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밀레니얼 라이프스타일-욜로족 vs 파이어족

입력 : 
2019-01-16 10:19:52

글자크기 설정

한 번뿐인 삶. 이왕이면 ‘뽀대’ 나게 살고 싶은 게 우리 속내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뽀대 나는 것일까? 맘 내키는 대로 살고 싶지만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돈을 모으고 마음대로 살려니 너무 늦을 것 같다. 현실을 무시한 채 살아가기에는 미래에 대한 답이 없고, 역으로 하려니 시간이 없다. 삶의 균형 맞추기가 참 어렵다. ‘욜로(yolo)’에 대항하는 ‘파이어(fire)’는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서 ‘자발적 조기은퇴’를 노리는 움직임을 뜻한다. 욜로족과 파이어족으로 대변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속에서 잠시나마 답을 찾아보자.

2019년의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한 기분도 잠시, 그냥 다시금 우리네 삶의 하루를 살아간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것 같다. 문득 한 편의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꺼내든 작품은 피터 위어 감독의 1989년 작 ‘죽은 시인의 사회’였다. 이제는 30년이 훌쩍 넘어, 클래식이 된 작품이다.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의 싱싱한 이미지가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너무 앳된 외모의 에단 호크가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현재까지도 나를 잡아당기는 건 딱 두 개의 대사다. 그중 하나는 “오 캡틴, 마이 캡틴(Oh Captain, My Captain)”이며, 두 번째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이 두 대사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청춘에 대한 모든 것을 상징한다. 특히 라틴어 ‘카르페 디엠’은 현대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라이프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하는 교집합을 형성한다.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조금 더 확장하면 ‘현재를 즐겨라’ 정도이다. 사실 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굉장히 이롭게 활용하라는 것으로 이해되는 인문학적 구절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대단히 자본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카르페 디엠을 잇는 또 다른 용어가 절로 떠오른다. ‘욜로(YOLO)’가 바로 그것이다.

사진설명
▶YOLO 하시나요?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이다. 직역하면 ‘단 한 번 사는 인생’이다. 이 욜로가 현대 청춘을 표상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삶을 뒤돌아보면 그런 듯하다. 결혼 적령기를 꽤 벗어나 뒤늦게 유부남이 된 필자는, 그러니까 꽤 오랫동안 싱글 라이프를 즐겼다. 솔직히 노년은 고사하고 다가오는 한 해를 위한 준비도 없이 단지 현재를 살았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해야 했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손에 쥐어야 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떠났고, 맛있는 음식이 당기면 사먹었다. 저축이라는 단어는 뇌리 속에서 잊혀진 고대의 유물 같은 것이었다.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통장을 믿은 탓에 언제나 마이너스였다. 그러니까 나는 빚을 진 채 버는 돈보다 더 많이 지출하며 나만의 현재를 즐겼던 셈이다. 속내를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매거진 에디터로 살아가며 즐기는 내 삶을 두고 ‘욜로’라며 부추겼고, 내심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사진설명
이 바라봄의 시선은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속으로 ‘저렇게 살아서 어떻게 장가나 가겠어?’ 또는 ‘미래 없이 살다가 직장이라도 잃으면 어쩌려고?’ 등의 뒷담화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욜로족이라고 치부하며 살아왔던 내 라이프스타일에 큰 변화가 도래했다. 남들처럼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내가 지켜야 하는 가정이 생겼다. 재정 관념이 미약한 나는 아내에게 모든 걸 위탁했고, 나의 지갑은 싱글로 살아갈 때에 비해 턱없이 얇아졌다. 월급 전액을 맡기고 빠듯한 용돈을 타 쓰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인생의 화려한 무대는 막을 내린 듯했다. 남들보다 늦게 경제적 관념이 생기고, 이제야 경제적 삶을 위한 그리고 노후를 위한 저축이라는 것도 시작하고 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나의 노후는 피폐할지도 모른다. 늦게 시작한 만큼 그 총액도 분명 상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라이프를 지탱했던 ‘욜로’라는 용어가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욜로 라이프라는 것은 어쩌면 ‘경험’의 발화 장치로 사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면서 살자’에서 ‘즐긴다’는 것이 동시대를 지탱하는 많은 트렌드들의 경험이기에 그렇다. 이 경험은 또 다른 삶을 위한 근간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지금의 직업이 아닌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었을 테고, 또 누군가는 미식 로드를 통해 다른 경로를 발견했을 것이니까. 나 역시 그렇다. 이 경험을 통해 단순한 잡지쟁이에서 폭넓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포기한 지금의 청춘 세대들에서 통용되는 욜로. 이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포기했기에 얻을 수 있는 경험으로서의 욜로 라이프가 다시금 포기했던 것을 메울 수 있는 완충제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얻은 경험들이 자본으로 축적되어 갈 때 우리는 이제 ‘파이어(FIRE)’된 라이프를 꿈꾼다. ‘파이어족’이 올해의 가장 핫한 트렌드로 떠올라서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이라는 것을 하면서부터 상상해 왔던 삶의 형태일 뿐이다.

사진설명
모두들 그렇지 않은가? 누구는 건물주가 되어서 임대료 수익으로 노후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한다. 어떤 이는 통장에 많은 돈을 넣어 두고 조금 일찍 은퇴해서 여행이나 다니며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필자의 경우는 동남아시아의 아열대 기후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태국을 아주 사랑한다. 그래서 40대 중반이 되면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상상을 꽤 오래 전부터 해 왔다. 물론 현실은 막막하다. 한국을 떠날 만큼의 자본도 없을뿐더러, 그곳에 간다 한들 생활비는 벌어야 할 터인데 대체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아무튼 그 꿈은 여전히 내 가슴 속 한편에 꼭 품어져 있다. 이렇게 자본 사회 속에서 경제 활동을 해온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바쁘게 일하지 않고, 즐겁게 살겠다는 의지를 언제나 지니고 살아왔다. 단지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태어난 젊은 고연봉 자린고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이 용어가 트렌드로 부상되었을 뿐이다. ▶FIRE 하셨나요?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족은 ‘조기 은퇴를 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미국의 2030 직장인들’로 이들을 설명했던 『월스트리트 저널』 때문에 널리 유포된 듯하다. “미국 내 상위 25개 고소득 직종 중 변호사는 평균 연봉 9만6678달러(한화 약 1억1000만 원)로 2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 시애틀에서 변호사로 근무 중인 실비아 홀(38세, 여성)은 11평짜리 소형 아파트에 살면서 한 달 식료품비로 75달러(한화 약 8만4000원)를 지출하는 절약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40세가 되는 2020년 조기 은퇴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졸 이상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미국의 2030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기 은퇴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월스트리트 저널』) 말 그대로 ‘벌 수 있을 때 악착같이 모아, 편안히 살아가자’는 트렌드를 ‘파이어 운동’이라 명명할 수 있다. 미국의 2030 직장인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 움직임은 “독립적인 삶을 위해 60대 은퇴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모토로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자발적 조기 은퇴를 추진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들은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조기 은퇴를 목표로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극단적 절약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예시로 등장한 실비아 홀은 고액 연봉자임에도 불구하고 욜로 라이프가 아닌 악착같은 절약 생활을 실천한다. 그 덕에 소득의 50~70%를 저축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소비를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은퇴 후 적정 금액을 200만 달러로 설정하고, 그걸 모으기 위해 마트 또는 식품 매장 할인 시간대를 이용하며 어지간한 거리는 도보로 이동한다. 심지어 넷플릭스를 친구 아이디로 즐긴다. 밀레니얼 세대의 신생 자린고비의 탄생인 셈이다.

사진설명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파이어 운동을 두고 영국 방송사 BBC는 “유례 없이 길고 지루한 금융 위기를 겪으며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파이어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짠테크’ 등의 용어가 청년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파이어족이 조기 은퇴를 위해 설정한 목표 자본은 대략 100만 달러 수준이다. 한화로는 약 11억 원 가량. 이를 모은 후 파이어족은 전액을 주식 또는 은행에 예치해 두고 이 수익으로 생활비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40대 초반에 은퇴하고, 은행 대출과 소비 생활이 수반하는 압박에서 벗어난 삶을 살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파이어 운동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직장에 대한 불만과 전통적인 사회 보장 제도의 붕괴, 불황 속에서 보다 안정된 삶에 대한 열망”이 가져온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밀레니얼의 부모 세대가 마땅한 노후 대책 없이 은퇴한 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본 청춘들이 이 운동의 주축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는 굉장히 이루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연봉이 미국 변호사만큼 되니 허리띠 졸라매고 악착같이 저축하고 투자하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모양새가 지속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파이어족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부상한 연유는 이해가 된다.
사진설명
▶FIRE하고, YOLO하는 삶 욜로와 파이어족 트렌드는 상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교집합을 형성한다. 물론 욜로 라이프를 즐기는 이에게 파이어족의 일상이 접목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욜로의 삶을 살았고, 욜로라는 경험을 통해 현재를 이룬 이들이 파이어족의 삶을 원하고 있음이 바로 그 교집합이다. 극과 극의 라이프스타일로 보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두 가지 라이프를 간절히 소망하기에 형성되는 접합점이다. 사실 욜로와 파이어의 근원적 의미는 굉장히 극단적이다. 하지만 현실로 그 용어들이 녹아들 때 꽤 의미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된다. 욜로라는 경험을 통해 생성된 현재의 일들이 다시금 ‘파이어’된 이후의 삶을 다시 욜로 라이프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욜로-파이어-욜로’의 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적절한 삶과의 타협이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사진설명
누구나 현실과 이상 사이의 끊임없는 충돌을 겪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줄다리기에 적절한 힘의 분배를 적용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일이다. 파이어족의 목표는 최대한 젊은 나이에 경제적 은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경제 활동의 은퇴라고 보기는 힘들다. 경제적 은퇴와 경제 활동 은퇴는 꽤 다른 의미를 지닌다.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점, 그러니까 욜로 라이프를 다시 재개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때가 경제적 은퇴 시점이 아닐까 싶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예를 들어 필자의 경우는 강원도 양양 바닷가 어딘가에 터를 잡고 서핑을 즐기며 슬로 라이프를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 이 정도라면 경제적 은퇴 가능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더라도 경제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사진설명
젊은 시절 축적한 자본으로 이후 삶의 최소 기반을 마련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가며, 하고 싶은 일을 경제 활동으로 연계시키며 삶을 지속한다. 큰돈은 벌 수 없더라도 바닷가에서 조그마한 카페 하나를 열어 사회적 활동은 물론 경제 활동을 일정 부분 지속할 수 있다면, 지속 가능한 욜로 라이프가 완성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욜로와 파이어의 순환적 조우는 어쩌면 동시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확산된 소확행, 라곰, 휘게 등의 형태와 또 다른 접합을 이루게 된다. 파이어족이 엄청난 자본을 축적해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만 한다. 물론 운이 좋게 주식이 상승해서, 가상 화폐가 폭발해서, 로또에 당첨되거나 부동산 대박을 맞을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파이어족은 우리를 옭아매는 자본주의의 족쇄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발현된 움직임이다. 어느 정도 벌어 두고, 이를 영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재미있는 일을 통해 최소의 수익을 얻으며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단지 그 속에서 자본의 속박이 조금이나마 덜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속에 내재된 핵심이 아닐까?
사진설명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를 실행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자신의 일이 지루하고 싫다는 이유만으로 파이어족이 되려고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파이어를 구현하고 달성한 후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돈을 모은다고 조기 은퇴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아야 성공이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최고의 권력을 가져야 성공했다고 자신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사는 삶을 성공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이 기준은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소통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욜로 라이프, 파이어 운동 등이 이와 같은 성공적인 행복의 삶의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조기 은퇴를 위한 목표 금액 역시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지표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라이프스타일이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어떤 삶의 방식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언제나 그렇듯 동네 작은 카페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커피 향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되고, 결국 조기 은퇴 후의 욜로 라이프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3호 (19.01.22)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