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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P-ROM 운동
활기찬 사족 보행을 위하여

입력 : 
2019-01-16 1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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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순이’를 만났다. 뒷다리를 심하게 절길래 반려인에게 다쳤냐고 물으니 슬개골 탈구 4기란다. 두 살배기 순이는 얼마 전까지도 깨발랄하게 뛰놀던 댕댕이라 적지않게 놀랬다. 2기 진단을 받은 지 열흘도 안 돼 4기로 진행됐다며 당혹해하는 그이는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수리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수리 역시 슬개골 탈구 2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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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수리를 붙든다. “고갱님, 관절 운동하실 시간입니다.” 새해부터 시작된 나와 수리의 첫 스케줄이다. 일단 릴렉스 마사지부터. 탈구가 있는 오른쪽 다리가 위로 향하도록 눕히고 몸통을 훑어 밤새 굳은 몸을 풀어 준다. 그런 뒤 무릎 주위를 5분 정도 문지르고, 본격적인 관절 운동에 들어간다. 왼손으로 무릎 관절 위의 넙다리뼈를 잡고 오른손으로 발목 관절을 잡은 상태에서 발목 관절이 엉덩이에 닿을 때까지 천천히 구부리는데, 이때 구부리는 다리가 지면과 평행을 유지해야 한다. 구부리기 20회가 끝나면 다리를 앞쪽으로 뻗어 10초간 이완 스트레칭을 해 준다.

다음으로 엉덩이 관절 운동. 왼손으로 넙다리뼈 가장 위쪽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무릎 관절을 잡아 천천히 360도 회전한다. 역시 20회 반복하고, 이번에는 다리를 뒤로 쭉 뻗어 스트레칭 해 주면 모닝 마사지 끄읕! 이 과정을 자기 전에 한 번 더 반복한다. 운동 전 온찜질과 운동 후 냉찜질을 해 주면 더 효과적이라는데, 미안하게도 나의 부지런함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수리 역시 아직은 20회를 채우지 못하고 몸을 뒤챈다. 갈 길은 멀지만, 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P-ROM(Passive Range Of Motion, 수동적 관절 가동 범위)’라 불리는 이 운동의 목적은 슬개골 탈구를 예방하는 것이 일차적이지만, 이미 발병한 경우라도 관절 운동 범위가 축소되는 것을 막고 다리의 기능 저하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꾸준히 하면 혈액과 림프액 순환이 좋아지고 관절낭액이 증가해 움직임이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반려인에게 ‘슬개골 탈구’는 호환 마마보다 두려운 대상이다. 대개가 타고난 유전적 영향에 의존하기 때문에 반려인으로서는 어느 날 느닷없이 당할 수밖에 없달까.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외상이나 잘못된 생활 습관을 막아 발병 시기와 진행 속도를 늦추는 정도일 게다. 반려동물이 아픈 채로 보내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여 주는 일 말이다.

운동 외에도 수시로 체크해야 할 것이 많다. 슬개골 탈구나 허리 디스크 같은 관절 질환의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미끄러운 바닥(70%). 발바닥 패드가 털에 덮이지 않았는지 종종 확인하고, 마룻바닥에는 러그나 매트를 깐다. 매트는 너무 푹신한 것은 피하고, 러그는 발톱에 걸리지 않고 세탁이 쉬운 재질로 선택하면 좋다. 최근에는 마룻바닥을 유리 막으로 코팅해 반려동물의 미끄러짐을 방지하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활동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두 발로 곧추서거나 무리하게 점프하지 않게 하고, 쇼파나 침대에 오르내릴 때는 계단을 이용하게 한다. 산책도 필수다. 체중을 관리하지 않으면 무릎과 엉덩이 그리고 척추 관절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슬개골 탈구 2기의 장년견을 모신 우리 집 바닥은 이미 각종 매트로 누덕누덕하다. 침대 자리는 요가 대신했고, 바닥에서 지내다 보니 소파는 장식품이 되어 간다. 그래도 슬개골 탈구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나는 오늘도 군소리 없이 고갱님의 모닝 마사지로 하루를 연다.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유튜브 ‘Union Lake Veterinary Hospital’ 동영상 캡처,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3호 (19.01.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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