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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영칼럼] 우려되는 연금사회주의

  • 홍기영 기자
  • 입력 : 2019.01.21 09:36:52
국민연금이 한진 일가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지난해 비리와 갑질 논란이 일자, 국민연금은 공개서한을 보내 한진 경영진 면담을 시도했다. 국민연금은 16일 기금운용위를 열고 ‘땅콩 회항’, 갑질 폭행, 탈세 의혹 등 비리·일탈 행위를 저지른 조양호 한진그룹 일가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로 했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은 지난해 7월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의 첫 번째 대상이다.

물의를 일으킨 한진 일가에 대한 여론의 눈총은 매우 따갑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에서 시작된 각종 일탈은 국민적 공분을 낳았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 진에어 등기임원 불법 재직 의혹도 반감을 키웠다.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언 동영상이 공개된 데다 가족의 밀수, 관세포탈,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등과 관련된 의혹이 잇따랐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인하대 편법 입학 의혹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한때 대한항공 관계사인 진에어 면허 취소까지 검토했다.

재계 14위 한진그룹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각종 오너 리스크로 기업가치가 떨어져 기금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7.34%를 보유한 3대 주주이자, 대한항공 지분을 12.45% 보유한 2대 주주다. 3월 한진칼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어떤 수단을 동원할지 주목된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관련된 국민연금 권한은 임원 선임·해임과 직무 정지, 정관 변경, 회사 합병·분할 등 10가지에 이른다.

한진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 시장의 관심은 국민연금이 조 회장 일가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면서 신규 이사진을 선임하는 등 지배구조 관련 주주제안에 나설지에 모아진다. 대한항공 대표이사인 조양호 회장은 3월 임기가 만료된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 연임에 적극적인 반대표를 행사할 경우 한진그룹 경영 전반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더욱이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강성부펀드)와 연합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KCGI는 지분율을 10.71%로 늘린 한진칼 2대 주주다. KCGI는 약 40% 지분을 가진 소액주주의 동참을 이끄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번 사안은 민간기업 경영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의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국민연금은 일단, 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를 위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의지에 따라 국민연금의 주주총회 영향력은 갈수록 커진다. 주요 기업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오는 2025년에는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9%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소중한 재산을 성실히 운용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공권력을 동원해 특정 기업집단을 궁지에 몰아넣는 과잉 대응 가능성에 경계론이 대두된다. 정부가 괘씸죄에 걸린 기업 때리기에 몰두하다가는 부작용만 커진다. 세상의 모든 공격과 비난에도 현재 한진 일가에서 구속된 사람은 없다. 기업인이 사회적 신뢰를 잃었다고 경영권을 빼앗는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기업 경영에 대한 지나친 개입, 낙하산 인사,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경우 기업활동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경제 환경이 나라 안팎으로 악화일로다. 15일 청와대 기업인과의 대화에 한진은 초대받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업인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현장의 어려움을 신속하게 해소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기업인 스스로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회복하고 정부도 기업인 사기를 북돋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3호 (2019.01.23~2019.0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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