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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blin in ‘싱 스트리트 Sing Street’…“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마!”

입력 : 
2019-01-16 17: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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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 아일랜드어로 ‘단단히 다져진 땅’, 영어로는 ‘낮고 검은 곳’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영화의 주인공 15세 소년 코너는 노래한다. ‘핸들을 잡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리고 달려, 마치 이걸 훔친 듯이, 달려 이건 네 인생이야,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넌 로큰롤처럼 사는 걸 배워야 해. 페달을 밟아. 그리고 달려’라고. 청춘의 통과 의례, 그 엄숙하면서도 미숙함이 묻어나는 누구나 경험했던 시기를 존 카니는 노래와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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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간의 독립 의지와 공존하는 분단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아일랜드 인구래야 400만 명이 조금 넘고 더블린 역시 50만 명을 약간 상회하는, 서울로 치면 한 개 구 정도 규모다. 우리가 흔히 아일랜드를 영국의 한 지방 정도로 착각할 수 있지만 아일랜드에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면 이방인에게 매우 친절한 ‘더블리너’조차도 정색한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영국이라 칭하는 것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를 통합하고, 아일랜드는 정확하게 ‘남아일랜드 공화국’이다. 국명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아일랜드는 오랜 시간 독립을 위한 투쟁과 분단을 겪은 국가다.

아일랜드 땅에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은 기원 전 5세기 경이다. 프랑스계 갈루아족이 토종인 게일족과 공존했고 그 뒤 켈트족, 바이킹족이 자리를 잡았다. 8세기부터 바이킹족의 침공에 시달렸던 아일랜드에 비극이 닥친 것은 11세기경 영국 헨리 2세 때다. 헨리 2세의 침공으로 아일랜드는 더블린을 함락당하며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았다. 그때부터 아일랜드인들의 끈질긴 독립 항쟁이 계속되었다. 그 뒤 16세기, 헨리 8세의 아일랜드 재침공이 이어지고 아일랜드는 20세기 초까지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되었다. 11세기부터 약 800여 년을 이어 온 아일랜드의 기나긴 독립투쟁의 역사는 현대에 들어와 비극적인 분단으로 이어졌다. 1916년 부활절 봉기를 통해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렸지만 헨리 8세 때부터 시작해 크롬웰 때 극성을 이룬 이주 정책으로 북아일랜드에는 개신교인들이 거주했고 이들은 아일랜드의 정치, 경제 권력을 지배했다. 상대적으로 남아일랜드에는 가톨릭 교도들이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독립의 정신을 이어갔다. 1930년대 실질적인 독립에서 영국에 남겠다는 북아일랜드를 제외하고 남아일랜드는 독립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나라로만 보이는 아일랜드에도 수백 년의 회한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20세기는 격동의 시대였다. 독립, 분단 그리고 계속된 경제 불황으로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영국으로 건너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인 시기도 있었다. 마치 영국인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이 희망이듯. 물론 영국으로 간다고 무엇인가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았지만 아일랜드를 떠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런 어두운 기운은 무려 1997년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그 후 적극적인 개방 정책으로 급성장을 이룬 아일랜드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근래 아일랜드 특히 더블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 유명한 펍인 템플 바,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 강, 그리고 필수 관광 코스인 기네스 양조장, 대부분 수백 년이 넘은 오래된 성과 건축물들…. 하지만 무엇보다 더블린은 걷기 좋은 도시다. 걷기 좋다는 것은 사색과 동의어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예이츠,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비평가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등이 이 사색의 도시 더블린에서 탄생한 문호들이다. 20세기 초 동시대에 세기를 풍미한 문학계의 거장들이 한꺼번에 출현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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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더블린을 사랑해서 자세히 묘사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글로 남겼다. 어떤 글에는 청춘의 졸렬함, 자괴감, 야망, 열등감도 있었고 또 어떤 글에서는 위선과 타락의 기운으로 가득한 더블린을 그리기도 했다. 한때 이런 솔직한 글로 특히 제임스 조이스는 책 한 권 내기 어려웠고 더블린 사람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가 더블린과 더블리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대문호들의 글이 너무나 아날로그적이고 어렵다면 여기 영화가 있다. ‘원스’와 ‘비긴 어게인’으로 아일랜드와 더블린의 감성을 시적 언어와 음악으로 풀어낸 존 카니의 ‘싱 스트리트’다. 이 영화는 1980년대로 훌쩍 떠난다. 그 시대 암울함이 지배했던 더블린에서 희망도, 용기도 상실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보냈던 감수성 예민한 10대들. 그들에게 찾아온 첫사랑, 노래 그리고 희망과 도전을 한데 버무린 이 영화는 20세기 더블린의 자화상이다. 더블린. 아일랜드어로 ‘단단히 다져진 땅’, 영어로는 ‘낮고 검은 곳’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영화의 주인공 15세 소년 ‘코너’는 노래한다. ‘핸들을 잡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리고 달려, 마치 이걸 훔친 듯이, 달려 이건 네 인생이야,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넌 로큰롤처럼 사는 걸 배워야 해. 페달을 밟아. 그리고 달려’라고. 청춘의 통과 의례, 그 엄숙하면서도 미숙함이 묻어나는 누구나 경험했던 시기를 존 카니는 노래와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문호의 땅 더블린, 세기를 통과했던 갈등과 회한 그리고 무기력을 딛고 일어선 기운을 느끼겠다면 그곳에서는 뛰지 말고 걸어야 한다. 그래야 노래가 들리고 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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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aum 영화 ‘싱 스트리트’
▶사랑을 위해 밴드를 만들자 1985년 더블린. 도시는 마치 마비된 것처럼 멈춰 있다. 경제 불황, 급증한 실업률로 아일랜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코너(퍼디아 윌시 필로)의 집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고 어머니는 한 달 동안 중개 수수료를 한 푼도 챙기지 못했다. 백수인 형 브랜든(잭 레이너)은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음악 듣고 담배 피는 것이 일이다. 취업이 목적인 누나는 공부에만 매달려 있다. 식사 시간. 아버지가 경제 불황 등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본격적인 용건을 이야기한다.

“코너, 집안 경제 상황이 말이 아니구나. 온 나라가 다 그렇지만. 그래서 네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할 것 같아. 그 학교도 전통 있는 학교란다.”

코너는 사립 학교를 그만두고 싱 스트리트에 있는 학교로 전학한다. 첫 등굣길. 코너는 멘붕에 빠진다. 미션 스쿨로 알고 있었는데 이 학교, 액션 스쿨이다. 아이들은 침을 뱉고, 잡은 쥐를 코너에게 던지고, 늘상 싸움질이다. 수업 시간, 라틴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술을 마시면서 프랑스어를 칠판에 적는다. 아이들은 잡담을 하고 심지어 교실에서 담배도 피운다. 이때 들어오는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코너를 부른다.

“코너, 우리 학교 교칙에는 검은색 신발만 신게 되어 있다. 너는 지금 갈색 신발을 신었구나. 내일 아침에 내 방에 들러서 검사를 받아라.”

다음 날, 교장실에 간 코너. 신발은 여전히 갈색이다. 교장 선생님의 안색이 변한다.

“어머니에게 새 신발을 사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신발을 살 여유가 없대요. 그냥 이 신발을 신겠어요.”

“코너,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신발을 벗어 내 방에 두고 오후 4시에 찾아가라. 너는 양말만 신으면 돼.” 코너는 양말만 신은 채 학교 생활을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코너를 괴롭힌다.

하굣길. 코너는 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라피나(루시 보인턴)를 발견한다. 담배를 물고 계단에 서 있는 소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코너는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거짓말을 한다.

“혹시 밴드 뮤직 비디오에 출연해 볼 생각 있어?”

“오! 너 밴드 하니? 프로듀서는 누구야?” 코너는 손짓으로 뒤에 있는 친구라고 한다. 친구는 손을 든다.

“그럼, 너 노래 하나 불러 봐.”

“여기서? 난 밖에서 노래 안 해.”

“수천 명 앞에서도 하면서 한 명 앞에서는 노래를 못 해?”

코너는 할 수 없이 아하의 ‘Take On Me’를 부른다. 어설프다. 라피나는 살짝 미소를 짓는다. 집에 온 코너는 형 브랜든에게 라피나를 이야기한다. 거실 TV에서는 영국 밴드 듀란듀란의 뮤직 비디오 ‘Rio’가 흘러나온다. 감탄하는 브랜든과 코너. 아버지는 시큰둥하다.

“저 봐, 쟤들은 라이브로 안 하잖아.”

“뮤직 비디오라는 거예요. 예술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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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을 위해 달려! 코너는 밴드를 모집한다. 학교에 공고문을 붙이고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이 지구상의 모든 악기를 다룬다’는 에이먼을 만난다. 그리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한 친구도 섭외한다. 비슷비슷한 처지의 친구 여섯이 모여 밴드가 결성되었다. 코너는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쓰고, 에이먼은 작곡을 한다. 여섯 명은 밴드 이름을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한다. 코너가 “라비 어때? 프랑스 말인데 ‘인생’이란 뜻이야.” “글쎄, 록밴드에 프랑스 말은 좀 그래, 래빗은 어때?” “넌 왜 그렇게 토끼에 집착하니?” “그럼, 싱 스트리트는? ‘거리에서 노래한다’는 뜻인데.” “좋다. 그럼 결정했어.”

여섯은 뮤직 비디오를 찍는다. 카우보이 의상에, 아버지 세대가 입던 옷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라피나가 등장한다. 라피나는 코너와 밴드를 본 후, “너희 화장을 좀 해야겠다”고 말한다. 어설프지만 밴드 싱 스트리트는 첫 뮤직 비디오 촬영을 마쳤다. 그날 저녁, 코너는 라피나를 집에 데려다 준다. 자전거로. 라피나의 집 앞. 그 순간, 자동차 경적이 울린다. 라피나의 남자 친구가 온 것이다. 차를 타고 가 버리는 라피나. 코너는 상실감에 휩싸인다. 라피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런던으로 가 모델 활동을 할 계획이다. 그 시대 모든 아일랜드 젊은이들의 유일한 희망처럼 잉글랜드로 건너간 것이다. 코너는 에이먼과 곡을 만든다. 사랑과 희망 그리고 좌절의 노래를.

아침, 온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선언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토니라는 남자 집으로 갈 것이고, 아버지는 이 집을 팔아 작은 곳으로 간다고 말하며 코너 삼남매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가족도 흩어지고, 라피나도 남자 친구와 곧 희망 없는 ‘이 섬, 아일랜드’를 떠나겠단다. 코너는 우울하다. 그럴수록 음악에 더욱 매달린다. 코너는 형 브랜든과 이야기한다. 코너에게 브랜든은 음악, 첫사랑, 인생에 관해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담자다.

“코너, 나 담배를 끊었어.” 코너는 시큰둥하게 답한다. “왜, 뭐 하려고.”

“나도 너처럼 자극을 받아 변하려고.” 브랜든의 말에 코너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기 이야기뿐이다. 고작 여자 아이에게 잘 보이려 밴드를 한다는 코너에게 브랜든은 화가 난다.

“코너, 나도 예전엔 기타를 잘 쳤고 멋지고 예쁜 여자들이랑 놀았어. 달리기도 학교에서 제일 잘했지. 넌 막내라 이 미친 가족한테 내가 투쟁해서 얻어낸 걸 거저 누리고 컸어. 사랑 없는 부부 사이에 난 항상 혼자였어. 그러다 네가 태어났지. 고맙게도. 넌 내가 닦아놓은 길을 편하게 걸어왔어. 아무 노력 없이. 날로 먹은 건 넌데 사람들은 날 비웃어. 골초에 대학 중퇴자라고. 다들 넌 칭찬하면서…. 하지만 나도, 나도 삶에 열정이 있었어.”

브랜든 역시 코너처럼 음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포기했다. 그렇게 인생이, 꿈이 좌절되어 지금은 방구석에서 낡은 LP판만 부여잡고 있다. 브랜든은 지친 것이다. 사랑 없는 가정에, 탈출구 없는 가난에. 그러면서도 자신은 담배와 약으로 하루하루 살지만 음악을 하겠다는, 사랑을 하겠다는 동생 코너를 응원하는 것이다.

밴드의 첫 공연 날. 코너는 라피나를 기다린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코너는 계속 문을 바라본다. 코너는 행복한 꿈을 꾼다. 수많은 사람들이 코너의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춘다. 아버지 어머니도 손을 맞잡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수염을 깔끔하게 깎은 형 브랜든도 있다. 물론 라피나도 환한 미소를 띠며 코너를 바라본다. 라피나의 남자 친구를 형 브랜들이 보기 좋게 넘어뜨리자 코너는 행복하다. 잠시 후, 코너는 현실로 돌아온다. 결국 공연장에는 부모님도, 라피나도, 형 브랜든도 오지 않았다. 코너는 라피나의 집으로 달려간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라피나의 어머니가 코너를 맞는다. “라피나는 어제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어.” 코너는 상실감에 젖는다. 그러면서도 코너는 노래를 만든다.

매일 라피나가 서 있던 계단을 습관처럼 보는 코너. 오늘도 고개를 들어 본다. 그 순간, 라피나가 보인다. 달려가는 코너.

두 사람은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라피나는 런던에서 남자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얼굴에는 멍까지 들었다.

“코너, 난 이래. 맥도널드에서 사람 구하던데, 거기서 일해도 날 좋아해줄래? ‘감자튀김 드려요?’ 하고 말이야.”

“너만 행복하다면.”

“네 문제는 행복한 슬픔을 모른단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행복한 슬픔!”

코너는 여전히 자신을 어린 남자 아이로 취급하는 라피나가 서운하다. 코너는 형 브랜든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난 그냥 걔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해. 선글라스를 벗으면 눈동자가… 구름이 걷힌 보름달 같아. 가끔은 쳐다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코너는 라피나와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바닷가로 간다. 코너는 라피나에게 ‘바다에 뛰어드는 척’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라피나는 진짜 바다에 뛰어든다. 허우적거리는 라피나. 코너는 바다에 뛰어들어 라피나를 안고 나온다. 물에 흠뻑 젖은 코너와 라피나.

“뭐한 거야, 정말 수영 못해?” “응!” “근데 왜 그랬어?”

“우리 작품을 위해서. 코너, 절대 적당히 해선 안 돼. 알아들었어?” 코너는 라피나와 키스를 한다.

코너는 학교에서 밴드 공연을 연다. 학생들은 음악에 맞춰 그동안 학칙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받던 청춘을 마음껏 발산한다. 교장 선생님의 얼굴이 인쇄된 가면을 쓴 밴드와 학생들. 그들에게 이 순간은 자유다. 코너의 목소리로 ‘Drive It Like You Stole It’이 흘러나온다.

‘넌 막을 수 없어. 내가 만신창이에서 벗어나는 걸. 넌 이해할 수 없어. 내가 스스로 삶을 바꿔 가는 걸. 난 너와의 전쟁을 끝내려고 해. 하지만 넌 내버려 두지 못하고 뭔가를 더 얻기 위해 자꾸 돌아오잖아. 자유, 내가 되찾을 거야. 떠날 거야, 돌아오지 않아. 캐딜락, 이걸 막 훔쳤을 때, 천사의 부름을 들었어. 이건 네 인생이야,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핸들을 잡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리고 달려, 마치 이걸 훔친 듯이, 달려 이건 네 인생이야,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넌 로큰롤처럼 사는 걸 배워야 해. 페달을 밟아. 그리고 달려, 마치 이걸 훔친 듯이.’



라피나가 들어온다. 코너는 라피나를 바라보며 사랑을 노래한다. 코너는 라피나의 손을 잡고 형 브랜든을 찾는다.

“형, 할아버지 배를 타고 영국으로 갈 거야.”

“영국에 아는 사람 있어? 영국 돈은 있어?”

“아니, 라피나는 포트폴리오, 나는 데모 데이프랑 비디오뿐이야.”

“언제 갈 거야?”

“지금!”

브랜든은 두 사람을 부둣가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라피나와 코너를 꼭 안아 준다. 두 사람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바람이 몰아치지만 코너와 라피나는 손을 맞잡는다. 멀어지는 배를 바라보는 브랜든. 그는 말한다. ‘그래, 기회란 금세 왔다 사라져. 계속 가. 네가 옳아.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마. 한 번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마. 네 인생을 위해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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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을 생각하다 영화 ‘원스’와 ‘비긴 어게인’의 존 카니 감독이 2016년에 만든 이 영화는 소년의 첫사랑과 성장이 따뜻한 시선으로 담겨 있다. 첫눈에 반한 그녀를 위해 인생 첫 번째 노래를 만든 소년의 가슴 떨리는 설렘과 첫사랑뿐만 아니라 코너를 통해 그 때 꼭 겪어야만 했던 성장통도 보여 준다. 모든 것이 처음이던 시절, 점차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 또한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존 카니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음악이 이 영화에서도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원스’의 ‘Falling Slowly’,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룬5의 애덤 리바인의 매력적인 음색이 돋보였던 ‘비긴 어게인’의 ‘Lost Stars’, 이 두 곡의 공통점이 영화와 어우러지는 ‘진한 감성’ 그리고 ‘긴 여운’에 있었다면 ‘싱 스트리트’에서의 음악은 한마디로 ‘에너지’다. 주인공의 연령대가 10대로 바뀌면서 에너지까지 재충전된 것처럼 이번 OST에서는 싱그러움과 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특히 주인공 코너가 위험한 눈을 가진 소녀 라피나를 위해 만든 첫 음악 ‘The Riddle Of The Model’은 그녀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가사에 로큰롤과 브리티시 팝의 선율이 아름답다. 또한 메인 곡 ‘Drive It Like You Stole It’은 음악을 통해 성장하는 코너를 보여 주는 곡으로, 청춘에게 보내는 응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Up’, ‘To Find You’, ‘Girls’, ‘Brown Shoes’와 같이 다양한 템포의 오리지널 스코어 역시 영화를 기름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의 모습을 담은 영화 ‘싱 스트리트’는 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시대를 재현해 내는 데 특히 큰 힘을 보탠 것은 바로 음악이다. 듀란듀란의 ‘Rio’, 아하의 ‘Take on me’, 더 클래시의 ‘I Fought The Law’, 모터헤드의 ‘Stay Clean’, 더 큐어의 ‘Inbetween Days’ 더 잼의 ‘Town Called Malice’ 등의 당시 노래가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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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다. 당시 아일랜드는 경제 불황에 시달렸다.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었고 직장을 다니던 세대는 하나둘씩 일자리를 잃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역시 생기를 잃은 도시가 되었다. 에너지가 사라진 도시의 청년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덧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코너는 싱 스트리트 밴드의 정체성을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희망이다. 지금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절망의 밑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자기 성찰의 작은 반전의 기운인 것이다. 아일랜드는 오랜 시간 투쟁의 시대를 살았다. 수백 년 잉글랜드 지배하에서 독립을 얻기 위해 부딪쳤던 억압과 통제를 딛고 찾은 ‘자유의 성취’.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리라 믿었다. 독립된 국가에서, 자유로운 사상과 생각으로 자신들을 지배했던 잉글랜드를 능가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20세기 아일랜드에 닥친 것은 두 번의 전쟁 그리고 지난할 정도로 더딘 성장이었다. 그 속에서 아일랜드는 조금씩 발전했고 그 발전을 사람들은 ’자본주의적‘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20세기 초엽, 아일랜드를 사로잡은 기운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발전’이었다. 그 결과 자칭 중산충이 형성되고 사회는 두터워지고 사람들의 지갑은 조금씩 불러 갔지만 타락과 이기심, 위선의 가면은 더욱 많아졌다. 그 기운은 20세기 말엽까지 지속되었다. 물론 지금의 아일랜드, 더블린은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성장과 안정된 사회를 구축한 국가가 되었다. 국민 소득은 4만 달러를 상회하고 해마다 찾아오는 관광객은 늘어나고 세계 사람들은 ‘아일랜드적인 것’을 부러 찾기도 한다. 아일랜드, 더블린이 브랜드가 된 것이다.

우리가 더블린에서 가장 ‘더블린적인 그 무엇’을 찾는다면 그것은 오래된 건축물도, 시민의 함성이 깃든 광장도, 뜨거운 신심이 넘쳐흐르는 성당도 그리고 아일랜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기네스 맥주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물질보다 한 인간을 떠올리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더블린이 낳고 키우고 그리고 버렸지만 결코 더블린을 잊지 않은 20세기의 천재 작가 제임스 조이스다. 20세기 현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작가, 현대 소설에서 제임스 조이스 이전과 이후로 나눈 작가라는 칭송을 받는 그는 문학의 형식과 내용을 의식과 그 의식의 뒤에 숨은 내면의 편린까지 쪼개 새로운 구성을 시도한 실험가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아일랜드로 돌아오지 않고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를 수십 년간 전전했던 제임스 조이스. 그는 더블린을 무척 사랑했나 보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더블린과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그리고 문제적 작품인 『율리시스』를 통해 아일랜드와 더블린 3부작을 완성했다. 이 세 작품 모두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인간의 본능과 내면 그리고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미묘한 심리의 흔들림을 포착해 이를 세상에 드러냈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정교하다. 물론 눈으로는 읽히지만 머리 속에서는 뒤엉켜 버리는 난해함도 제임스 조이스 글의 특징이다. 1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더블린 사람들』은 20세기 초 아일랜드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어두운 단면을 그려냈다. 어린아이부터 학생, 청년, 중장년으로 마치 연대기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단편의 이야기는 질투, 나른한 게으름, 무관심, 위선, 욕망, 경멸, 속물 등 인간이 상대적 비교에서 야기하는 수많은 본능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제임스 조이스, 그는 누구보다 더블린을 사랑했다. 비록 사후에 그를 추모하고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이 더블린에 그의 동상과 흉상을 세웠지만 그는 수십 년 세월을 타국에서 전전하면서도 더블린을 잊지 않았다. 제임스 조이스는 20세기 초의 아일랜드의 가장 고난한 시기와 함께했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진심으로 글로 남겼다. 비록 그 순간, 민낯을 드러내는 부끄러움에 더블린 사람들은 제임스 조이스를 비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제임스 조이스는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더블린 사람들』에서 다룬 인물들은 존 카니의 ‘싱 스트리트’의 청춘들과 닮아 있다. 몇십 년의 격차를 뛰어넘는 그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는 것일 것이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Daum영화, 위키피디아, 제임스 조이스센터 홈페이지 홈페이지 인용 및 참조 『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저 / 이종일 역 / 민음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3호 (19.01.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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