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경영칼럼] 美 빅브랜드 수난의 시대 中企 인수·벤치마킹하라

  • 입력 : 2019.01.14 09:52:53
2018년은 미국의 빅 브랜드에 쉽지 않은 한 해였다. 무난한 대형 브랜드 제품을 외면하고 가성비가 높거나 포지셔닝이 뚜렷한 중소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증가한 때문이다. 장난감 시장을 주도해온 토이저러스는 4월 폐업에 들어갔다. 126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통업체 시어스는 10월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세제, 가사용품, 화장품 등 수백 개의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P&G 매출은 2008년 830억달러에서 2017년 650억달러로 하락한 후 2018년에도 제자리걸음이 예상된다. 켈로그, 크래프트하인즈 등 대형 식품 브랜드도 수년간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다.

대형 브랜드는 이제 ‘칩시크’ 상품을 선보이며 중소 브랜드를 키우는 온라인 공룡과 맞서 수익을 창출하기가 쉽지 않다. 어쭙잖게 따라 하다 브랜드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현상은 서구 시장에서 두드러지지만 한국의 미래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화장품 시장에서는 중견기업의 난항 속에서 친환경 소재로 만든 제품이 인기를 끈다. 쇼킹토너, 쇼킹소름앰플 등 재미있는 이름과 독특한 용기 디자인을 적용한 라벨영(Label Young) 등 개성적인 스타트업 브랜드에 젊은 층은 열광한다.

유통업에서는 새벽배송 서비스로 호응을 얻은 마켓컬리의 성장이 눈에 띈다. 1~2인 가구가 맛있고 멋지게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소포장 신선식품, 파티식품을 당일배송하는 식으로 설립 3년 만인 2018년 매출이 1600억원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통 대기업이 전통적인 평균 소비자에 집중하는 데 반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소비자의 잠재 욕구를 간파한 결과다.

이제 대형 브랜드는 니치 시장을 파고들어 성공한 중소 브랜드들을 본보기로 삼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

P&G의 질레트는 중저가 면도기 브랜드 달러셰이브클럽(Dollar Shave Club), 해리스(Harry`s)를 벤치마킹해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잇달아 새벽배송 시스템을 도입했다. 제조업체들은 이색적인 팝업스토어, 컬래버레이션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 중이다.

P&G와 경쟁을 벌이는 유니레버는 더욱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2000년대 들어 작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중소 브랜드 40여개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왔다. 2017년에는 한국 화장품 기업 카버코리아를 약 3조원에 인수해 화제를 낳았다. 카버코리아를 발판으로 아시아 젊은 층을 공략한다는 취지다.

유니레버 행보에서 주목할 점은 중소업체 인수를 통해 거대 브랜드 이미지와 정체성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001년 벤앤드제리스(Ben & Jerry`s) 인수가 대표적이다. 벤앤드제리스는 제품가치뿐 아니라 공정무역, 평등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브랜드로 유명하다. CEO인 월트 프리스는 자신을 최고행복책임자(Chief Euphoria Officer)로 칭하며 반기업적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유니레버가 벤앤드제리스 정체성을 고수한다는 전제 아래 상대적으로 부족한 재무·관리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거래에 응한다고 밝혔다.

이후 친환경 세제, 기저귀를 생산하는 세븐스제너레이션(Seventh Generation), 면도기 배송업체 달러셰이브클럽, 프리미엄 소스 브랜드 써켄싱턴(Sir Kensington`s) 등 특정 소비층이 열광하는 강소 브랜드를 확보한 유니레버는 P&G와의 경쟁 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가는 모습이다. 폴 폴먼 유니레버 CEO는 “우리의 적은 P&G가 아닌 기후변화와 빈곤”이라는 표현으로 기업철학을 나타내기도 했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2호 (2019.01.16~2019.01.22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