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친환경 ‘그린 와인’ 전성시대-유기농·바이오·내추럴…웰빙·스토리에 매료

  • 노승욱 기자
  • 입력 : 2019.01.14 09:11:15
  • 최종수정 : 2019.01.14 09:39:19
웰빙 문화가 확산되며 화학 성분을 최소로 가미한 자연주의 와인 ‘그린 와인(Green Win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린 와인이란 포도 재배·양조 과정에서 화학비료나 제초제, 농약, 이산화황 등 각종 첨가제를 쓰지 않고 친환경 농법으로 만든 와인을 말한다. 유기농 와인,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 와인, 내추럴 와인 등이 해당한다. 국내 와인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소비자들이 ‘맛있는 와인’ 대신 ‘스토리가 있고 건강한 와인’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내 와인 시장은 내추럴 와인 열풍으로 뜨거웠다. 와인 리스트를 100% 내추럴 와인으로만 채운 와인바와 레스토랑이 등장했을 정도다. 방부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매력에서다. 사실 내추럴 와인의 인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수년째 지속되는 현상이다. 내추럴 와인 외에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쓴 유기농 와인, 심지어 음양의 조화와 천체의 움직임을 고려해 만드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도 인기다. 업계 관계자는 “무역 부문에서 유기농 와인만 따로 표기되지 않아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 다만 ‘바 피크닉’ ‘슬록’ 등 유기농 와인 전문 바가 속속 생겨나고 있고 수입사들도 그린 와인을 새로 수입하거나 수입량을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나라셀라 관계자는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화이트 와인 1위에 올라 유명해진 미국 나파 밸리의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는 100% 바이오다이내믹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최근 여기서 생산된 와인의 국내 판매가 전년 대비 두 자릿수로 증가, 우리나라가 이 와이너리의 가장 큰 수입국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친환경 농법으로 만든 그린 와인들. 왼쪽부터 코노수르 비씨클레타 피노 누아,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샤도네이, 뿌삐유, 양가라 PF 쉬라즈, 엠 샤푸티에 꼬스띠에 드 님 라 시부아즈.

친환경 농법으로 만든 그린 와인들. 왼쪽부터 코노수르 비씨클레타 피노 누아,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샤도네이, 뿌삐유, 양가라 PF 쉬라즈, 엠 샤푸티에 꼬스띠에 드 님 라 시부아즈.

▶국내 인기 있는 그린 와인은

▷‘이건희 와인’ 뿌삐유 판매 45%↑

국내에서 즐길 수 있는 그린 와인은 무엇이 있을까. 내추럴 와인은 방부제를 안 쓰고 자연 발효하는 탓에 유통기한이 짧아 유통 물량이 적은 중소 수입사가 주로 취급한다. 유기농 와인과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은 상대적으로 대형 수입사가 유통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 나파 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 멀롯, 진판델, 샤도네이, 퓌메 블랑은 모두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만든 그린 와인이다. 나라셀라 관계자는 “그르기치 오너의 양조철학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이 일하게 내버려두고, 사람은 최소한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포도밭이 100%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았다. 와이너리의 모든 전력을 태양광 에너지를 통해 얻어 사용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금양인터내셔날이 최근 수입을 시작한 ‘엠 샤푸티에 꼬스띠에 드 님 라 시부아즈’도 테루아에 대한 존중을 제1원칙으로 삼고 만든 와인이다. 매우 감칠맛 나고 입안 가득 풍미가 차오르며 잘 익은 과실향, 부드러운 향신료향, 그리고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타닌감이 일품이다. 모든 샤푸티에 와이너리의 포도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재배된다.

프랑스 보르도산 ‘뿌삐유(Poupille)’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애호가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그린 와인이다. 1999년 빈티지가 스위스에서 열린 와인전문가 시음평가 행사에서 가격이 최소 10배 이상 비싼 샤토 페트뤼스에 견줄 만큼 맛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IOC 위원들을 초대한 만찬에서 선보인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45% 급증했다. 이 와인을 수입하는 신세계L&B 관계자는 “필립 카리유(Philippe Carrille) 와이너리는 2008년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았다. 오너 일가가 집에서 직접 재배한 과일로 잼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친환경과 유기농을 고수한다. 화학비료나 제초제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양조 과정에서도 정제, 여과 등 인위적인 가공을 하지 않는다. 딸기, 체리 등의 풍부한 과일향과 함께 오크 숙성에서 배어나는 은은한 아로마가 매력적이다. 잼처럼 진한 과일맛과 끝 맛에서 나는 쌉쌀한 초콜릿향, 섬세하게 다듬어진 타닌의 맛이 완벽한 균형감을 선사한다”고 설명했다.

▶알고 마셔야 맛있는 그린 와인

▷유기농 음식과 페어링해야 제맛

그린 와인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일단 페어링 와인으로 적절한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고재윤 경희대 호텔관광대 교수는 “유기농법으로 만든 와인은 조미료를 안 친 음식과 같다. 기존 일반 와인에 익숙해진 소비자 입맛에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간이 어느 정도 강한 요리와도 잘 안 맞는다. 페어링 와인으로 마시려면 향신료를 안 쓴 채소로 만든 샐러드나 유기농법으로 기른 고기 음식과 같이 즐길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린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 일반 와인은 건강에 좋지 않은가’라는 반론에 부딪힌다. 백은주 경희대 호텔관광대 조리외식경영학 박사는 “일반 와인도 농약 성분이 아주 미량만 함유돼 건강에 큰 영향이 없을 수 있다. 오히려 그린 와인은 소비자보다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생산자 건강에 더 좋은 와인이다. 다만 와인을 자주,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면 농약 성분이 체내에 축적될 수 있는 만큼 일반 와인 대신 그린 와인을 마셔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유기농이나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인다. 각 나라별, 지역별로 인증 기준이 제각각인 데다 가족 단위로 경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는 복잡한 인증 절차와 비용 탓에 인증을 받지 않는 경우도 적잖다는 것. 한 수입사 관계자는 “와이너리가 바이어에게 와인을 팔 때는 어차피 포도밭과 와인 양조 방식을 모두 공개하게 돼 있다. 굳이 정부나 지자체에서 인증을 받지 않아도 바이어에게 그린 와인임을 입증할 수 있다. 따라서 인증마크가 없다고 반드시 그린 와인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내 그린 와인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고재윤 교수는 “그린 와인은 사람의 손이 훨씬 많이 가고 소량생산하는 경우가 많아 가격이 최소 4만~6만원으로 일반 와인보다 2배 이상 비싼 편이다. 그래도 좋은 그린 와인을 마시면 자연 그대로의 맛에 힐링이 되고 다음 날 숙취도 덜해 선호하는 애호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은주 박사는 “최근 그린 와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경제 흐름과 비례되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린 와인은 2007~2008년에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경기가 지속되며 인기가 주춤해졌다. 그러나 최근 국내 와인 시장이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다. 이왕이면 건강하고 스토리가 있는 와인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아진 때문이다.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젊은 층에서도 스토리가 있고 5만원 안팎에 구입할 수 있는 그린 와인은 좋은 선택지가 된다”고 분석했다. “미국에는 와인숍에 유기농 와인 코너가 따로 있고 일본은 그린 와인만 모아서 파는 와인바도 적잖다. 우리나라도 와인 시장이 성숙해지며 비슷한 흐름을 타게 될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의 전망이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1호 (2019.01.09~2019.01.15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