·고혈압은 물론 암이 있어도 보험 가입에 전혀 상관없다. KB손해보험 60세 이상 가입 시 경증·중등도 치매 진단비가 각각 500만원, 중증은 5000만원까지 지급한다. 간병비는 10년 동안 월 20만원. 흥국화재 역시 심사 항목이 2개에 불과한 간편 치매보험 ‘착한가격 간편치매보험’을 내놨다.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비도 보장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경증치매 진단비 지급액은 손해보험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중증치매보다 훨씬 더 흔하기 때문에 경증치매 진단비를 보다 유심히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손해보험사 약관에는 매월 지급하는 간병비가 빠져 있는 경우가 있어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치매보험 가입 전 주의할 점

▷만기·대리청구인 확인 ‘필수’

치매보험 가입 전에 꼼꼼히 확인해봐야 할 사항도 있다. 일단 만기가 90세 이상인 상품이 좋다. 치매는 나이가 들수록 발생 위험이 커진다. 전체 치매 환자 60% 이상은 80세 이상이다. 80세까지만 보장되는 상품도 꽤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노후 목돈이나 은퇴 후 연금 마련 목적으로 치매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필패다. 특히 해지환급금이 없는 대신 보험료를 낮춘 ‘무해지환급형’은 중도해지 시 납입보험료를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치매보험은 특성상 치매로 진단받은 본인이 스스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험에 가입하고도 보험금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정대리청구인제도’가 마련돼 있다. 보험금을 직접 청구할 수 없는 사정에 대비해 가족이 대신 청구할 수 있도록 미리 ‘대리청구인’을 지정할 수 있는 제도다. 가입 시 대리청구인 지정을 꼭 챙기자.

치매보험상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서둘러 상품에 가입하는 편이 좋을 수 있다. 최근 업계에서 잇달아 치매보험을 내놓고 있지만 언제고 상품이 사라지거나 보장 내역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고려하지 않고 서둘러 상품을 선보이는 탓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경증치매 환자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리스크 측정에 실패했을 경우 향후 손실이 날 가능성이 높다. ‘민원 리스크’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치매 판단 기준인 CDR의 모호함 때문이다. 객관적 판단이 애매한 탓에 판정 불복 시비가 나타날 수 있다. 진단하는 의사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고 치매 증상을 고의로 연기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증치매 판단 기준이 다소 모호한 탓에 보험사들이 자체 판단 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도 있다. 손해율이나 민원 리스크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손해율 조정을 받지 않은 시장 경쟁 초기에 보험에 가입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3호 (2019.01.23~2019.0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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