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부터 추진된 '면' 단위 유산보존…손의원 의혹 후폭풍 맞나

이기환 선임기자
등록문화재 제718호가 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건물들. 점 단위의 등록에서 선 단위 면 단위로 지정한 첫번째 사례이다.|문화재청 제공

등록문화재 제718호가 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건물들. 점 단위의 등록에서 선 단위 면 단위로 지정한 첫번째 사례이다.|문화재청 제공

손혜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의 투기의혹으로 쟁점화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계획의 모체는 2007년부터 추진된 문화재청의 ‘역사문화거리 조성’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2007년 당시 기존의 점(點) 단위 중심의 등록문화재(근대유산) 체계를 선(線)과 면(面) 단위로 확장해서 가치를 극대화하자는 취지로 역사문화거리 조성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대상구역. 11만4000㎡ 규모이다.|문화재청 제공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대상구역. 11만4000㎡ 규모이다.|문화재청 제공

안형순 문화재청 근대유산과장은 “문화재청은 당시 ‘근대 건축문화유산 보존 활성화를 위한 등록문화재 제도개선’과 관련된 연구용역까지 받아 추진했다”고 전했다. 당시의 용역보고서는 ‘선·면 단위의 보전 빛 활용’을 권하고 있다. 용역보고서는 당시 면단위 역사문화지역 지정을 위한 시범지역으로 인천 옛 조계지 지역과 군산 원도심, 나주 영산포 지역 등 3곳을 꼽았다. 하지만 이 계획은 지지부진했다.

안 과장은 “당시만 해도 문화재 등록이 혹여 재산가치를 하락시키지 않을까 저어한 주민들의 소극적인 반응 때문에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고 시들해졌다”고 밝혔다.

군산 근대역사문화공간. 군산은 ‘근대항만 역사공간 재생’의 개념으로 등록됐다.|문화재청 제공

군산 근대역사문화공간. 군산은 ‘근대항만 역사공간 재생’의 개념으로 등록됐다.|문화재청 제공

그러나 이 계획은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기존에는 동네를 완전히 철거하는 재건축·재개발 형식의 정비사업과 달리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도심환경의 개선을 꾀하는 사업이다. 인구감소, 산업구조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사회·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문화·환경적인 측면까지 고려해서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군산 근대항만역사문화공간 현황도.|문화제청 제공

군산 근대항만역사문화공간 현황도.|문화제청 제공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추진되자 10년간 지지부진했던 ‘역사문화거리’ 조성계획은 ‘지역의 근현대문화유산 보존·활용 확대’라는 제목으로 일약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국정과제 67-5)에 포함됐다. 역사상징공간을 시간의 흔적과 기억을 간직한 지역재생의 핵심축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문화재청장은 국무총리를 워원장으로 한 도시재생 뉴딜 활성화 대책특별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문화거리’는 ‘근대역사문화공간’ 계획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문화재청이 공개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이 사업의 롤모델은 1980년 미 연방정부가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벌여온 풀뿌리 지역재생 운동인 ‘메인스트리트 프로그램(역사거리 조성 사업)이다. 지정문화재(국보·보물 및 시도유형문화재)와 달리 얼마든지 활용가능한 등록문화재(근·현대문화유산)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문화재와 지역이 어울리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문화유산이 재산권을 침해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지역의 원천자산이자 자랑거리로 유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 바로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취지다.

이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문화 재생(문체부), 주거 재생(국토부), 근대항만 재생(해수부), 전통시장 재생(중기부) 등 다른 부처의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계획아래 추진됐다.

추진 계획의 하나로 2018년 1~4월 실시한 것이 바로 시범도시 공모 사업이다. 근대건축유산이 집적된 지역의 역사적 상징공간으로서 활용가치가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 지난해 4월 말 마감 결과 11개 사업(10개 시도)이 공모했으며 그 중 이번에 논란을 빚은 전남 목포를 비롯해 전북 군산, 경북 영주 등 3곳의 사업이 최종 낙점됐다.

영주 영광 이발관. 영주의 경우 ‘근대생활사 역사공간 재생’의 개념으로 등록됐다.|문화재청 제공

영주 영광 이발관. 영주의 경우 ‘근대생활사 역사공간 재생’의 개념으로 등록됐다.|문화재청 제공

추진 계획안에 따르면 세 도시의 특화 방안은 ‘근대도시 변천과 경제생활사 공간 재생’(목포), ‘근대항만 역사공간 재생’(군산), 근대생활사 역사공간 재생(영주) 등이다. 이중 목포의 경우는 ‘1897년 개항 이후 격자형 도로망에 의한 관공서와 학교, 주거 상업시설 배치 등 근대도시 계획과 생활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근대건축유산이 집중돼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이 공간 중에 있던 일본식 가옥과 벽돌창고, 부립병원 관사, 교회 건물 등 16곳은 지난해 6월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출석위원 9명 전원의 찬성으로 등록문화재가 됐다.

영주 근대역사문화 거리 현황도. |문화재청 제공

영주 근대역사문화 거리 현황도. |문화재청 제공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2023년까지 해마다 50억~100억원의 국비가 지원될 계획이며, 올해는 55억1000만원이 투입된다,

문화재위원인 이광표 서원대 교수(문화유산학)는 “손의원의 투기의혹은 철저하게 밝혀야겠지만 이것 때문에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의 취지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면서 “문화, 특히 근대산업유산 중심의 도시재생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했다.

역시 문화재위원인 안창모 경기대 교수(건축대학원)는 “이번 논란이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나 구간이 재산권의 걸림돌이 아니라 투기 의혹을 받을 정도로 가치를 인정 받는 사회분위기가 되었다는 역설적인 촌평을 할 수도 있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5~10년 사이 오래된 건물의 리노베이션이 건축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하며 “이번 논란에도 앞으로도 면 단위의 보존은 근대 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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