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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탄받는 KB국민은행 노조 파업-귀족 노조 과욕·행장 리더십 맞물려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19.01.14 10:34:46
  • 최종수정 : 2019.01.14 17:50:58
“이번에 19년 만에 파업한대서 봤더니 평균 연봉이 9000만원이 넘는다더라. 좀 이해가 안 됐다. 또 왜 고객이 이들 때문에 피해를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리딩뱅크라고 홍보하더니 노사 모두 고객은 안중에도 없나?” (KB국민은행 고객 Y씨)

KB국민은행 노조의 당일치기 총파업이 끝나면서 노사 모두에 쏠린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노조는 노조대로 여론전에 공들였지만 싸늘한 반응만 돌아왔다. 사 측은 사 측대로 갈등 해결에 과연 진정성이 있었는지 책임론이 불거지는 분위기다.

▶귀족 노조의 배부른 파업?

▷연봉 9000만원인데 과한 요구 비판

파업 다음 날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사.

파업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총파업 총단결로 임단투 승리하자’ ‘선거개입, 설문조작, 셀프연임, 채용비리 윤종규(회장) OUT!’ 등 사 측을 비난하는 노조 명의 플래카드와 피켓도 여전했다. 로비에 있는 TV에서는 노조가 제작한 사 측 비난 영상물이 계속 반복 재생되고 있어 눈길이 절로 간다.

파업의 핵심 쟁점은 페이밴드제와 L0 여성 직원의 근무 경력 인정, 그리고 임금피크제다. 연차가 쌓여도 승진하지 못하면 직원의 임금을 제한한다는 페이밴드제는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게 노조 입장이다. 더불어 노조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L0 여성 직원의 비정규직 시절 근무 경력을 최대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금피크제 관련 노 측은 직급별 구분 없이 산별교섭에서 합의한 대로 1년 연장을 요구하는 반면 사 측은 6개월을 고집한다.

노사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계속 협상했지만 최종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번번이 결렬돼 결국 파국을 맞게 됐다.

이번 KB국민은행 파업 사태를 바라보는 여론은 좋지 않다.

애초 성과급 300%, 피복비 지급 등을 요구한 노조는 ‘배부른 고액 연봉자의 과한 요구’라는 여론이 빗발치자 한 발짝 물러섰다. 노조 논리대로라면 성과와 관계없이 버티기만 해도 대리 연봉이 1억1200만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피복비는 노조가 철회했고 사 측은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수준의 성과급을 제시했다 시간외수당까지 합해 300% 수준을 제시하는 안으로 수정 제시해 노조와 합의에 어느 정도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총파업 효과를 두고도 설왕설래다. 파업에도 불구 전국 1058개 지점에서는 고객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노조 측의 “고객이 몰려 점심 때 물에 밥 말아 먹어가며 업무를 본다”던 주장에 힘이 빠졌다. 90% 이상의 은행 업무가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이번 노조 파업의 동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분석

이다.

KB 고객 C씨는 “이번 파업은 오히려 은행 창구에 사람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꼴이 아닌가 싶다. 대출 상담 등으로 1년에 은행 갈 일이 서너 번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마저도 원격 상담 등으로 바뀌는 시대가 오면 지금과 같은 인력이 과연 필요할지, 그들이 고연봉을 받아야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고객 L씨는 “이럴 거면 간단한 업무는 인터넷전문은행으로 갈아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여론을 감안한 듯 노조도 “2차 투쟁까지는 안 가도록 임금·단체협약이 마무리될 때까지 24시간 매일 교섭할 의사가 있다”며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돌아섰다.

더 뼈아픈 대목은 이 과정에서 불거진 허인 KB국민은행장의 리더십 논란이다. 노조가 만든 영상물만 놓고 보면 허인 행장이 분명 ‘업계 최고 대우 보장’ 등 다툴 거리가 될 만한 여러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알아서 분란의 싹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빗발친다.

사 측은 허 행장 이하 경영진이 사안의 중대함을 인식하고 무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다. 선명성을 보이기 위해 임원진 54명이 영업 차질 발생 시 사퇴한다며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허 행장 역시 “고객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취지의 사과문을 내며 사태 조기 수습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 행장의 대노조, 대고객 메시지가 파업 이전에 왜 좀 더 강경하고 명확하지 못했는지를 두고 여전히 왈가왈부다.

금융감독 당국이 예의 주시한다는 점도 허 행장 입지를 더욱 좁히는 요인이다.

금융위는 국민은행 노사 갈등이 심화되자 위기관리협의회를 가동,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지는 않을지, 고객 불편은 없을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일반 기업과 달리 은행은 국민 경제의 핵심 인프라여서 파업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도 크다”며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은행인 만큼 영향도 커 더욱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채용비리, 셀프연임 등으로 감독당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놓여 있는 KB금융그룹이 이 사건 때문에 또 한 번 당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향후 흐름은

▷노사 대화 안 되면 제3자 조정 가능성

노조는 일단 2차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하루짜리 파업은 비교적 업무가 덜 몰리는 월초였지만 상황에 따라 설 연휴 직전인 1월 말 혹은 2월 초 파업 일정을 잡겠다는 엄포도 흘러나온다. 물론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는다면’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사 측을 압박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다만 협상이 장기화됐을 때 ‘고객은 외면하고 돈 때문에 파업한다’는 싸늘한 여론이 심화될 수 있고 비대한 조직, 낮은 생산성 등 노조의 치부도 추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지 않을 수 있다.

노조 집행부는 계속 사 측과 협상할 의사가 있고 또 안 되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사후 조정을 신청하거나 한국노총,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제3자를 통한 조정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사 측 역시 최대한 빨리 사태를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KB국민은행은 임금피크제 대상자 등 약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논의도 진행하고 있는 만큼 향후 대규모 구조조정 혹은 인력 감축 범위와 조건을 두고 또 한 번 노사 대립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파업에서 인력 이탈이 꽤 있었음에도 영업에 큰 지장이 없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노조가 구조조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시각도 있다”고 귀띔했다.

참고로 KB국민은행의 CIR, 즉 영업이익 대비 인건비 비율은 48%(지난해 9월 말 기준)로 ‘리딩뱅크’ 경쟁사 신한은행(43.2%)보다 높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2호 (2019.01.16~2019.01.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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